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에 나오는 여주인공은 일명 '갑각류'와 같았죠. 외모와 말발은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완벽함을 갖췄지만, 카사노바가 들이대자 그 동안 꽁꽁 감추고 있던 속내가 완전 녹아내리고 말았었죠.
단단한 껍질 뒤에 숨은 채 여간해서 자기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몰라도 모른다고 말하지 않고 기필코 아는 척을 한다. 의심이 들지만 결코 의심한다고 말하지 않고, 대신 모든 회의에 달관한 듯한 미소를 짓는다. 그래서 이제껏 그랬듯 앞으로도 항상 그런 척하고 살 것이기 때문에, 때때로 자기 껍질을 건드리는 각종 위협에 본능적으로 화를 내거나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상대에게 이단이라는 딱지를 붙여서라도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11쪽)최근에 펴낸 옥성호의 <갑각류 크리스천>에 나오는 내용이죠. 불안한 속살을 감추기 위해 딱딱한 껍질을 끼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정곡을 찌르는 셈이죠. 속의 것보다 겉으로 드러난 것에 집착하고, 성공한 사람들을 쉽게 숭상하고, 내용보다 효과와 감정에 치중하고, 신앙에 의문이 들면 자기와는 상관이 없다는 식으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들이 그것이죠.
한인교회가 말썽을 피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하죠. 잘 통하지 않는 영어 때문에 제대로 말싸움 한번 못하는 설움을 고향의 품과 같은 한인교회에 쏟아 놓고자 하는 것 말이죠. 미국사회에서 주류에 끼지 못하는 설움을 교회 안에서 대접받고자 하는 까닭이겠죠. 인정의 욕구는 누구에게나 통하는 법이지만, 도가 지나친 경우가 문제지요. 몇몇 주동자들이 한인교회를 어지럽히고, 담임목사를 쥐락펴락하는 경우 말이죠.
한국교회라고 그게 다른 건 아니겠죠. 각 교단마다 엄청난 목사 후보생들을 배출하는 상황이라 목회자의 수급조절은 불능상태로 치닫고 있죠. 그만큼 당회의 권한은 더욱 막강해진 상황이죠. 그런 마당에 성골 진골로 분류되는 목사와 장로의 자녀들이 미국에 유학하여 대기하고 있는 마당이라고 하죠. 미국의 신학대학 돈줄을 한국의 유학생들이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하죠. 이런 연쇄적인 상황이니 한국교회의 담임목사들도 눈치를 보는 건 당연한 일이겠죠. 이 책에서 지적하는 바가 그것이죠.
지금 이 세상에는 인간에 대한 수많은 이론이 있다. 그리고 교회는 그런 세상의 이론들에 현혹되어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본질이 아닌, 세상이 가르치는 인간의 본질을 연구하기에 여념이 없다. 인간을 높이고 기쁘게 해야 하며 무엇보다 즐겁게 해줘야 한다는 그 이론에 매달리며 예배를 나날이 발전시킨다. 사람들이 싫어하면 틀린 것이고 사람들이 좋아하면 진리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교회는 오늘도 세상의 '인간만족 테크닉'을 습득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163쪽)그렇겠죠. 다다익선(多多益善)처럼 오늘날 교회는 교인수의 부흥을 최고 목적으로 치고 있죠. 문제는 그런 흐름만을 좇다보니 교회가 변질된 세태를 드러낸다는 지적이죠. 인간의 본질을 바꾸기보다 예배의 분위기와 교회의 외형의 변화에만 중점을 둔다는 것이죠. 그를 위해 성공한 사람들과 연예인의 간증에 귀를 기울이고, 병든 자를 고쳤다는 은사주의를 선호하고, 많은 대출을 받더라도 예배당을 화려하게 짓고자 하죠. 그러면 사람들이 많이 몰려든다는 까닭이죠. 오늘날의 갑각류 교회가 그렇다는 뜻이죠.
과연 어떻게 하는 게 그 껍데기를 벗어던지는 길일까요? 이 책을 곰곰이 읽어보면 답을 얻을 수 있지요. 그야말로 속살을 새롭게 하는 데에 있어요. 모든 상황 속에서 예수라면 어떻게 하셨을지 진지하게 묻고 그 해답을 찾는 과정 말이죠. 뭔가 의도된 자기 부정이 아니라 진정 어린 내려놓음을 추구하는 것도 그에 해당되죠. 효과에 함몰되는 믿음보다 내용과 의미의 질문을 끊임없이 제기하며 성경 속에서 그 답을 찾는 것도 한 예라고 하죠.
이 책이 그저 뜬구름 잡는 내용이 아니라는 건 다음과 같은 실례 속에 들어 있어요. '붉은 악마'에 관한 이야기라든지, 모 사극에서 신녀 역할을 한 탤런트 한 사람의 간증이라든지, 축구감독 차범근과 최순호의 대결장면에 관한 내용도, 그리고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대통령 링컨> 책 이야기도 그렇죠. 그와 같은 실례를 든 이유가 있겠죠. 한국개신교의 실제적인 방향을 전환하도록 촉구하고자 하는 것 말이죠.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는 카사노바의 유혹이 그녀를 바른 길로 접어들게 한 요인이었는데, 현대판 크리스천들은 그런 유혹과 갈등 앞에서 더 많은 외피를 껴 입고 살지, 아니면 과감하게 벗어던질지 지켜볼 일이겠죠. 이 책의 저자 역시 그런 갈림길에 한국교회가 서 있다고 하는데, 아무쪼록 진리의 속살을 회복하는 한국교회가 되길 바래야겠죠.
덧붙이는 글 | <갑각류 크리스천> 옥성호 씀, 테리토스 펴냄, 2012년 5월 30일, 320쪽, 1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