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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주말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
 KBS 주말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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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중반의 남편은 뼛속부터 조선남자라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는 모태마초이며 사랑할수록 칭찬을 아끼고, 귀히 여길수록 그 마음을 드러내지 말라는 조선식 은둔형 사랑의 종결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남편이 주장하는 은둔형 사랑이란 아내인 내 입장에서는 비루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마음에는 있다하나 표현하지 않고 가슴속에 깊이 간직한채 드러내지 않는다면 마음에 없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그러다보니 내 곁에 누워자는 남자가 때로는 아주 낯선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남편은 내 편 아닌 남의 편?

지난 27년 동안 나는 수시로 한집에 살고 있는 남자가 내편이 아닌 남의 편이었음을 확인 했다. 시어머니와 나 사이에서 그는 시어머니 편이었고 시누와 나 사이에서도 그는 시누이 편이었으며 시아주버니, 시고모 심지어 시집 강아지와 관계에서도 강아지 편을 드는 철저한 남의 편이었다. 

늘 남의 편을 드는 남편이 나를 설득하는 말은 한가지였다. 우리 조선식 정서가 그렇다는 것이다. 자기의 어머니도 그렇게 살아왔고 자기의 누나도, 이모도, 고모도, 작은 어머니와 큰어머니 심지어는 자기의 장모 즉 나의 친정엄마까지도 모두 그렇게 살았으니 자기의 아내인 나 역시 선배 아내들의 삶의 방식을 따라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남편의 고집이 이쯤 되면 나 또한 적응을 하고 언감생심 꿈도 꾸지 않을 만도 하지만 드라마에 등장하는 잘생기고 능력도 있으며 심지어 착하고 친절하기까지 한 남편을 볼 때면 슬그머니 심술이 올라와 남편의 염장을 지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요즘 최고 시청률을 보이고 있는 KBS 주말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태리강(유준상분)은 나뿐 아니라 대한민국 아내와 며느리들은 물론 장모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명실상부 국민남편 국민사위가 아닐 수 없다. 

KBS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
 KBS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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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보다가 왜 나한테 화살을 돌리나?"

자나 깨나 아내를 사랑하고 배려하는 남편. 저려오는 팔에도 불구하고 잠자리에서 아내의 팔베게를 빼지 않는 희생적인 남편. 은근히 아내 험담을 하는 작은 아버지에게 "앞으로 제 앞에서는 아내 험담을 하지 말아주세요"라며 보호막을 쳐주는 의협심 강한 남편. 회사일로 늦는 아내를 대신해 제사음식을 만드는 친절한 남편. 할머니와 부모님 그리고 동생들 앞에서 당당하게 나는 아내 편이라고 밝히는 든든한 남편. 어떻게 이런 남편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어쩜 저렇게 지혜롭게 아내 편을 들어주는지. 속이 다 시원하네. 버르장머리 없고 철딱서니 없는 시누이도 '시'짜 앞세워서 무조건 시누이 편들던 시할머니 시어머니도 한 번에 말을 잃어버렸잖아. 참 누구랑은 다르다."

결혼생활 27년에 늘은 거라곤 눈치밖에 없는 남편. 어느새 눈치를 채고 까칠하게 들이받는다.

"드라마 보다가 왜 나한테 화살을 돌리나? 여자들은 이게 문제야.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지 현실에 없으니 드라마인거 아냐. 그리고 저기 귀남인지 테리인지는 어릴 적에 미국에 입양된 애라며? 미국식 교육받고 자라서 한국가족의 정서를 몰라서 그런 거 아냐. 그렇게 부러우면 진즉에 교포2세 찾아서 결혼하지 그랬어."

"꼭 미쿡 물 먹어서만 그런가. 한국남편 중에도 저런 남편 없으라는 법 없지. 여자라면 누구나 저렇게 철저하게 아내편만 들어주는 남편과 살아보고 싶다니까. 우리가 딸이 없어서 그렇지 딸이 있다면 태리강 같은 사위 맞고 싶지 않겠냐구. 시집식구 뿐이야? 따라다니는 여자 후배한테 분명하게 선을 긋는 태도하며. 사람들이 유준상보고 국민남편 국민남편하던데 역시 그럴만해."

"이보세요. 아주머니. 정신차리시구요. 나도 김남주처럼 이쁘고 날씬하고 능력있는 여자랑 살아보고 싶은 소망이 있는 남자거든요. 아무리 당신이 그래도 소용없어.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조선 남편이고 당신 역시 뒤집어 보나 바로 보나 조선 아내거든."

혹시나 남편의 어느 한 구석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테리강 같은 모습이 있을까 찔러 보았지만 역시나 남편은 태리강 보다는 방귀남 아니 방장수(유준상 아버지-장용분)에 가까웠다.

결혼 30년을 바라보는 지금 방귀남으로 살아온 남편을 테리강으로 바꾸는 것은 내가 김남주로 바뀌는 것만큼 불가능한 일임을 알기에 그저 모니터 속 테리강을 보며 대리 만족을 느낄 수밖에.

아~ 그러나 아줌마는 꿈꾼다.

'나도 저런 남편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사흘만 살아봤으면...'


태그:#넝쿨째 굴러온 당신, #유준상, #방귀남, #테리강, #김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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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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