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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오후 10시께 현관 초인종이 요란하게 울렸다. '이 밤중에 누구지'라고 생각하며 문을 여니 택배회사에서 온 아저씨가 스티로폼 한 박스를 던져놓고 휭 가버렸다.

박스를 들고 들어와 발신처를 확인 해 보니 구례 섬진강변 수평리 마을에 살고 있는 혜경이 엄마가 보낸 택배였다. 또 뭘 보낸 걸까. 아내와 나는 마주 보며 박스를 뜯어봤다. 그 속에는 놀랍게도 산딸기 한 박스와 한 뭉치의 채송화가 들어있었다.

구례 섬진강에서 혜경이 엄마가 보내온 산딸기
 구례 섬진강에서 혜경이 엄마가 보내온 산딸기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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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나! 따기 힘든 산딸기와 채송화를 보내오다니..."

아내는 휠체어에 앉은 채로 빨간 산딸기와 채송화를 바라보며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너무나 감격해서 그런지 눈물까지 그렁그렁해졌다. 나 역시 산딸기와 채송화를 보자 괜히 코끝이 시큰해졌다.

혜경이 엄마가 산딸기와 함께 보내온 채송화 모종
 혜경이 엄마가 산딸기와 함께 보내온 채송화 모종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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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셋째 주, 내가 동이리 집 근처에 산딸기나무가 돋아났다고 했더니, 아내는 혜경이 엄마와 전화를 하면서 수평리 마을 뒤에서 산딸기를 따 먹던 추억담을 이야기했다. 그렇게 아내는 혜경이 엄마와 함께 지냈던 추억에 젖어 들었다. 그리고 수평리 집에서 받아온 채송화 씨가 돋아나지 않았다며 아쉬워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혜경이 엄마는 한 참 바쁜 농번기에 산딸기를 따고, 자기 집 앞마당에서 채송화 모종을 파서 보내온 것이다. 아내는 밤늦은 시간에 혜경이 엄마한테 전화했다.

"아니, 이 더위에 산딸기는 언제 땄어? 채송화도 잔뜩 보내주고?"
"응, 좋아 하는 산딸기 먹고 언니 힘내서 빨리 나으라고 보냈어. 그런데 올해에는 너무 가물어서인지 산딸기도 조금밖에 열리지 않았어. 채송화는 마당에 있는 것을 파서 보낸 거야."
"땡볕에 산딸기 따기가 너무 힘들었을 텐데... 어쩌면 좋아?"
"언니, 그냥 맛있게 먹어."
"그래, 어쨌든 맛있게 먹고, 채송화도 잘 키울 게."

산딸기로 잼을 만들었다.
 산딸기로 잼을 만들었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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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산딸기 잼
 완성된 산딸기 잼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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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박스에서 산딸기를 꺼내 잼을 만들고, 나는 귀한 채송화 모종을 발코니에 내놓고 물을 뿌려줬다. 하도 더운 날씨인지라 산딸기가 다 일그러져 그대로 두면 물처럼 변해 먹지 못하게 변질되기 때문이다.

군침이 돌게 만들어진 산딸기 잼
 군침이 돌게 만들어진 산딸기 잼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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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나는 산딸기 잼을 식빵에 발라 먹었다. 야밤에 차실이 떡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아내와 나는 산딸기 잼을 식빵에 발라 먹었다. 야밤에 차실이 떡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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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밤에 차실이 떡이라고, 아내와 나는 산딸기로 만든 잼을 식빵에 발라 먹으며 잠시 섬진강변에서 살았던 추억 속으로 빠져 들었다. 섬진강은 봄이 오면 매화, 산수유, 동백, 벚꽃, 배꽃 등이 차례로 피어나고 열매를 맺으며 꽃들의 천국을 이룬다.

그 중 6월이 오면 지천에 널려 있는 빨간 산딸기를 따 먹던 추억은 두고두고 잊을 수가 없었다. 산딸기를 따먹다가 뱀에게 쫓겨 혼 줄이 났던 기억도 새로웠다. 아침이면 갓 따온 산딸기를 후식으로 먹는 맛이란 그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 중의 별미였다.

6월이 오면 구례 수평리 마을 주변에는 지천에 산딸기가 열린다.
 6월이 오면 구례 수평리 마을 주변에는 지천에 산딸기가 열린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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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수평리 집 텃밭에 피어났던 채송화(2011.7월)
 구례 수평리 집 텃밭에 피어났던 채송화(2011.7월)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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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나는 수평리 빈농가를 세들어 수리하며 살면서, 흙과 돌을 리어카로 실어와 세평 텃밭을 만들었다. 그 텃밭 돌담에 혜경이 엄마로부터 얻어온 채송화를 심었는데 꽃이 어찌나 곱게 피던지... 여름 한 철을 채송화 꽃을 바라보는 재미로 살았다. 채송화는 번식력이 강해 담장 전체를 보석 같은 색깔로 장식했다.

그 채송화 씨를 수평리 마을을 떠나오면서 받아 와 동이리 텃밭에 심었는데 무슨 일인지 발아되지 않았따. 이곳 동이리 집에도 베란다 앞에 돌담이 있어 그곳에 심어 놓으면 아주 어울릴 것 같았다. 채송화 씨가 발아가 되지 않아 아쉬워하던 차에 혜경이 엄마로부터 채송화 모종이 도착한 것이다.

가시기 돋친 야생 산딸기를 따기란 쉽지가 않다. 산딸기를 따다가 뱀에게 혼 줄이 났던 추억이 떠올랐다.
 가시기 돋친 야생 산딸기를 따기란 쉽지가 않다. 산딸기를 따다가 뱀에게 혼 줄이 났던 추억이 떠올랐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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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이 고마움을 뭘로 보답하지요?"
"글쎄? 일단 산딸기 잼을 맛있게 먹고 당신이 빨리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 가장 큰 보답이 아니겠소?"
"그거야, 당연한 이야기고요. 돈을 보내면 난리를 치며 다시 되돌리 것이고, 뭘 보내지?"
"채송화를 잘 키워서 이담에 꽃이 피어나면 혜경이 엄마를 이곳으로 초대를 하면 어때요? DMZ 안보관광도 좀 시켜주고."
"혜경이 엄마가 오면 좋겠지만 워낙 바쁜 사람이라서 시간을 낼 수 있겠어요?"
"흐음... 그렇기도 하네."

가시가 돋친 야생 산딸기를 따기란 결코 쉽지가 않은 일이다. 혜경이 엄마가 정성으로 산딸기를 따는 모습을 그리며 아내와 나는 가슴이 저며 오는 행복을 느꼈다. 우리는 입에 묻은 산딸기 잼을 서로 가리키며 행복에 겨운 미소를 지었다. 혜경이 엄마와 끝없이 이어지는 인연! 행복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태그:#구례 섬진강, #산딸기, #삼딸기 잼, #채송화, #수평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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