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했던 옛 마을과 거리들이 잊히고 있다. 전주 영화관의 옛 거리, 인천 배다리 헌책방 골목, 충주 봉방동 올갱이 거리, 서울 마천동 골목길 등. 그토록 유명했던 그 도시와 거리들이 사라지는 이유가 뭘까? 전통을 복원하고 보존하기보다 그저 새로운 도시와 타운에만 관심을 쏟는 까닭이다.
문화재 발굴사업이나 문화재 보존가치와 같은 국가적 차원이 아니더라도, 옛 마을과 거리를 지키는 전통사업은 중요하다. 예전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김정헌 위원장이 쓴 책을 봤더니 여러 예술인들이 힘을 합쳐 지역마을을 예술명소로 만든 사례를 소개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도시지역들도 그렇게 복원하고 보존한다면 얼마나 멋질까?
사실 유럽의 건축물과 도시지역은 전통을 중시한다. 그들은 500년이 지난 집들도 외형은 그대로 두고 내부만 새롭게 바꾼다고 하지 않던가. 더욱이 그 집을 지은 사람의 이름도 그대로 새겨 놓은 채 말이다. 물론 건축물만 그런 건 아니다. 그들은 그 지역의 명소도 보존하고, 나름대로 활력 찾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도시재생사업단의 <역사와 문화를 활용한 도시재생 이야기>도 그런 가치를 발견케 한다. 국토해양부의 가치창조 사업의 하나로 촉발된 '도시재생사업단'은 세계 각국의 도시지역에서 이전의 쇠퇴기를 맞이했다가 다시 활력을 되찾은 재활성화 도시지역의 사례를 선보여준다. 그를 통해 우리나라의 도시도 나름대로의 사회경제적인 활력을 모색토록 하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을 것이다.
"역사․문화 보존은 문화의 계승이라는 근본적 목적을 넘어 매우 다양한 측면에서 시민에게 영향을 미친다. 흔히 상투적으로 말하는 것이 관광을 통한 경제적 효과다. 그러나 이 보다 더 중요한 목적과 효과는 시민의 문화적 삶이 향상되는 것으로서, 역사 보존을 통해 시민의 삶의 환경은 시간의 깊이를 더하며 풍부해질 것이다. 천편일률적인 아파트 주거지와 유리상자 투성이의 오피스 건물 중심지에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이로써 시민은 선택의 다양성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왜 사람들이 서울의 북촌이나 삼청동으로 오는가? 왜 강남의 가로수길로 오는가? 바로 현대적인 거대 건물이 줄 수 없는 분위기가 존재하는 동시에 다양성과 선택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문화 재생의 개요)이 책에는 미국의 워싱턴 주에 속한 메인스트리트 프로그램을 통한 지역재생의 길을 모색한 사례를 비롯해, 일본의 가나자와 수변 공간 재생 마을, 홍콩의 웨스턴마켓과 성완퐁 재생사업, 사회통합적 도시재생 프로그램을 활용한 독일의 베를린 마을, 영국의 예술 도시 재생마을인 게이츠헤드, 그리고 이탈리아의 밀라노 조나 토르토나의 자생적 문화산업지역 등의 여러 사례를 담고 있다.
일례로 일본의 가나자와 지방은 에도시대에 상공업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그곳은 사금(砂金)을 씻었던 습지로도 유명하고. 16세기 중엽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우두머리 가신인 '마에다 도시이에'가 그 성에 입성했고, 300년간 걸쳐 그 집안이 그곳을 통치했다고 한다. 그토록 번성했던 그곳이 메이지유신 이후에는 근대화에 밀려 퇴락했는데, 그 덕분에 2차 세계대전의 폭격은 모면했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지진 등의 자연재해가 없어 '숲의 도시'로도 불린다는 사실.
일본에서는 이런 그 지역의 특징을 반영하고, 그 시만의 경쟁력을 되찾고자 '경관보존조례'를 제정했고, 주민의 문화․예술 기회 창출 등의 쾌적한 정주환경을 만들고자 온 힘을 기울였다고 한다. 도시재생사업과 경관조성사업도 그런 일환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른 절차도 1974년에 녹지도시선언, 1992년엔 경관도시선언, 2007년엔 문화적 경관실태조사 실시, 2008년엔 역사유산 보존활용 마스터플랜 수립, 2010년엔 전통가옥 재생활용 지원제도 등으로 개발했다고 한다.
"가나자와 시는 유네스코 창의도시네트워크 사업의 공예․민속예술 분야에 등록된 도시로서, 전통산업 육성과 이를 통한 역사․문화 경관 관리 및 도시재생을 진행한 것이 특징적이다. 이는 에도시대 마에다 가문이 추진한 전통공예 장려 정책의 결과라고 할 수 있는데, 현존하는 가나자와 시의 전통공예는 스물두가지에 달하며, 교토보다도 콘텐츠가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많은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인간문화재)와 일본예술아카데미 회원을 배출했다."(80쪽)한편 '이탈리아'하면 떠오르는 게 있다. 패션 뿐 아니라 가구, 조명, 건축 그리고 인테리어 자재에 이르기까지 그 명성은 디자인 분야에서 독보적이다. 그 핵심에 밀라노가 있고. 그만큼 밀라노는 예술과 미적 감각이 넘쳐나는 도시다. 더욱이 매년 열리는 밀라노 가구박람회는 전 세계 유명·무명 디자이너와 업체, 학교와 학생들, 그리고 공방과 기술개발 연구자들, 그리고 출판사와 잡지 등 모든 관계자들이 참여한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조나 토르토나의 자생적 문화산업지역'은 이 책에서 눈여겨보는 지역재생 사업이다. 19세기 중반까지는 그 지역도 농업 시스템에 기반을 둔 곳이었는데, 19세 말엽에 들어서 공장부지와 상업부지로 변화하여 밀라노에 편입되었다고 한다. 더욱이 비제바노로 연결되는 철도와 포르타 제노바 역이 건설되면서부터는 도지조직의 구조와 형태를 띠게 되었다고 한다. 점차 그곳에 안살도, 비슬레리, 리바 칼조니, 리차드 지노리, 오스람, 네슬레 등의 공장이 들어서면서부터 명실상부한 디자인 산업지역이 되었다고 한다.
"어디까지가 집행이고 어디까지가 지원인지, 어떨 때 집행을 위주로 하고 또 어떨 때 지원을 위주로 해야 하는지 판단하기란 사실 쉽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속적인 도시재생, 특히 문화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도시재생을 이루고자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지역민의 사회문화적․경제적 역량 강화가 그 계획의 시작이자 과정이며 결과여야 한다는 것이다."(341쪽)이것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사항일 것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의 역할과 분담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지역민들의 역량이 강화돼야 하는 것 말이다. 그것이 없다면 무늬만 재생마을로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지역재생마을이 전 세계인들의 관심을 끌고자 한다면 그 지역민들의 가치관과 의식을 새롭게 해야 한다. 그 어떤 지역이든, 그 어떤 거리든, 그 지역민의 관심과 협력을 기반으로 전통과 새로움의 가치가 창출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