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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주말 어렵사리 짬을 내 일곱 살배기 아이를 데리고 동물원을 찾았다. 나 어릴 적 부모님이 그랬듯, 동물원은 내 아이에게 마땅히 보여줘야 할 '당위성 있는 장소' 같은 것이었다. 무더위에도 관람객이 많았다. 대개는 유모차를 끌거나, 손에 풍선이 들린 또래의 가족들이 대부분이었다.

도회지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테지만, 불과 1000원 안팎인 값싼 입장료에 즐길 수 있는 이만한 도심 속 휴식처는 흔치 않다. 잘 가꿔진 숲과 그늘 속 아늑한 자리마다 놓인 벤치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노인과 젊은 연인 할 것 없이 모두를 위해 안성맞춤이다.

터널 같은 가로수 길을 지나면 진짜 동물원 영역이다. 동물들마다의 퀴퀴한 분뇨 냄새가 관람객을 맞는다. 족히 두어 시간이면, 주변의 익숙한 것들부터 우리나라에는 서식하지 않는 갖가지 희귀 동물들을 실제로 접할 수 있으니, 사실 역한 냄새쯤은 문제될 것 없다.

그런데, 내 아이뿐만 아니라, 동물원을 찾은 대부분의 아이들의 표정이 신기해하거나 그리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한 아이는 동물우리 안내판에 적혀 있는 이름과 설명을 안 보고도 줄줄 외웠고, 대부분은 그저 부모와 함께 사진 찍기에 바빴다.

"아빠, 저 바닥을 긁고 있는 불곰 좀 봐. 자칫 발톱 다치겠어. 저 안에 갇힌 불곰이 너무 불쌍해!"

한참 동안을 서서 지켜봤는데, 우리 안의 불곰은 관람객과 눈 한 번 마주치지 않은 채 연신 콘크리트 바닥을 긁어댔다. 일반적인 습성인지, 아니면 스트레스로 인한 행동인지 알 길 없으나, 아이의 눈에는 그렇게 비친 모양이다.

동물원, 무슨 이유로 필요해졌을까

동물원의 곰
 동물원의 곰
ⓒ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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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우리가 뭐 저래? 쇠창살로 된 감옥이네. 뭐."

바로 옆에 있던 다른 아이의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공격성이 강하고 힘이 센 탓에 어쩔 수 없는 노릇일 테지만, 쇠창살로 된 우리가 정작 불곰이 보이지 않을 만큼 촘촘할 뿐만 아니라 옆면과 윗부분까지 덮고 있어 누가 봐도 감옥 같았다.

불곰만 그렇게 보인 건 아닌 모양이다. 어느 동물을 만나든 아이들은 가엾다는 말을 내뱉었다. 그들의 고향이 여기서 얼마나 먼 곳인가를 물으며 저들도 고향 생각이 나지 않을까 묻고, 아마 그 때문에 구석에 머리를 박은 채 쭈그리고 앉아있거나 종일 바닥을 긁는 것이라 분석하듯 말했다.

심지어 "마주친 동물들의 눈망울이 눈물 흘리며 우는 것처럼 정말 슬퍼보였다"고도 했다. 사슴과 양, 기린과 같은 초식동물은 말할 것도 없고, 덩치 큰 코끼리도, 맹수인 호랑이와 사자마저도 하나 같이 눈물 그렁그렁 맺힌 슬픈 눈이었다며...

아이들은 더 이상 동물원의 동물들을 신기해하지 않았다. 사진과 실제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미 동물도감 같은 백과사전이나 인터넷 등을 통해 익히 봐온 탓이다. 한 때 공룡에 대한 박사 아닌 아이가 없듯, 동물원에서 보고 익힌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지식을 그것들을 통해서 배운다.

실제의 행동을 눈으로 보면 동물의 고유한 습성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겠지만,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의 모습은 인터넷 사진 속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먹이를 받아먹을 때 빼고는 움직임이 거의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습성을 발현할 공간이 너무 비좁아 한두 마리가 움직이기조차 거추장스럽다.

광활한 세렝게티 초원에서 풀을 찾아 강을 건너는 야생 누를 잡아채는 무시무시한 포식자 악어는, 적어도 동물원에서는 무슨 백화점 유리 케이스 안의 상품처럼 '전시'돼 있고, 날개를 펴면 사람 키를 훌쩍 넘는 하늘의 제왕 독수리는 닭장 같은 곳에 갇혀 조련사가 던져주는 모이를 주워 먹는 처지다.

아이들은 그저 동물원이 애꿎은 동물들을 잡아다 가둬놓고 사람들 구경시키는 곳이라 여기는 듯하다. 동물이 사는 집을 콘크리트와 쇠창살로 만들어놓고, 외부 벽에는 초록색 페인트로 숲을 그려놓은 모습이 우스꽝스럽다고 말했다. 늘 그렇듯, 그들의 진솔한 눈은 어른들의 '가식'을 정확히 꼬집어낸다.

