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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새벽0시 전국의 택시들이 멈춰선다. 회사 소속 택시든, 개인택시든 가리지 않는다. 사상 초유의 일이다. 택시 노동자 등 2만 여 명은 이날 오후 1시 서울 시청 광장에 모인다. 대중교통 법제화, LPG가격 안정화 등을 요구한다. 한마디로 먹고 살기 힘들다는 것이다. 택시 노동자들의 힘겨운 삶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마이뉴스>가 18~19일에 걸쳐 만난 택시 기사들은 절박했다. 개인택시와 법인택시 기사의 이야기를 담았다. [편집자말]
19일 오전 1시 서울 마포구 상수역 인근 도로. 택시들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19일 오전 1시 서울 마포구 상수역 인근 도로. 택시들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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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6시, 집에서 나온 지 14시간이 지났다. 지금까지 번 돈은 12만 원 남짓. 좀 더 벌어야 집에 들어갈 수 있다. 요즘은 날씨가 더워 낮에 손님이 없다. 밤 12시까지 일을 한다. 하루에 4시간 잔다. 그러니 가끔 낮엔 길거리에 주차한 상태로 잠을 청하기도 한다. 그러다 주차단속 카메라에 찍힌 적도 있다.

법인택시 기사들은 나(이아무개·62·개인택시기사)를 부러워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틀 일하고 하루 쉬는 탓에, 이틀 동안은 죽어라고 일만 한다. 하루 16시간에서 20시간을 일한다. 몸은 피곤하지만, 지병으로 누워있는 아내가 있다. 또 곧 장가갈 아들 녀석의 결혼비용이라도 보태려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죽어라 일해도 치솟는 LPG 값과 차 수리비, 보험료, 매월 조합에 내는 돈을 제외하면 한 달에 150~180만 원 정도 번다. 그나마 하루라도 쉬게 되면 수입은 뚝 떨어진다.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들어 저축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40년 개인택시 이아무개씨] 하루 20시간씩 일해도 먹고 살기 힘들어

운전대를 잡은 지 40여 년 됐다. 스무 살에 운전면허를 땄다. 군대 가서 미군이 버리고 간 차를 개조해 만든 군용트럭을 몰게 된 게 계기가 됐다. 제대하고는 덤프트럭 운전을 했다. 남 밑에서 운전을 했지만 수입도 꽤 괜찮았다.

돈이 조금 벌리자 1톤 트럭을 사서 용달 일을 했다. 하지만 장거리 운전이 많고 집에 제대로 들어가지 못하는 날이 많아지면서 일을 그만두었다. 개인택시 운전을 시작했다.

내가 처음 개인택시를 탔을 때는 LPG(액화천연가스)값이 700원(1리터당) 정도였다. 그때는 나가면 얼마라도 돈을 벌 수 있었다. 밤에 잠을 자지 않고 일을 하더라도 즐거웠다. 개인택시는 운전하는 만큼 돈이 벌렸다.

하지만 기름값이 오르면서 수입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2007년 당시 이명박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택시를 대중교통법에 포함시켜준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나는 진보니 보수니 이런 것들은 모른다. 돈을 더 벌 수 있게 해준다는 말에 그를 지지했다. 그렇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하루 종일 일해도 LPG값 빼면 남는 게 없어... 가격 낮춰야

택시에 "살인적인 LPG값, 택시업계 다 죽는다!"는 문구 스티커가 붙어 있다.
 택시에 "살인적인 LPG값, 택시업계 다 죽는다!"는 문구 스티커가 붙어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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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도에 비해 기름값은 500원 가까이 올랐다. 물가도 그만큼 올랐다. 하지만 택시요금은 3년 넘게 오르지 않았다. 하루 종일 뼈 빠지게 운전해봐야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아우성을 쳐도 정부는 대답이 없다.

