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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유명 언론을 타고 급속하게 퍼지기 시작한 '슈퍼 푸드'가 웰빙 붐을 타고 연일 매스컴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그 결과,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했던 바다 건너 과일이 최근 몇 년 사이 친숙한(?) 과일이 됐다. 그 이름은 바로 블루베리. 과일이라면 종류를 크게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나는 언론을 통해 보았던 까만 열매의 이국적인 외양과 맛이 자못 궁금했다. 주변에도 나와 같은 호기심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몸에 좋은 건 알지만 가격도 비싸고 쉽게 구할 수 없다는 하소연을 듣기도 했으니까.

내가 처음 접한 블루베리는 냉동과육이었다. 머릿속으로 그렸던 판타지와 그리 잘 들어맞지 않았지만, 믹서에 갈아서 우유나 플레인 요구르트에 넣어 먹으니 그런대로 풍미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백화점 매장에서 생과실인 채로 등장한 블루베리와 마주친 순간! 참을 수 없는 호기심에 나는 거금(?)을 들여 블루베리를 구입했다. '이번엔 과연?'이라는 강한 물음과 함께 입속으로 투하된 나의 판타지는 '밍밍하고 별 볼 일 없는 맛'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평범한 평가로 처참하게 깨지고 말았다. '몸에는 좋으나 맛이 없는 과일이었어'라는 씁쓸한 뒷담화를 남긴 채 말이다.

블루베리는 내 판타지였다

블루베리가 탐스럽다. 논산 푸른들 농원에서는 시설 재배를 통해 수확기를 앞당기고 수확기를 늘리는데 성공, 5월부터 7월까지 비교적 긴 수확기를 자랑한다.
▲ 블루베리 열매 블루베리가 탐스럽다. 논산 푸른들 농원에서는 시설 재배를 통해 수확기를 앞당기고 수확기를 늘리는데 성공, 5월부터 7월까지 비교적 긴 수확기를 자랑한다.
ⓒ 국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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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며칠 전, 우연히 지역 민방을 통해 친환경 블루베리를 출하하는 농장을 담은 영상을 보게 됐다. 꿈과 현실의 괴리를 실감하고, 판타지의 씁쓸한 뒷맛을 되짚으면서도 자연스럽게 내 눈은 화면 속 검은 열매에게 꽂혔다. 어느새 자연스럽게 입맛을 다시고 있는 나를 발견했던 것이다. 다시 슬며시 고개를 쳐들기 시작하는 호기심.

'그래, 모든 과일이 직접 따서 먹으면 훨씬 향도 강하고 맛도 좋은 법이야! 이번엔 직접 농장엘 찾아가 맛보는 거야.'

인간의 모든 욕망 중에서도 가장 억누르기 힘든 것이 '호기심'이라고 했던가.

지난 19일 오후, 다짜고짜 찾아간 논산의 한 친환경 블루베리 농장. 농장 한 편에선 택배를 보내기 위한 일손이 바빠 보였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컨테이너 박스로 만들어진 조그만 사무실에 들어서자 나이 든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다. 과일을 사러 왔냐고 물었지만 말끝을 흐렸다. TV에서 본 사장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품종에 따라 맛이 다르다는 사전 지식을 습득한 나로서는 농장에 온 김에 서로 견학도 하고, 품종마다 다르다는 과일의 맛도 직접 따서 맛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용기를 내어 할머니께 "하우스 좀 둘러봐도 될까요?"라고 묻자 금세 허락이 떨어졌다.

주차장 한 편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는 먹음직스런 블루베리 열매들.
▲ 블루베리 열매 주차장 한 편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는 먹음직스런 블루베리 열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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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싸, 이때다' 싶은 마음에 서둘러 하우스 안에 들어가 수확기에 접어든 열매들을 이것저것 조금씩 따먹어 봤다. 역시 과일은 직접 따서 먹을 때가 가장 맛있다는 진리가 어김없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조금씩 되살아나기 시작하는 내 혓바닥 속 판타지! 이렇게, 맛있는 생과를 달랑 사서 집으로 그냥 돌아가기엔 너무 야속하지 않은가.