"아빠, 동물원이 왜 필요한 거지? 그리고 언제부터 생긴 거야?"

아빠 노릇 제대로 해보려고 데려왔건만... 되레 뭐라고 딱히 답변하기 곤란한 질문 세례만 받았다. 호기심 많은 어린이들을 위한 것이라며 눙친 채 모면했지만, 그 질문이 없었다면 동물원의 필요성과 기원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없었을 터다.

쾌적한 환경 제공·동물 개체 보존... 과연 그럴까

동물원의 호랑이
 동물원의 호랑이
ⓒ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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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동물원이야말로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최고의 휴식 공간이자 자연 학습장'이라고 강조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동물원에 아무도 오지 않는 날은 지금껏 없었다며, 사방이 인공에 갇혀 사는 도시민들에게 위안을 주는 유일하다시피 한 '자연'이라는 것이다.

또, 어떤 이는 동물원이 없다면 수많은 동물종이 멸종을 맞게 될 것이라며, 생태계 보존의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말한다. 동물원의 존재 이유가 '관람'이 아닌, '보존'이라는 거다. 야생 동물을 가축 또는 관상용으로 길들이려는 저 먼 옛날 초창기 때의 의도와는 사뭇 달라진 셈이다.

곧, 동물원이야말로 시민의 휴식과 학습 장소를 제공하는 등 삶의 질을 높이고, 한편으로 다양한 동물종을 보존하기 위한 '일석이조'의 방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자상한 설명에도 쉬이 납득이 되질 않는다. 아이들의 반응은 더욱 솔직해서 '개뿔'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시민들이 쉬는 곳은 동물원이 아니라 주변에 잘 가꿔진 숲이고, 동물에 대한 지식은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으로 더 잘 배울 수 있다. 아이는 동물을 위하겠다는 곳에 웬 콘크리트에 감옥 같은 쇠창살이냐는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하고 있었다. 아무리 유능한 조련사도 일단 우리에 들어가면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사라질 것이라고 이구동성 말했다.

'주의 사항'이 무색한 주변 환경

시끄러운 롤러코스터(사진은 네덜란드의 한 놀이공원)
 시끄러운 롤러코스터(사진은 네덜란드의 한 놀이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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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황당한 것은 동물원 옆에는 마치 한 세트인 양 놀이공원이 들어서 있다는 점. 사자가 낮잠 자는 곳 옆으로 롤러코스터가 지나가고,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는 하마 옆으로 관람차가 돈다. 물론, 놀이공원에서는 대화도 들리지 않을 만큼 시끄러운 음악을 하루 종일 틀어댄다. 동물원과의 거리는 불과 걸어서 10분 거리도 안 된다.

아무리 문외한이라도, 왁자지껄한 놀이기구의 소음이 동물들에게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줄 것이라는 것쯤을 알 수 있다. 동물들이 바닥을 종일 긁어대거나 머리로 우리를 치받는 등의 낯선 행동을 보이는 건 어쩌면 하루 종일 들리는 소음 탓일는지도 모른다.

그래놓고는 미성숙한 관람문화가 동물들에게 스트레스를 준다는 식의 '주의 사항' 글귀가 버젓이 울타리마다 내걸려 있다. 정작 동물들을 괴롭히는 것은 시민들의 관람문화가 아니라, 삭막한 주거시설과 종일 소음을 유발하는 놀이공원 같은 '미성숙한' 동물원 환경이라 해야 옳다.

솔직히 고백할 필요가 있겠다. 백 번 양보해서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서 제대로 기능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동물원은 동물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동물의 권리 운운하기는커녕 주거 공간이라 부르기도 어색한, 아이들의 솔직한 표현대로, 그저 감옥이다.

"다음부턴 동물원 안 갈래!"

인간의 탐욕이 주거지를 끝없이 넓혀갔고 결국 동물들이 살아갈 공간을 빼앗은 결과가 동물원이라면, 곧, 그들을 다시 고향으로 돌려보낼 수 없다면, 적어도 고향 같은 동물원 환경을 조성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동물원을 놀이공원과 격리시키고, 관람 편의보다는 주거를 더 감안한 우리로 개축할 것을 제안한다. 예산이 없어 어렵다면, 적어도 국립 광릉수목원의 사례처럼 동물원 관람 인원을 대폭 제한하거나 요일별 관람 동물을 개별 지정하는 등의 방안은 어떨까. 요컨대, 동물종의 '보존'을 넘어 그들과의 '공존'을 모색해야 할 때가 아닐는지.

집에 돌아오는 길, 동물원 구경이 기대에 못 미쳤던지, 시큰둥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아이가 어른이 될 그때쯤이면, 모르긴 해도, 지금 같은 '관람용' 동물원이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아빠, 동물원 오는 것보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동물의 왕국> 보는 게 훨씬 재밌어! 냄새도 나고, 시끄럽고, 다음부턴 동물원 안 갈래!"


태그:#동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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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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