자유시장과 경제민주화 중 무엇이 규정적이냐는 논쟁이 5일 새누리당 부설 여의도연구소에서 열린 '경제민주화실천모임'에서도 재연됐다.
우리 헌법에 대입하면, 119조의 1항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는 자유시장 조항과, 119조 2항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경제민주화 조항의 '갈등'이다.
이 모임의 첫 회의를 겸한 토론회에서 '재벌개혁의 방향'이라는 제목으로 발제한 이혜훈 최고위원은 "둘 중 어느 조항이 우선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뒤 "우리헌법 1조 1항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선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제민주화의 테두리 내에서 자유시장을 얘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유시장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의 경제민주화가 아니라 민주주의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시장의 자유가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범위 안에서 시장자유"..."그렇게 보면 사회주의로 연결"이 최고위원은 이어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는 힘의 균형과 견제인데, 재벌은 이 견제와 균형을 파괴한다는 점에서 재벌개혁은 경제민주화의 선결조건"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판사 출신인 홍일표 의원(원내대변인)은 "헌법전문가들로서는 곤란한 이야기"라며 "민주주의는 정치의 관점에서, 시장경제는 경제적 관점에서 접근한 것인데, 민주주의가 허용하는 한에서 시장의 자유를 말한다면 이건 사회주의로 연결될 수도 있다"고 반박했다.
홍일표 의원이 계속해서 "자유시장 조항이 원칙이고 경제민주화조항은 보완이라는 것이 헌법학계의 정설"이라고 말하자, 이 최고위원은 "그렇게 본다고 해도 바로 사회주의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받았다.
이에 대해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출신으로 이른바 'MB노믹스' 입안자 중 한 명으로 알려진 이만우 의원은 "최근에 시장이 너무 커지면서 경제민주화가 대두됐는데, 이는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아니라 시장을 보완하는 정도"라고 홍 의원을 거들었다.
그러자 정두언 의원은 "재벌이 압축성장에 기여했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지만, 결국 모순이 누적돼 IMF 외환위기까지 왔다고 볼 수 있다"며 "재벌이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돼 군사독재 이전보다 규모도 커지고 집중력 정도도 더 커졌기 때문에 우리가 문제의식을 갖고 모인 건데, 헌법조항 갖고 얘기할 상황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새누리당이 경제민주화에 대해 관심갖고 있다는 게 뉴스에 부각되는 것도 이상하다"면서 "원래 했어야 하는 일을 우리가 안 했기 때문에 이렇게 됐다는, 그런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친박 핵심 이혜훈, 순환출자 규제-재벌범죄 처벌강화 등 강조한편, 이 최고위원은 이날 재벌을 강도높게 비판했는데, 그가 박근혜계의 핵심으로 경제전문가라는 점에서 새누리당의 '재벌개혁' 강도가 거세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는 2011년말 기준 재벌계열사가 1629개인데 이는 유가증권 상장사와 코스닥 상장사 전부를 합한 1800개와 비슷한 규모임을 거론한 뒤 "유력기업치고 재벌계열사가 아닌 기업이 거의 없다"며 재벌의 과도한 경제력집중을 비판했다. 또 최근 재벌의 확장 대상이 첨단산업이나 해외진출보다는 유통, 서비스, 음식 등 국내 시장을 잠식하는데 집중돼 있다는 점도 지적하면서 "재벌들은 동네 빵집 몰아내지 말고 애플, 벤츠와 싸우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그는 이어 재벌개혁의 방향으로 중소기업 적합 업종 제도 강화, 순환출자규제, 재벌범죄에 대한 경제법치강화(이사자격 제한법 도입 등) 지주회사 규정강화, 금산분리강화, 공정거래법의 재벌관련 조항 전면 재정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 집단소송제도 도입, 공정위 전속고발권폐지, 일감몰아주기 방지용 공정거래법 개정 등을 제시했다.
이 최고위원은 특히 "새누리당 의원들은 많이 놀라겠지만, 환상형 순환출자는 규제해야 한다"며 "신규순환출자는 금지하고 과거순환출자는 줄여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최고위원은 "다른 당의 재벌개혁은 재벌해체, 재벌죽이기라는 의미가 강한데, 나는 재벌의 행태를 고치자는 것"이라고 선을 긋기도 했다.
이 최고위원과 함께 "경제민주화의 배경, 개념 및 정책 어젠다"에 대해 발제한 이종훈 의원도 "경제구조의 양극화 해소 없이는 일자리 창출과 소득 양극화 해소가 어렵다"며 재벌개혁의 필요성을 시사했다. 이 의원이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 출신이라는 점에서 이날 발제자로 나선 친박인사가 모두 재벌개혁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이 모임은, 새누리당이 당 강령에 경제민주화 조항을 삽입한 것을 비롯해 연말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 논의가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발족했다.
전경련쪽 "사유재산제 부정" 비판도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전날인 4일 '경제 민주화, 어떻게 볼 것인가'주제 토론회에서 "경제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기업 경영에 시민과 종업원을 참여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전제로 하는 것으로 시장경제 근간인 사유재산제를 부정하는 것"이라는 등으로 정치권의 '재벌개혁'논의를 비판한 바 있다.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추진모임'안에도 이와 같은 목소리들이 섞여있기는 하지만 여당내에서 다양한 성향의 의원들이 경제민주화를 내걸고 정책연구모임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는 모임 대표를 맡은 남경필 의원과 간사 김세연 의원을 비롯해, 김기현·박민식·김광림·안종범·강석훈·전하진·이자스민·이상일·윤영석·윤재옥·이이재·이장우 의원과 권영진·임해규·구상찬 전 의원 등이 참석했다.
다음 주 화요일 모임에는 헌법 119조 2항을 만들고, 새누리당 강령에도 삽입한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특강을 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