야외로 나갈 때마다 습관처럼 들고 나오는 카메라와 기자수첩, 볼펜을 차에서 꺼냈다. 사무실에 돌아가 다시 할머니와 마주본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곤 용기를 내어 "사장님과 대화를 해보고 싶은데요"라고 얼버무렸다. 할머니는 다시 의아한 표정을 보냈다.

나는 보다 분명한 소리로 "친환경 블루베리 농사를 짓는 사장과 인터뷰를 할까 싶은데요..."라고 말했다. 잠시 또 어색한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배달 갔다 돌아온 사장님이 때마침 등장했다. 내 안에서는 '할머니든 사장님이든, 차라리 과일이나 묘목을 사러 온 손님들이 더 편하지 않았을까?'라는 자책과 소심함이 커져 가고 있던 찰나에 말이다.

그래도 이대로 물러설 순 없다. 조심스럽게 사장님께 의도를 건네자 사장님은 얼마 전 TV와 각종 지역 언론에 나간 후, 몇 차례의 주문 폭주를 경험하고 그 후유증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역시 귀찮은 불청객이 온 게 분명해진 셈이다. 그때 사장님은 물었다.

"그런데 어디서 나오셨나요?" 

이 대답은 기회가 될 것인가. "저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입니다. 기사를 쓰기 위해 온 것은 아니었는데, 막상 와서 둘러보니 궁금한 것들이 많아서..." 다시 말끝이 흐려진다. 이 고질적이고 기질적인 소심함이란!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바라본 사장님의 얼굴은 그리 어둡지 않다. 이게 수락인지 아닌지 살짝 애매한 가운데 나는 눈을 빛내며 수첩과 볼펜을 꺼내들었다. 이하는 인터뷰를 통해 정리해 본 이기성(50·논산 푸른들 농원 대표)씨에 관한 귀농 이야기다.

호기심 앞섰던 블루베리 농사

진지하게 농사와 귀농에 대한 그의 생각을 전달하고 있는 모습.
▲ 논산 푸른들 농원의 대표, 이기성(50)씨 진지하게 농사와 귀농에 대한 그의 생각을 전달하고 있는 모습.
ⓒ 국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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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다니던 이기성씨는 도시에서 좌절을 경험한 후 6년 전 귀농을 결심한다. 고향에는 부모님이 살고 계셨지만, 농사 경험은 전혀 없었던 그였다. 막막함이 있었고, 고심 끝에 뭔가 남들과 다른 작물에 도전해보고 싶은 열의가 생겼단다.

우연히 그는 TV에서 본 북아메리카의 과일인 블루베리를 접했다. 껍질과 과육, 씨앗까지 모두 먹으면서도 몸에 좋다는 것, 그만한 과일이 있을까 싶었단다. 그러나 그 시절 블루베리에 대한 어떤 정보도 그에겐 없었다. 과일의 맛도 보지 않은 채 그는 무작정 묘목을 구해 심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블루베리를 취급하는 농장이 귀했기 때문에 자문을 구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고. 그만큼 그가 겼은 시행 착오는 많았다. 그는 "그땐 투자보다 호기심이 더 컸다"고 말했다. 이후 이기성씨는 무려 300~400여 가지가 넘는 품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70여 품종을 구해 재배하기에 이르렀고, 그 때문에 부모님에게 혼도 많이 났다고.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그는 검증을 마친 품종들을 모아 시설 재배를 하기 시작했고, 투자비용은 만만치 않았다. 노지 재배보다는 비를 피할 수 있는 하우스에서 키우기로 결심, 주변의 우려 섞인 만류도 있었지만 당도와 풍미를 높일 수 있는 쪽을 자신의 경쟁력으로 삼기로 작정했다.

시설 재배는 노지 재배가 가진 짧은 수확기의 단점을 보완하는 데도 탁월했다. 술과 담배, 커피 등 이미 몸에 해로운 음식들을 접하는 어른들보다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먹여도 해롭지 않을 과일을 생각했기 때문에 애초부터 무농약 친환경을 고집했고, 까다로운 인증 절차도 통과했다.

그러나 그의 솔직한 속내는 친환경과 더불어 우수한 맛을 만드는 데 더 큰 승부를 걸고 싶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그가 지키고 싶은 자존심이기도 했다. 아무리 몸에 좋다고 해도 맛이 없으면 찾지 않는 현실에게 다시 한 번 정면 승부를 벌이고 싶은 그의 배짱이고 포부였다.