오늘도 기사식당에 들렀다. 점심 겸 저녁이다. 식사 값을 아끼려니 가격이 싼 기사식당을 찾게 된다. 이곳에 식사를 하러 온 사람들 중엔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도 모두 20일 전국의 모든 택시가 파업에 들어가기로 한 것에 관심이 많다.

나는 택시기사가 먹고 살려면 정부와 지자체에서 택시에 대한 지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택시도 대중교통수단이나 다름없다. 버스에 지원하는 돈의 3분의 1만이라도 지원한다면 택시기사들도 힘이 날 것이다.

당장 급한 것은 하늘 모르고 치솟는 LPG값을 내리는 것이다. 최소한 2007년 이전의 가격으로 낮춰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3년 이상 올리지 않았던 택시요금을 현실화하는 것이다. 이 문제로 법인택시 운전하는 사람들과 잠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물론 법인택시 기사들은 택시요금이 올라가면 회사에 내야 하는 사납금이 늘어나 더욱 힘들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사납금을 올리지 못하게 하면 그들도 찬성할 것이다.

20일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택시생존권사수 결의대회에 참가할 것이다. 하루 돈을 못 버는 게 걱정이지만, 그래도 우리 먹고 살게 해 달라고 정부에 호소할 테다. 아직 내 아내와 자식들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

[법인택시 기사 김아무개씨] 김밥 씹으며 사납금·LPG값 벌어..."너 그러다 죽어"

18일 오후 법인택시 운전기사인 김동대(59)씨가 차량에 시동을 걸 준비를 하고 있다.
 18일 오후 법인택시 운전기사인 김동대(59)씨가 차량에 시동을 걸 준비를 하고 있다.
ⓒ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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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네들이 사장이야? 직원 주제에 왜 요금 가지고 뭐라 하는 겨."
"그러게. 요금 올리고 사납금을 많이 걷어야 월급도 팍팍 주는 거지!"

한 개인택시 기사가 법인택시 기사들을 향해 핏대를 세웠다. 옆에서 담배를 물고 있던 개인택시 기사가 한 마디 거들었다. 속에서 울분이 솟아올랐지만 참았다. 나(김아무개·59·법인택시 기사)도 모르게 셔츠 앞주머니에 있던 담배를 꺼내 물었다. 오늘 이 가게에서 저녁을 먹지 말아야 했다.

오후 6시께 퇴근길 손님들을 허겁지겁 태우던 중 배가 고파질 때면, 이 집 감자탕이 당긴다. 가격도 다른 집보다 1000원 싸다. 그런데 밥 좀 먹으려고 오면 이미 개인택시들로 주차장이 빽빽하다. 영업시간 제한이 없는 개인택시 기사들은 일찍 저녁을 먹으러 이 집에 온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개인택시 기사들만 입는 연파랑색 줄무늬 셔츠 차림의 그들이 식당 앞에 줄지어 서 있다. 담배를 깊고 길게 피우거나 왁자지껄 수다를 떨고 있는 그들 모습을 보면, 마음 어딘가 쓸쓸해져 어깨가 움츠러든다.

나 같은 법인택시 기사들은 그런 여유를 부릴 처지가 못 된다. 개인택시 기사들은 체력만 되면 하루 18시간도 일할 수 있다. 우리 영업은 하루 12시간으로 정해졌다. 세차하고 LPG 가스 충전하고 차 교대하는 시간들을 빼면 사실상 일할 시간은 10시간뿐이다. 매일 내야 하는 사납금 12만8000원을 벌기 위해선,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바짝 달려야 한다. 세금 떼고 나면 80만 원 밖에 안 남는 월급인데, 사납금으로 깎이게 놔둘 순 없다. 그래도 나는 양반이다. 4개월 전에 들어 온 동생은 새로 나온 꽃담황토색 택시라서 사납금이 13만4천 원이나 된다.

