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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민간인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박윤해 부장검사)의 송찬엽 서울중앙지검 1차장이 서초동 청사 13층 브리핑실에서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13일 오후 민간인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박윤해 부장검사)의 송찬엽 서울중앙지검 1차장이 서초동 청사 13층 브리핑실에서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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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민간인 사찰이 화두다. 지난 총선 당시 야권의 여권에 대한 가장 확실한 공격수단으로 이용되다가 야권의 총선 패배 이후 잠시 묻혀있던 민간인 사찰 문제가 이번 검찰의 재수사 발표 후 다시 불거진 것이다.

민간인 사찰에 대한 검찰의 발표는 역시나 세간의 추측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았다. 몸통은 이영호와 박영준이었으며 그 윗선의 개입은 절대 없었다는 것. 그러나 이와 같은 발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국민은 거의 없다. 민간인 사찰의 몸통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고, 현 정부에서 진실은 밝혀지기 어렵다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합리적인 추측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언제쯤 사건의 전모가 밝혀질는지.

하지만 이번 검찰의 발표와 관련하여 개인적으로 더 눈에 띄는 건 청와대의 반응이었다. 그동안 민간인 사찰은 통합민주당의 정치공세일 뿐이라며 펄펄 뛰던 청와대의 표명이 생각 외로 아주 간단명료했기 때문이다.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직권남용 등에 청와대에 근무했던 사람들이 관련되었다는 점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송구한 심정입니다. 청와대는 이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더욱 각별히 노력하겠습니다. 2012년 6월 13일 홍보수석"

청와대의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이번 민간인 사찰은 어디까지나 과거 청와대에 근무했던 사람들이 관련된 사건일 뿐, 청와대와는 상관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민간인 사찰의 문제가 아니라 직권남용의 문제라는 시각. 결국 청와대는 국가권력의 '사찰'이라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인지하지 못하거나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사찰'이라는 것이 그리 쉽게 지나갈 문제인가?

"어제 누구 만났어?" 가슴 덜컹한 '아내의 사찰'

한 달 전이었다. 그 전날 과음으로 쓰라린 속을 부여잡은 채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데 불현듯 아내에게서 문자가 왔다.

"어제 누구 만났어?"

순간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고 등골에 식은땀이 맺혔다. 평소 같았으면 별 것도 아닌 질문이건만, 어제 약속과 관련해서는 요 며칠 동안 아내에게 거짓말을 했었기에 아내의 질문이 예사롭지 않게만 느껴졌다. 이어지는 찰나의 갈등. 다시 얼버무리고 말아? 아님 솔직히 불어?

그리나 이내 나는 사실을 고하기로 결심했다. 며칠 동안 같은 질문을 해대는 아내의 태도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녀가 이미 나의 뒷조사를 통해 진실을 알고 있음을. 아마도 스마트폰을 통해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훑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친구들을 만났다는 대답에 아내는 거칠게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거래처 약속이라며? 또 거짓말 하고."
"당신이 알면 속상해 하니까 이야기 않은 거야."

"나중에 알면 배신감 느껴. 무지 기분 나빠. 부부 간에 가장 중요한 건 신뢰야."
"나한테는 두 가지 경우 밖에 없어. 거짓말을 완벽히 하거나 아님 당신한테 걸려 혼나거나. 그런데 어차피 양쪽 다 스트레스의 총량이 같다면 당신이 덜 기분 나쁠 확률을 생각하게 되는 거지."

"그래도 처음부터 솔직하게 말해. 거짓말보다 나아. 집 상황을 보고 약속도 잡고. 무조건 사람 만나지 말라는 게 아니잖아."
"아마 내가 이야기했으면 만나지 말라고 했을걸? 당신이 이해 못 해도, 나는 가야하는 경우는 왜 생각 안 해?"

"그럼 나를 이해시키면 되잖아."
"그게 힘들다고 느껴지니까 이러지."

그렇게 우리의 날 선 대화는 계속됐고, 결국 잠시 휴전을 가진 뒤 서로에 대한 '급사과'로 마무리 되었다. 나는 아내에게 거짓말을 해서 미안하다고 했고, 아내는 너무 열내서 미안하다고 했다.

아내의 사과가 석연치 않은 이유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의 한 장면.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의 한 장면.
ⓒ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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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또 그렇게 봉합된 부부싸움. 그러나 남편인 나는 그런 화해가 마냥 속 편하지는 않았는데, 그것은 바로 아내의 '사찰' 때문이었다.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나의 스마트폰에서 통화내역과 문자 등을 마음대로 보며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아내가 끝내 못마땅했던 것이다.

아무리 나의 거짓말이 잘못됐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아내의 사찰을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옳은 일일까?

물론 부부 간에 그런 것도 못하냐는 반론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애인 사이에도 하는데 하물며 모든 것을 공유해야 하는 부부 사이에서 무슨 사찰을 운운하냐는. 우선 나 역시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지금까지 대놓고 아내에게 뭐라고 하지는 않고 있는 것이 사실 아니던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내의 사찰을 심적으로 100% 수용할 수 없었다. 그것은 부부이기에 앞서 존재하는, 개인으로서의 나를 인정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이며, 그 개인이 갖는 사생활을 존중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나의 불편함은 '사찰'이란 행위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와 관련되어 있었다. 아무리 그 주체가 배우자라지만 나도 모르게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서 연유되는 자기검열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부부 간의 사찰 문제도 이렇게 고민이 많을진대 하물며 국가의 개인에 대한 사찰이다. 게다가 상호 동등한 부부의 지위와 달리 국가와 개인 간의 지위는 그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다. 당장 우리는 정부의 민간인 불법 사찰이 한 개인의 일상을 어떻게 망쳤는지 직접 보지 않았던가.

따라서 이번 민간이 사찰과 관련하여 정부는 좀 더 성의있게 사과해야 하며, 그와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적으로도 조치를 취해야 한다. 사찰은 개인의 자유로운 생각과 표현을 제한한다는 면에서 민주주의의 가장 큰 적이며, 그들이 그토록 부르짖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근간을 가장 확실히 뒤흔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부디 정부는 민간인 사찰에 대한 진실에 침묵하지 말기를.


태그:#민간인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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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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