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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상탄초의 5학년 행복통지표 모형.
 경기 상탄초의 5학년 행복통지표 모형.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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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에 있는 상탄초등학교. 이 학교 전체 40개 학급 1032명의 학생을 학교에 보낸 학부모들은 지난 5월 색다른 통지표를 받았다. 이른바 '행복통지표'란 별칭을 지닌 이 통지표의 '평가 안내'란 항목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었다.

"현재 상탄초등학교에서는 기존의 일제고사와 서열식 평가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5학년 통지표)

벌건 대낮에 공교육 기관이 학부모용 통지표에다가 '일제고사의 문제점을 해결하겠다'는 놀라운(?) 다짐을 한 것이다. 내용은 다음처럼 이어진다.

"서열과 점수 중심의 평가가 아닌 성장 참조형 평가를 실시하여 1년의 전반적인 학교생활을 돌아보는 과정중심의 평가를 합니다."

지난해 혁신학교가 된 이 학교는 올해부터 학교별 일제고사인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없앴다. 하지만 평가 결과를 통지하는 통지표는 더 두텁고 알차게 마련했다. 학부모들은 모두 3∼5장으로 된 자녀 통지표를 한 해 4차례나 받아볼 수 있다. 여느 학교보다 2차례가 더 많은 것이다.

'꿈을 키우며 더불어 살아가는 행복한 학교'의 실험

경기 상탄초 행복통지표는 한 해에 모두 4번 나간다.
 경기 상탄초 행복통지표는 한 해에 모두 4번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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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이 학교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일제고사의 맏형 격인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를 20여 일 앞둔 지난 7일 오후 경기도 일산의 아파트 숲속에 있는 상탄초에 가봤다.

이 학교 송병일 교장은 "우린 일제고사가 올바른 평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잘라 말한다. 학교를 책임진 교장이 기자한테 이런 발언을 하다니…. 일제고사를 신주단지 모시듯 껴안고 있는 교과부로선 눈이 돌아갈 소리다. 다시 송 교장의 말이 이어진다.

"지식을 달달 외우고 문제풀이 연습을 하는 일제고사는 학생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인성을 망가뜨립니다. 이렇게 되면 학교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이고 이들이 크면 각박한 사회가 되는 것이죠."

'꿈을 키우며 더불어 살아가는 행복한 학교'란 기치를 내건 상탄초 교원 49명이 학교 일제고사를 없앤 것은 올해 3월부터다. 그렇다고 평가를 없앤 것은 아니다. 일제고사를 없애니까 진짜 평가, 이른바 '참평가 계획'이 고개를 들게 되었다. 혁신학교라는 남다른 자율성과 동질성이 이런 결정을 가능하게 했다. 홍인기 혁신지원팀장은 다음처럼 말한다.

"우린 평가를 폐지한 게 아니다. 다만 시대에 맞지 않는 일제고사를 통한 선발적 평가 대신 발달과정 평가로 바꾼 것이다."

이 학교 교직원들이 만든 '2012학년도 참평가 계획'을 보면 정말 그랬다. 3월에 진단평가를 본 뒤 수행평가와 수시평가를 진행한다. 수행평가는 단원이 끝날 때마다 서술형과 논술식으로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기초학력 부진아와 교과성취도 부진아를 가려내 특별보충학습도 진행하고 있다. 이날 오후 3시쯤 수업을 마친 6학년 학생들 10여 명과 만났다. "올해부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없으니 어떠냐"는 물음에 학생들은 콩알탄 쏘듯 재빠르게 대꾸했다.

"행복해요.", "놀 수 있어 좋아요.", "친구끼리 경쟁하지 않아 좋아요.", "협동하면서 공부해요.", "독서시간이 늘어났어요."

하지만 다음과 같은 걱정 섞인 말도 튀어나왔다.

"중학교가 걱정이에요.", "6월 26일 일제고사 본다고 하는데 왜 보는 거죠? 내일부터는 문제지를 풀어야 할 것 같아요."

일제고사 없앴는데, 일제고사 보라니...

경기 상탄초 한 교실. 학생들이 스스로 만들어온 UCC를 보고 있다.
 경기 상탄초 한 교실. 학생들이 스스로 만들어온 UCC를 보고 있다.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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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상탄초 6학년 이희진 학생의 어머니인 김미영씨에게도 전화를 걸어봤다. 돌아온 대답은 "중간고사 같은 것은 안 보지만 단원, 수시평가를 하니 자기 주도 학습능력은 더 커졌다"면서 "선생님들이 기초학력 미달 학생을 다 알고 있는데 굳이 교과부가 나서서 일제고사를 왜 보도록 하는 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상탄초 교원들 앞에는 요즘 골치 아픈 숙제가 생겼다. 학교 일제고사는 없앴는데, 국가 일제고사는 봐야하는 형편으로 내몰린 탓이다. 1학년 담임인 한 교사는 "벼락치기 시험공부는 공부가 아닌데 안타깝다"고 했다. 6학년 한 교사는 "아침활동을 접고 시험 대비 벼락치기를 해야 할 지 걱정"이라는 말을 조심스레 꺼냈다.

그도 그럴 것이 국가 일제고사 결과는 시도교육청 평가와 학교평가, 학교 성과금에 지표로 쓰인다. 학생들을 '문제풀이 전쟁'에 내몰아 시험을 잘 보게 하면 시도교육청 직원들과 교원들의 주머니가 두둑해진다는 얘기다. 물론 시험을 잘 보지 못하면 교육감, 교육장, 교장, 교감으로선 망신살이 뻗치게 되어 있다.

일제고사의 검은 손길은 참평가를 갈망하는 상탄초 교사와 학생, 학부모들의 속까지도 검게 타들어가게 만들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교육희망>(news.eduhope.net) 6월 18일치에 쓴 내용을 깁고 더한 것입니다.



태그:#경기 상탄초, #일제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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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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