요즘엔 치솟는 LPG 가격 때문에 더 피가 마른다. 30년 동안 택시 영업을 했지만, LPG값 때문에 이렇게 힘들어 보긴 처음이다. 2009년 870원 정도일 때만 해도 괜찮았는데, 1100원이 훌쩍 넘는 지금은 감당하기 부담스럽다. 가뜩이나 연비 리터(ℓ)당 6km 밖에 안 나오는데, 에어컨까지 틀어야 하는 여름엔 LPG값 앞에서 벌벌 떤다.

요금 오르면 사납금도 껑충 뛰어... 지원금 확대 원해

19일 오전 서울역 앞. 택시들이 손님을 태우려고 대기하고 있다.
 19일 오전 서울역 앞. 택시들이 손님을 태우려고 대기하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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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하루 25ℓ를 지원해주지만, 일하다 보면 보통 45~50ℓ를 쓴다. 나머지 20ℓ 가격을 내 돈 약 2만4000원으로 메워야 한다. 거기에 매일 들어가는 세차비, 밥값까지 합하면 17만 원은 벌어야 적자를 면한다. 1시간마다 미터기가 1~2만 원씩은 올라가야 하는 셈이다.

말처럼 쉽진 않다. 낮에는 손님 없이 차만 끌고 다니니 LPG값만 나간다. 요즘에는 버스노선이나 운행횟수가 늘어나 사람들이 택시를 안 탄다. 오후 11시부터 오전 1시까지 지하철이나 버스가 끊겨 발을 구르는 사람들을 최대한 많이 태워야 한다. 이때는 밥 먹을 시간도 없다. 배가 고파지면 김밥 하나를 사 조수석에 놓고 한 개씩 '씹으며' 새벽 5시까지 영업을 뛴다. 쉬면 안 된다. 7만대나 되는 서울 택시들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계속 달려야 한다.

이런 나를 보며 회사 동료는 "너 그러다 과로사로 죽어"라며 걱정 어린 잔소리를 던진다. 나도 안다. 오줌 싸는 시간 빼고 일만 하다 세상을 뜬 동료가 내 주변에 3명이나 된다.

20일 택시업계 전체가 하루 쉬고 서울 시청광장에 모일 거라 한다.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택시회사들도 참가한다. 꼬장꼬장하던 우리 사장도 "그날 하루 쉽시다"고 직원들에게 말했다. 이런 자리에 한 번도 끼어들지 않던 회사까지 나서는 걸 보면 신기하다. 문제가 심각한가 보다.

하지만 어딘가 찜찜하다. 뉴스를 보니 '요금인상'도 요구하는 거 같던데, 우리 같은 법인택시 기사들은 요금 올리는 게 별로 달갑지 않다. 회사만 좋지, 기사들에게 이득이 되는 건 별로 없다. 오히려 사납금만 올라 더 숨통 조여 올 터다. 지난 2006년 택시비가 1900원에서 2400원으로 올랐을 때, 사납금은 1만7000원이나 올랐다. 인상된 요금은 사장에게 돌아갈 게 뻔하다. 내가 월 100만 원 겨우 손에 쥘 때, 사장은 택시회사 13개, LPG 주유소 2곳, 정비공장 1곳 등을 경영하게 됐다.

실질적으로 내 지출을 줄여줄 정책을 원한다. ℓ당 221원인 유류세를 더 지원해주거나, 정부가 개입해 사납금을 낮춰줬으면 한다. 대중교통 입법화가 되면 버스들처럼 정부나 지자체가 지원금도 늘려주고 전체 운행 관리도 해줄 거라 들었다. 

20일 하루 쉰다고 달라질지 모르겠다. 여의도 정치판에선 선거 때만 되면 "택시를 대중교통 안에 넣어주겠다, 보조금 늘려주겠다"라고 한다. 그러나 선거 끝나면 입을 싹 닫는다. 그래서 이번에도 뭔가 바라는 자체가 불안하다. 오늘따라 담배가 쓰다. 손님이나 태우러 가야겠다. 


태그:#택시 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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