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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 법대로 살자'를 결의 하였던 '봉암사 결사' 60주년을 맞아 2007년에 봉암사에서 개최 된 봉암사 결사와 봉암사 전경
 '부처님 법대로 살자'를 결의 하였던 '봉암사 결사' 60주년을 맞아 2007년에 봉암사에서 개최 된 봉암사 결사와 봉암사 전경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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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한국 불교사에서 가장 걸출한 스님, 영향력이 가장 컸던 스님을 한 분 말해보라고 하면 성철스님을 으뜸으로 꼽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성철스님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라는 법어로도 유명하고, 3000배로도 유명하지만 1947년,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기치를 내걸고 봉암사에서 한 '결사'야말로 한국불교사에서 성철스님을 상징하는 발자취이자 법력이 될 것입니다.

한국 불교의 마지막 보루는 '성철스님'이 아니라 '보문스님'

보문스님 같은 스님이 몇 분만 더 있었으면 우리 종단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여겨집니다. 한마디로 이 스님은 우리들의 사표입니다. 저는 보문스님을 우리 종단의 마지막 보루였다고 봅니다. 저쪽(성철문도)에서는 그 보루가 성철스님이라고 합니다만, 지금도 가만히 생각을 해 보면 보문스님이 마지막 보루였습니다. - <보문선사> 230쪽

보문문도회·김광식 엮음, 민족사 출판의 <신화 속으로 사라진 선승 - 보문선사>에서 대안스님이 밝힌 의견입니다. 대안스님만이 이런 말씀하셨다면 개인적인 입장이거나 지극히 주관적인 주장이 되겠지만 보문스님의 생애를 추억하거나 회고한 22분 중 다수의 스님들이 같은 내용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보문선사> 표지
 <보문선사> 표지
ⓒ 민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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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선사>는 늦은 나이인 31살에 출가하여 비교적 젊은 나이인 50살에 일기를 다한 보문스님의 삶과 수행이력을 19분의 스님을 위시해 22명의 생존자들을 인터뷰해 기록한 내용입니다.
출가수행 기간이 20년밖에 되지 않는 보문스님이 도대체 어떻게 사셨고, 어떤 스님이셨기에 다수의 스님들이 성철스님보다 보문스님을 우선으로 꼽는지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지와 스님을 같이 대했던 스님

보문스님을 기억하거나 증언하는 분들이 하는 말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공통점은 철저한 실천이며 수행입니다. 궂고 힘든 일일지라도 말로 하기 전에 먼저 실천하는 스님입니다. 똥지게를 지고, 비질을 먼저하고, 법랍이 높은 구참이 되어서도 밥을 하는 공양주를 자청하며 몸소 실천하는 스님이었습니다. 

스님과 신도들도 차별하지 않았지만 거지와 스님도 같이 대했다고 합니다. 왜 사람을 괄시하냐며 조금도 차별하지 않은 평등한 스님이셨습니다. 여러 사람이 말하는 내용에는 탁발도 빠지지 않습니다. 보문스님은 목소리가 엄청 좋았나 봅니다. 스님이 탁발을 나서 반야심경을 독경하면 사람들이 줄을 서서 발우에 넘쳐흐를 정도로 시주를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탁발을 하면 따라다니던 거지들에게 먼저 나누어 주고, 고아원이나 양로원에 보시하고 남는 것으로 필요한 것을 사서 토굴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또한 은사스님의 제를 지내면서도 몸소 탁발을 해 지냈지 절대 절 돈을 사용하지 않을 정도로 공사가 분명한 스님이기도 하였습니다.

보문스님을 기억하거나 인터뷰로 보문스님의 수행이력을 증언하고 있는 스님들은 송광사 방장 보성스님, 전 포교원장 혜총스님, 얼마 전에 입적하신 성수스님 등과 같이 살아 있는 구도자이며 한 분 한 분이 작금의 불교계에서 내로라하는 고승들입니다. 

이런 고승들이 실천하고, 평등하게 대하고, 공사가 분명하다고 해서 보문스님이 성철스님보다 낫다고 기억하거나 증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대다수의 스님들이 공통으로 들려주는 보문스님은 전설에나 나오고 신화 속에나 존재할 법한 스님입니다.

당신의 선정 삼매를 알아보기 위해 갈비뼈 3개를 잘라내는 대수술을 하면서도 마취를 거부한 채 수술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정말 신화 속에서나 들을 수 있을 법한 기행이자 도력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봉암사 결사가 있었던 봉암사에서 성철스님과 겨룬 법거량

"사시에 법당에서 부처님께 마지(공양)를 올리는데, 부처님은 어떻게 잡수십니까?"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성철스님은 "내가 이야기하면 곧이듣겠느냐?" 하시면서 일어서더랍니다. -<보문선사> 296쪽

 <봉암사 결사>, 부처님 법대로 살자
 <봉암사 결사>, 부처님 법대로 살자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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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의 스님들이 들려주는 성철스님과의 법거량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성철스님의 상징이 되어버린 '봉암사 결사'에서 있었던 실화 중 일부분이기도 합니다. 성철스님이 먼저 묻고, 보문스님이 답하고 난 후 보문스님이 묻자 성철스님이 답을 회피(못)하는 상황이 그려지는 내용입니다.

