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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잃어버리고 찾을 길이 없자 한동안 넋을 잃고 멍~해있던 동생.
▲ 공항(?)장애를 겪고있는 반짝이. 짐을 잃어버리고 찾을 길이 없자 한동안 넋을 잃고 멍~해있던 동생.
ⓒ 우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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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 잃어버린 걸로 이번 여행 액땜은 했다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징그러운 12시간의 비행이 끝나고 공항에 도착했는데 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이번 터키여행에서 우리가 둘러볼 곳은 이스탄불과, 카파도키아 두 곳.

우린 크리스찬으로써 일요일에는 예배를 드린다. 나의 여행철학 중 또 다른 하나는 '여행 중이라도 꼭 예배는 드리자'는 것이다. 그래서 시골인 카파도키아보다 이스탄불에서 교회 찾기가 수월할 듯하여 먼저 카파도키아에서 2박을 하고 일요일엔 이스탄불에서 한인교회를 찾아 예배를 드리는 걸로 계획을 짰다.

그러기 위해선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하고 바로 카파도키아로 넘어가야 하는데, 12시간 비행기를 타고 와서 카파도키아를 또 버스로 12시간 타고 갈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선 내 허리가 버텨줄 수 있는지도 모를 일이며, 일 주일의 짧은 여행기간엔 맞지 않다고 생각해서 바로 국내선 비행기로 환승해서 이동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국내선 항공이 현지에서 티켓팅하는 것보다 한국에서 예약하는 것이 훨씬 저렴하다고 해서 미리 예약을 다 해놨는데, 현지에 와서 보니 공항이 잘못 설정 된 것이다.

인천 -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공항 - 카이세리 공항

이게 맞는 경로인데 내가 예약한 노선은

인천 -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공항 / 이스탄불 사비하 괵첸 공항 - 카이세리 공항

이렇게 예약이 되 있었다. 예를 들어 터키에서 부산을 간다고 가정하면, 이스탄불 - 인천 - 김해 가야 할 것을 이스탄불 - 인천 / 김포 - 김해 이런 식으로 예약이 된 거다. 아... 머리속이 하얘진다. 이스탄불에 공항이 두 개가 있어서 잘 체크하라고 네이*님이 알려주셔서 분명히 체크 한다고 했는데 왜 이렇게 됐지?

아무래도 온라인 체크 중에 마우스 휠이 돌아간 게 아닐까 싶다. 짐은 인천에서 최종목적지 카이세리로 부쳐놨는데...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도대체 일 주일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이 있으려고 어젠 지갑 잃어버리고, 오늘은 짐 잃어버리고... 후~ 짐을 찾기 위해 공항 직원에게 물어보니 저쪽으로 가라, 가서 말하면 또 다른 곳으로 가라... 그렇게 많던 한국인들도 다들 어디로 간 건지.

국제선과 국내선 청사를 30여 분 열심히 뛰어 다니다 보니 탑승 시간은 다 되어가고, 짐은 행방이 묘연하고.. 도대체 답이 안 나오던 때였다.

"한국 분이세요? 제가 뭘 도와드리면 되죠?"

아...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나면 이런 기분일까?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가 들린다. 젊은 훈남 한국청년이다. 약간 혀 꼬인(?) 말투로 봐선 터키에 오래있었던 듯하다.

"예약이 잘 못 되서 짐을 잃어 버렸어요.. 어떡하죠?"
"음.. 공항이 잘못 체크가 되어 있네요. 지금 공항에서 사비하 공항으로 택시를 타고 간다해도 비행시간 안에 도착하기 힘드시겠는데요?"
"그럼 어떡해요? 비행기 표야 다시 구하면 되지만 짐은 어떻게 찾아야 되요?"
"흠... 그럼 일단 저희 팀 수속 밟고 도와드릴 테니까 아타툭 공항으로 다시 티켓팅해 놓고 계시겠어요?"

현지에서 가이드를 하고 계신 분이었다. 허둥지둥 다시 국내선 티켓을 끊고 있으려니 아까 그 가이드분이 일을 마치고 예약창구까지 쫒아왔다.

"표 끊으셨어요? 우리와 같은 비행기네요. 시간이 촉박하긴 하지만 부지런히 움직이면 불가능하지도 않아요."
"네.. 감사합니다.. 근데.. 아오~ 숨차.. 너무 뛰어다녀서.. 헥헥.."
"그럼 여권 저에게 주세요. 제가 들고 갑니다. 부지런히 따라 오세요~"

가이드분이 열심히 뛰기 시작한다. 우리도 뛴다. 미국식 영어를 하는 한국인들은 터키인들의 영어가 참 듣기 힘들다. 그들도 미국식 발음을 하는 우리의 영어를 잘 못 알아듣긴 마찬가지이고... 가뜩이나 내가 영어를 잘하는 편도 아니어서 더 애를 먹고 있었는데, 현지 가이드분이 터키어로 대화를 하니 일이 잘 풀리는 듯하다.

아까 그렇게 내 짐을 잃어 버렸는데 어떡해야 하냐고 물어 봤을때 모르쇠로 일관하던 한 여직원은 이 가이드가 현지어로 '머라 머라.. 바가지.. 쏼라 쏼라' 하니 바로 방향을 제시한다. 여기서 팁 하나! 터키에선 짐(패키지)를 '바가지'라 한다. 그래야 알아듣는다. 머 알아듣는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불행하게도 우리가 말했던 그 여직원은 못 알아듣더라. 그렇게 가이드와 함께 또 30여분 뛰어다닌 결과!

