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강: 11일 오후 6시 32분]2011년 6월 19일. 뉴질랜드 배타적 경제수역에서 조업하던 한국 원양어선에서 인도네시아 선원 32명이 '집단 탈출'했다. 한국인 선원들의 폭력과 임금체불을 견디지 못해서였다. 이들은 한국인 갑판장과 선원들로부터 언어적·물리적 폭행 그리고 성추행을 당했다고 증언했다.
해당 선박은 '오양맛살'로 유명한 사조오양 소속 '오양 75호'. 뉴질랜드 오클랜드 대학에서는 한국 원양어선의 인권침해에 대한 보고서가 발표되었고, 이 문제는 연일 뉴질랜드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지난 3월, '수많은 외국원양어선 가운데 유독 한국 배에서만 문제가 발견되었다'는 뉴질랜드 정부의 보고서가 나오자, 한국 정부는 합동조사단을 구성했다.
5월 27일부터 지난 2일까지 뉴질랜드 현지에서 조사를 벌인 합동조사단은 한국인 선원 4명이 인도네시아 선원들을 지속적으로 폭행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임금체납'과 관련해서는 선원들과 사조 측의 주장이 엇갈려 추가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나현필 국제민주연대 사무차장은 "뉴질랜드 정부가 규정한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하면, 선원들이 받지 못한 임금은 약 4억 원"이라고 말했다.
"매일 인권침해 당해...쉬지않고 이틀동안 일한 적도"2012년 6월 11일, 서울 서대문 사조오양 본사 앞에 검게 그을린 얼굴의 두 인도네시아 청년이 섰다. 이들은 6시간의 비행 끝에 지난 8일 서울에 도착했다. 각각 인도네시아, 뉴질랜드에서 온 활동가 레트노(Retno), 일리아나(Elyana)와 함께였다. 본사 건물에는 '세계최다참치선단 사조회참치'라는 문구가 선명했다.
기자회견은 국제민주연대, 공익법센터 어필, 민주사회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등이 함께 주최했다. 50일 넘게 파업을 이어가고 있는 골든브릿지 증권 노조 조합원들도 참석했다. 같은 시각,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있는 한국 대사관 앞에서도 집회가 열렸다고 한다.
마이크를 든 수기토(Sugito)는 착잡한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외국인 활동가들이 그의 말을 영어로 옮기자, 한국인 활동가들이 이를 다시 통역했다. 수기토는 한숨을 내쉬었다.
"매일 인권침해를 당했다. 임금을 체불하고 성희롱을 했다. 장시간 동안 일해야 했다. 사조오양 측에 의해 인권유린을 당했다. 이를 항의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이어 시소로(Sisworo)가 마이크를 받았다. 그는 뉴질랜드 해역에서 일하기 전, 스페인 해역에서도 사조오양 어선에서 일했다.
"사조오양에서 7개월 간 임금을 체불 당했다. 스페인 해역에서 일할 때, 갑판장에 의해 언어적으로 물리적으로 폭력을 당했다. 갑판장은 우리를 마치 짐승처럼 대했다. 쉬지 않고 이틀 동안 일한 적도 있다. 우리는 뉴질랜드에서 규정하고 있는 수준에 맞는 임금을 받기를 원한다. 밀린 임금을 달라. 이것은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정당한 권리다."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 인권단체 ATIK Indonesia 대표 레트노는 "사조오양은 인도네시아 선원들의 인권을 침해했다"면서 "이것은 모든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들의 문제"라고 말했다. 레트노는 "인도네시아 정부의 인력송출정책에 따라 수많은 국민들의 원양어선에서 일한다"면서 "원양어선에서 일하는 많은 노동자들이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레트노는 다음과 같이 외쳤다.
"우리는 이주노동자다. 노예가 아니다."뉴질랜드에서 24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온 일리아나는 자신을 "인도네시아 선원들의 어머니"라고 말했다. 그는 "2006년부터 한국선박에서 일하는 인도네시아 선원들을 지원해왔다"면서 "한국선박의 생활과 시스템은 정상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고 꼬집었다.
이어 일리아나는 사조 측의 대응 태도를 비판했다. 그는 "한 번은 사조오양 고위급 간부가 뉴질랜드로 찾아왔다. 그가 원하지 것을 얻지 못하자, '탐정을 고용해서 뒤를 밟겠다'고 하는가 하면 도청을 했다"면서 "너무 무섭다, 지금까지도 두렵다"고 말했다. 나현필 사무처장은 "일리아나가 한국에 오기 전 자신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너무도 부끄러웠다"고 덧붙였다.
"사조오양에서 나온 음식, 도덕적으로 깨끗하지 않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자신들을 폭행했던 한국인 선원들, 임금을 체불한 사조 측을 상대로 고소·고발을 진행할 계획이다. 국가인권위, 정부 합동조사단과의 면담도 예정되어있다.
김종철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는 "폭행 및 성추행을 가한 한국인 선원들에 대해 12일 인천 해양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하고, 사조오양 측의 문서위조, 공무집행방해에 대해서도 고소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또한 "임금체불과 관련해 선박을 압류하거나, 한국인 선원들을 제대로 관리감독 하지 못한 사조오양 측에 정신적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민사소송을 진행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사조오양에서 나온 음식이 도덕적으로 깨끗하지 않다는 음식도 있다는 것을 알리겠다"고 경고했다.
사조오양 측, 인권-임금문제 전면부인 한편, 사조오양 측은 <오마이뉴스>에 보낸 답변서를 통해 인도네시아 선원들의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
먼저, 인권문제와 관련해 사조오양은 "외국 선원이 없으면 조업이 불가한 상황에서 그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하지 않고 폭력과 성희롱으로 인권유린을 한다는 것은 원양산업을 포기하는 것과 같은 행위"라면서 "현재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한국인 선원의 선상 폭력, 성희롱 등은 아직까지 어떠한 것도 사실로 밝혀진 바 없으며 계속 조사 중에 있다"고 주장했다.
임금문제에 대해서도 "사조오양은 뉴질랜드 수역에서 30년 이상 조업을 해왔으며, 최근 논란이 발생하기 전까지 어떠한 불법적인 행위로 문제가 있었던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뉴질랜드 최저임금법을 잘 지켜왔기 때문에 뉴질랜드 이민국에서 매년 1~2회 실시하는 정기 감사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면서 "임금체불 문제는 무단 이탈한 선원들이 직접 확인하고 서명한 노동시간 내역 자체를 부정하고 더 많은 임금을 지불하라고 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