"귀농? 도시 살 때보다 좋은 점 많아"

국내에서는 포트(화분)재배가 그리 활성화되지 않았지만 수확기를 앞당기고 당도를 높이는 등 많은 이점이 있다고 이기성(50) 대표는 말했다.
▲ 19일, 논산 푸른들 농원의 친환경 재배 현장 국내에서는 포트(화분)재배가 그리 활성화되지 않았지만 수확기를 앞당기고 당도를 높이는 등 많은 이점이 있다고 이기성(50) 대표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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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보다는 대중화됐다고 해도 블루베리는 여전히 고가의 과일이다. 소비자들에게는 비싼 가격이 부담스럽지 않을까.
"생과는 먹어본 사람이 다시 찾는다. 가격을 내리면 활로는 더 많이 뚫리겠지만 상품성을 지켜가기 어렵다. 직판을 선호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차라리 적게 팔더라도 맛을 더 보강하는 편이 낫다."

- 같은 지역에서 블루베리 재배 농가가 얼마나 되나.
"최근 10여 농가가 생긴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와 같이 하우스에서 포트(화분)로 재배하는 농가는 극히 드물다."

- 노지 재배보다 시설 재배의 유리함은 무엇인가.
"우리나라에서 블루베리 재배 역사는 짧다. 또한, 정립된 방식 역시 드물다. 농장마다 자신의 방식으로 시행착오를 겪고 노하우를 쌓은 것이라 어떤 방식이 좋다는 의견은 분분하다. 우리 농장은 같은 면적당 과실 수의 배치가 효율적이고, 더 나은 품종이 나왔을 때 화분을 교체하기 쉽다는 강점이 있다. 물론 화분이기 때문에 노지 재배처럼 많은 열매를 수확하지 못하고 노지 재배의 2분의 1가량을 수확하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맛은 자부할 수 있다. 크게 키운 나무는 열매가 많이 열리는 대신 나무가 쇠약해지기 쉽고 해거리도 온다."

- 귀농을 생각하는 분들에게도 해줄 말이 있다면 부탁한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그것도 말해 달라.
"나는 '성공'이니 '대박'이니 이런 말을 싫어한다. 귀농은 낭만으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환상을 버리고 제대로 현실을 직시하면 귀농도 도시인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기회가 있다면 귀농에 대한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도시에 살 때보다 좋은 점도 있다. 도시에 살 땐 못했지만 좋아하는 음악을 아무리 크게 틀어도 뭐라 할 사람이 없다. (웃음) 사람들은 시골에서 농사짓는다고 하면 풀이나 벌레나 흙과 함께 살 거라고 생각한다. 편견이다. 지금보다 훨씬 더 깨끗하고 편리한 시설을 만들고 싶다. 재배지가 깨끗할수록 병충해도 적다. 농사도 관행 재배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 요즘은 LED 식물 재배도 가능한 시대가 아닌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먹여도 해롭지 않을 과일을 생각했기 때문에 애초부터 무농약 친환경을 고집했고, 까다로운 인증 절차도 통과했다. 무엇보다 맛을 경쟁력으로 생각하고 있는 그의 뚝심을 엿볼 수 있었다.
▲ 논산 푸른들 농원의 대표, 이기성(50)씨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먹여도 해롭지 않을 과일을 생각했기 때문에 애초부터 무농약 친환경을 고집했고, 까다로운 인증 절차도 통과했다. 무엇보다 맛을 경쟁력으로 생각하고 있는 그의 뚝심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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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가 끝나갈 때, 일 나갔던 할머니가 들어오시며 "아니, 이 양반들 아직도 있어?"라고 한소리 던지신다. 그리고 시간을 보니 무려 3시간이나 흘렀다. 농사꾼들에게 일할 시간을 빼앗는 결례를 범한 것이다. 서둘러 인터뷰를 정리했다.

진심은 포장되지 않은 과육 같은 것이 아닐까. 잃어가던 혓바닥 속 판타지를 되찾아주고, 정직한 농심을 보여준 그에게 진심 어린 경의를 표한다. 돌아오는 길이 내내 따뜻했다.


태그:#슈퍼푸드 블루베리, #논산 푸른들 농원, #이기성 대표 , #무농약 친환경 농법 , #귀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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