결사를 위해 봉암사에 모여든 스님들이 중론으로 보문스님이 입승(절 안의 규칙이나 대중(大衆)의 기강을 바로잡는 일을 맡은 직책. 또는 그런 일을 맡은 스님)으로 먼저 추대되지만 향곡스님(일부는 성철스님으로 말함)이 기왓장을 던지는 등 행패에 가까운 몸 밀이를 해오자 바랑 하나 걸머메고 봉암사를 훌쩍 떠나 속리산 복천암으로 갔던 스님이 보문스님이라고 합니다.

보문스님이 은둔수행자가 돼 알려지지 않은 이유

여러 스님들이 '그런 스님은 없다'거나 '보문스님이 몇 년 만 더 살았으면 한국불교가 달라졌을 거'라고 기억하거나 말씀하고 있음에도 보문스님의 위상이나 존재가 미미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겁니다.

성철스님이 81세로 비교적 장수(1912∼1993)하시며 명성이나 영향력을 발휘할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던 반면 보문스님은 50세(1906~1956)로 단명을 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또한 성철스님이 드러내기를 좋아하는 과시형이었으며 제자들을 많이 두었던 반면 보문스님은 여간해서는 드러내지 않고 당신 스스로는 제자조차 두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보문스님에게도 제자 스님이 한 분 계시지만 이 제자스님은 보문스님 당신이 받아들인 제자가 아니라 은사스님인 한암스님이 지정해주신 제자입니다.  

보문문도회나 김광식 박사가 <보문선사>을 엮을 때 성철스님과 보문스님이 법거량을 하듯이 보문스님과 성철스님을 비교하거나 견주려 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다만 존재자체가 미미한 보문스님의 선풍과 수행이력을 불가에 기리고 불교역사에 기록하고자 한 역작이리라 생각됩니다. 

 2007년, 봉암사에 모여 '부처님 법대로 살자'를 결의하고 있는 스님들
 2007년, 봉암사에 모여 '부처님 법대로 살자'를 결의하고 있는 스님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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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분의 기억과 말씀으로 듣는 보문스님이야 말로 당대의 선승이며 한국불교가 따라야 할 등불이었지만 조계종 원로의원을 역임하고 관음사 회주이신 원명스님이 들려주시는 이 한 말씀 '그 스님은 참 꿈에 보아도 중이에요'에 보문스님의 진면목이 두루두루 함축돼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작금의 한국 불교계를 너무도 적나라하게 예언한 한암스님

   末世比丘 形似沙門   말법 세상의 비구들이 모습은 사문처럼 하여
   心無慙愧 身着法衣   마음엔 부끄러움이 없어 몸에는 법의를 걸치고
   思染俗塵 口誦經典   생각은 세속에 물들고 입으로는 경전을 외우지만
   意億貪慾 晝貪名利   속으로는 탐욕을 생각하고 낮에는 명리를 탐하고
   夜醉愛着 外表持戒   밤으로는 애착을 취하여 밖으로는 계율을 지키는척하고
   永忘出離 偏執妄想   영원히 은밀히 범하여 항상 세상일에 몰두하고
   旣擲正智                이미 바른 지혜를 던져버렸다. - <보문선사> 52쪽

<보문선사>에는 보문선사 이야기만 들어 있지 않습니다. 보광원 조실인 화산스님께서 보문스님과 관련한 기억을 풀어놓다 보문스님의 은사스님인 방한암스님으로부터 받은 글을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2012년 한국불교를 예언하고 쓴 글귀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작금의 불교계를 뒤덮고 있는 작태와 풍랑이 고스란히 노정(露呈)돼 있습니다.

은둔자처럼 흔적도 이력도 드러내지 않고 있던 보문스님이 후학들의 기억과 입, <보문선사>라는 단행본을 빌어 위풍당당했던 법력과 고고했던 수행이력을 후세에 드러내며 작금의 불교계와 출가 수행자들에게 설하는 시종(始終)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덧붙이는 글 | <보문선사>┃엮은이 보문문도회·김광식┃펴낸곳 민족사┃2012. 6. 14┃값 28,000원┃



보문선사 - 신화 속으로 사라진 선승

보문문도회.김광식 엮음, 민족사(2012)


#보문선사#보문문도회#김광식#민족사#봉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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