탑승시간이 다 되었다... 아. . .

'아직 짐을 찾지 못했는데 어쩌라구!'

일단, 짐은 최종 목적지인 카이세리에 가 있을 거라는 게 공항직원들의 설명. 믿고 그냥 가봐야 하는 건가? 생각하며 탑승하려는데 또 우리를 발목 잡는 일이 생겼다. 프린트 출력물로 비행기 예약만 해놨던 우리는 표를 티켓으로 바꾸지 않고 계속 짐 찾기만 열중하다가 결국 탑승 30분 전을 넘겨버린 거다. 30분을 넘기면 안 된다는 것도 모르고 티켓으로 바꾸려고 갔더니 공항직원은 그제서야 30분 전에는 티켓을 끊어놔야 하는데 지금은 시간이 지나서 티켓을 끊을 수 없단다.

'아... 정말 돌아버리겠네.., 그럼 아까 말 좀 해주던지! 탑승 30분 전엔 티켓 팅 하라고!!'

결국 티켓 창구 직원이 '지금은 할 수 없으니 그냥 프린트 종이를 가지고 가서 검역대 직원에게 보여주며 창구 직원이 그냥 들어가라고 했다'고 말하란다. 그 말만 믿고 갔다. 설마 봐주겠지... 가슴은 조마조마 콩닥콩닥...

'창구직원이 그렇게 하랬으니까 되겠지 뭐.. 설마 퇴짜 놓겠어?'

스스로를 위로하며 소도 때려잡을 것 같은 덩치의 여자 검역관에게 종이를 내밀었다. 그러자 그녀는 엄청난 목소리로 우리에게 '통과 못하니 돌아가' 라는 말만한다. '니 친구가 그냥 가랬는데?' 난 이 말만 열심히 해대고... 결국 우린 망신과 무시, 소외만 당한 채 끝내 그 문을 넘지 못하고 다시 돌아왔다.

끝까지 검역대 건너편에서 우릴 기다리던 그 가이드 분은 미안하다 말을 남기고 자신의 팀과 함께 떠나갔다.

'미안하긴.. 나야말로 고맙단 말도 못했는데... 어느 여행사인지 물어보기라도 할 것을...'

너무 고맙고 미안했지만, 지금 내가 한 없이 미안해하고 있을 때가 아닌듯하다.

'이제 정말 믿을 곳이 없어. 우리가 해결해야 돼...'

일단 놓친 비행기 표를 가지고 다음 비행기 표로 바꾼 뒤 짐을 더 찾아보기로 했다. 아까 우리에게 프린트 종이가지고 그냥 검역대로 가라고 했던 창구직원에게 가서 다시 도움을 청했다. 그러자 우리가 불쌍했는지 미안했는지 우리를 데리고 직접 돌아다니며 알아봐준다. 한참을 그렇게 알아보다가 자리를 너무 오래 비웠는지 자신은 가야하니 저 다른 친구가 나머지 일을 봐줄 거라며 가보겠단다.

그러시라 하고 한참을 기다린 결과 짐이 이미 카이세리 공항에 가 있을 것이라고 우리 짐 분실 사건을 인계받은(?) 직원이 얘기한다. 확실치는 않지만, 이젠 다른 방법이 없다. 믿고 가보는 수밖에... 대충 마무리를 짓고 있자니 그래도 끝까지 우리에게 도움을 준 직원이 참 고맙게 느껴진다.

동생 '반짝이'는 이미 그 공항직원에게 '뿅' 가 있었다. 친절하기도 했고, 고마운 것도 있었지만... 그 '공항 맨'은 상당한 미남이었기 때문에... '반짝이'는 도저히 그냥 떠날 수 없다며 '공항 맨'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주고 싶단다. 아주 '사심'이 가득한 얼굴이다.

"뭐 줄게 있어?"
"아.. 이럴 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소품이 있으면 좋은데... 내 가방에 달린 배지 줄까요?"
"어디 봐... 야야!! 이게 뭐야~ 다 녹슬었잖아~"
"그럼 먹다 남은 사탕이라도 줄까요?"
"너 그거 줬담 봐.. 진짜 너 여기다 놓고 간다!"

간신히 '반짝이'의 추태(?)를 말리고 고맙다고 인사나 하고 가자고 합의를 본 뒤 '공항맨'의 자리 쪽으로 갔다. 열심히 일을 하던 '공항맨'이 우리를 발견하고는 웃으며 손을 흔들어준다. 멀리서 '땡큐 땡큐'를 입모양으로만 알리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니 '공항 맨'도 재미있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한다.

옆자리 여직원들이 약간의 질투(?)어린 시선을 보내자 '공항 맨'은 우리에게 엄지손가락 까지 치켜 올리며 환하게 웃어준다. '반짝이'는 이미 입이 귀에 걸려있고... 그렇게 우린 우리만 아쉬웠던 이별을 하고 어렵게 구한 비행기를 타기 위해 당당하게 검역대를 통과했다.


태그:#터키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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