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전두환 전 대통령이 육사발전기금 200억원 달성을 기념해 열린 행사에서 사열을 하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육사발전기금 200억원 달성을 기념해 열린 행사에서 사열을 하고 있다.
ⓒ JTBC

관련사진보기


전두환 전 대통령의 육사 사열을 두고 왈가왈부 말들이 많다.

당장 민주통합당은 "이번 일은 생도들에게 '전두환처럼 쿠데타에 성공하면 대통령도 할 수 있고 권력도 누리고 천수도 누릴 수 있다'고 가르치는 일"이라며 육사교장 해임과 국방부장관 사퇴를 들고 나섰다. 김두관 경남도지사는 "육사교장과 국방부장관의 국가관이 의심스럽다"고 독설을 날렸으며, 많은 누리꾼들은 "29만원밖에 없어서 추징금도 내지 못하는 양반이 어찌 1000만 원씩이나 육사에 낼 수 있느냐"며 맹비난 중이다.

이에 대해 군 당국은 "전 대통령의 경례는 어디까지나 예상 못한 돌출행동이었고, 출연금은 내란죄와 뇌물죄로 무기징역과 추징금 2000여억 원을 선고 받기 전에 받았다"고 해명하며 사태를 진정시키고자 했지만, 역부족으로 보인다. 고전적이다 못해 고리타분하기까지한 해명도 문제지만, 이미 야권은 그들의 해명을 들을 생각도 없기 때문이다.

전 대통령-전 장군으로 대우받고 살아온 전두환

국가관 운운하는 김 지사의 말에서도 추측할 수 있듯이, 야권은 이번 사건을 최근 벌어지고 있는 색깔론 논쟁을 극복할 매우 중요한 카드로 써먹으려 하는 중이다. 여당이 야당 의원들의 '종북'과 관련된 국가관이나 사상을 검증하겠다고 나서자, 오히려 5·16 쿠데타나 12·12쿠데타 등을 거론하면서 역으로 검증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물론 여당의 지긋지긋한 색깔론 공세에 맞서 또 다른 검증으로 맞불을 놓겠다는 야당의 심정이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신자유주의자와 토건족들만 득실거리던 5년 전 이명박 후보와 달리, 박근혜 의원 주변에는 3공·5공의 쿠데타 반민주주의 세력들이 떡하니 자리하고 있어 공격하기도 좋지 않은가. 

그러나 묻고 싶다. 이번 전두환 전 대통령의 육사 사열이 그리 놀랄 일인가? 과연 일반 국민들은 이번 사건을 그 정도로 심각하게 생각할까? 아마 아닐 것이다. 육사 사열까지는 좀 너무한다고 생각하더라도 그냥 해프닝 정도로 생각할 것이다. 그만큼 익숙한 풍경이기 때문이다.

2000년 여름 군에 있을 때 이야기다. 1사단 연대 소속 수색중대인 우리 부대는 여름만 되면 DMZ 안에 들어가 수색, 매복에 방해되는 풀을 베는 일을 했다. 1사단이 맡고 있는 파주 지역의 DMZ는 다행히 강원도와 달리 높고 깊은 산이 존재하지 않아 돌아다니기에는 편했다. 대신 그만큼 풀이 많이 자라 수시로 제초작업을 해야만 했다. 뭔 놈의 풀들이 베고 나면 하루가 멀다 하고 또 자라는지 원.

그 날도 하루 종일 철조망 사이로 들어가 허리를 굽히고 낫으로 제초작업을 한 뒤 부대로 복귀하는 중이었다. 군용트럭에 실린 채 시원한 임진강 강바람에 아름다운 빨간 노을을 감상하며 이육사 시인의 '광야'가 적혀있던 공중전화카드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행정반에서 무선 연락이 왔다. 이야기인즉슨, 내일 또 제초 작업이 있을테니 장비를 모두 손 보고 나갈 인원을 다시 뽑으라는 것이었다. 잉? 무슨 제초 작업? 요 며칠 동안 계속 제초작업을 했으니 지금 당장은 벨 풀이 없을텐데?

선임이 짜증나는 목소리로 무전기를 받았다.

"뭔 소리야. 지금 막 제초작업 다 끝내고 돌아가고 있는 중인데. 우리 구역 다 훑은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제초작업이야? 풀이 하루 이틀 새 그렇게 많이 자라냐?"

"그게 아니고 말입니다. 전두환이 떴답니다. 백학OP에 와서 시찰을 했는데, 돌아가기 전 한 마디 했답니다. 풀들이 좀 많다고."

순간 우리 부대원들은 얼음처럼 굳었다. 전 전 대통령이 와서 그랬다면 죽으나 사나 또 나가야 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전두환이지 않은가.

그렇다. 우리 부대는 1사단. 개성까지의 1번 국도를 지키는 가장 중요한 부대로서 그만큼 병력도 많은, 예전 전 전 대통령이 사단장으로 있으면서 제3땅굴도 발견한 바로 그 사단이다. 문제는 전 전 대통령이 옛날 생각에 가끔 방문한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내가 직접 그를 본 적은 없었지만, 그는 종종 1사단으로 시찰을 온다고 했으며 그 때마다 사병들은 엄청난 작업에 시달려야 했다. 분명 쿠데타 세력으로 내란죄를 선고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 대통령으로서, 전 장군으로서, 전 사단장으로 대우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5공 세력에게 '면죄부' 줬던 야당, 비판자격 없어

전두환 전 대통령이 부인 이순자씨와 함께 5일 오후 5시 15분께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로 들어서고 있다. 전 전 대통령은 가족들과 함께 손녀의 결혼식을 지켜봤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부인 이순자씨와 함께 5일 오후 5시 15분께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로 들어서고 있다. 전 전 대통령은 가족들과 함께 손녀의 결혼식을 지켜봤다.
ⓒ 정민규

관련사진보기


내가 군대시절의 에피소드를 꺼낸 이유는 분명하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 전두환은 '쿠데타의 수괴'보다는 '5공화국 전 대통령'이다. 비록 김영삼 전 대통령이 역사 바로 세우기를 운운하며 역사적 단죄를 이루었다고는 하나, 그가 그에 상응한 처우를 받았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 정권들은 국민 대화합 운운하며 그를 특별 사면했고, 29만 원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는 그의 어처구니없는 오리발 내밀기에도 특별한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저택 앞에 경비만 강화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대통령 취임식 때마다 등장하는 그의 모습이란. 과연 우리의 현대사에서 12·12 쿠데타는 어떻게 정리되고 있는지.

따라서 이번 전두환의 육사 사열은 이미 예고된 바였다. 비록 최근의 종북주의 논쟁 때문에 불거졌을 뿐이지, 사실 그는 지금까지 전 대통령의 자격으로서 공식적인 일정을 수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전혀 몰랐다는 듯, 이번 사건에 대해 거품을 무는 야권의 모습이라니.

안 된 이야기지만 이런 이중적인 야권의 모습은 보는 국민들로 하여금 냉소만을 갖게 한다. 국민들은 동의하지 않았는데 어쨌든 국민 통합 운운하며 그런 5공 세력들에게 면죄부를 줬던 이들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전두환 사열을 문제 삼을 요량이라면 우선 자기 고백과 반성부터 하시라. 정치공학에 함몰되어 몰역사적인 판단을 내렸던 스스로에 대한 자기 성찰부터 하시라.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패배주의적 역사관을 버리고 다시 한 번 민주주의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라. 5·18과 관련된 영화 <26년>조차 만들기 힘든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태그:#전두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