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자연으로 둘러싸인 학교. 누구라도 그리워 할 풍경이다.
 자연으로 둘러싸인 학교. 누구라도 그리워 할 풍경이다.
ⓒ 나영준

관련사진보기


콩나물시루 버스, 지옥철, 주차장이 된 도로들. 어느덧 일상이 되어버린 서울의 풍경들이다. '지겹다, 지겨워'를 입에 달고 사는 수도권 주민들은 그래서 전원생활을 꿈꾼다. 천천히 차로 달려도 직장에 닿을 수 있고, 집에 가는 퇴근길이 더 이상 파김치가 되지 않는.

하지만 삶은 쉽게 그런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이 놈의 서울, 떠나야지'를 외치지만, 먹고 살 거리의 근간인 수도권을 벗어나는 일은 그리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떠날 여건이 갖추어졌다고 해도 결정적으로 발목을 잡는 게 아이들의 '교육'이다.

무한 경쟁 속에서 교육을 시켜야만 아이들이 뒤처지지 않는다는 학부모들의 절대적 믿음 앞에, 서울을 벗어나야 한다는 건 막연한 공포다. 꼴등을 하더라도 수도권에서 비벼야 한다고 믿는 학부모들의 무의식은 그래서 한편 씁쓸하지만, 현대사회를 비추는 한 자화상이기도 하다.

한적한, 너무도 여유로운 '시골 중학교 아이들의 웃음'

매주 돌아가며 학교에서 '1박 2일'을 즐긴다.
 매주 돌아가며 학교에서 '1박 2일'을 즐긴다.
ⓒ 나영준

관련사진보기


경기도 파주는 도농복합 도시다. 운정지구 개발로 신도시 주민의 꿈을 가진 이들이 몰려들지만, 아직 대부분의 땅은 산과 경작지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농촌이다. 그 중 탄현면에 위치한 탄현 중학교는 너무도 한가로운 '시골학교'다. 학교 자체가 초록의 숲속에 들어 앉아있다.

면사무소 소재지긴 하지만, 인적이 드물어 걷는 이들의 발걸음보다는 산새들의 지저귐이 더 크게 들리는 곳. 차로 20~30여 분을 달리면 헤이리 예술마을이 있지만, 주말 여행객들의 관심에서는 벗어나 있는 전형적 시골마을이다.

이곳 아이들에게 놀란 건 인사성이었다. 누군지도 모를 외부인이지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며 와~하고 달려드는 학생들. 지나가건 말건 뒤도 안 돌아보는 도시 아이들의 그것과는 너무도 달라 한편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일부가 아닌, 학년 당 4학급 380여 명의 남녀 전교생 대부분이 그렇다. 활짝 핀 표정들이 적어도 시켜서 되는 일은 아니라는 걸 짐작케 한다.

지난 1978년에 개교를 한 학교, 다른 곳이 대개 그렇듯 탄현 중학교도 입학생의 수가 줄어드는 부침을 겪었다. 파주 내에서도 도심 집중현상이 심해졌고, 자연과 함께 한 아름다운 풍경만으로는 학부모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방과 후, 학교가 '직접 찾아가는' 교육

학교가 직접 아이들을 찾아가서 방과 후 교육을 한다.
 학교가 직접 아이들을 찾아가서 방과 후 교육을 한다.
ⓒ 나영준

관련사진보기


부모들의 마음은 대개 비슷하다. 학교 수업만으로는 불안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탄현중학교의 방재언 교장(53)이 생각해 낸 방법은 방과 후 '학교 내'가 아닌, 아이들이 사는 곳으로 직접 '찾아가는' 교육이었다.

오후 7~9시까지 영어, 수학, 국어 등 주요과목을 교사들이 직접 면내에 위치한 금승리, 법흥리 등지로 찾아가 교회 등에 마련된 방과 후 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 흔히 교내 교육은 있지만 이처럼 학교에서 찾아가는 경우는 매운 드문 일이다.

"사실 학교가 위치한 탄현면이 파주시 면 사무소 소재지 중 가장 낙후됐죠. 지역적 특성상 교통이 불편해 학원을 가기도 힘들고 사교육 받기도 어려운 곳에 있어요. 다행히 실시 후 아이들과 학부모가 너무 좋아합니다. 선생님과 더더욱 친해지는 계기도 되고요."

지난해까진 외부강사가 수업했지만 구하기도 힘들고 비용도 만만찮게 들어가자 교사들이 자원해 직접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수업하고 있다고 한다. 학습효과는 기대 이상이라고. 다만 고생하는 선생님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란다.

지역학교의 살아남기 노력, 힘들지만 보람 있어

처음 보는 이에게 스스럼없이 먹을 것을 내미는 아이들.
 처음 보는 이에게 스스럼없이 먹을 것을 내미는 아이들.
ⓒ 나영준

관련사진보기


이런 학교의 노력에 특목고에 진학할 만큼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배출되기에 기운이 난단다. 지역학교가 가진 지리적 불리함을 탓하기보단, 특성화된 교육으로 살아남으려 한다고. 이렇게 되니 지역사회에서도 가만있지는 않는다. 탄현면상공인협의회(회장 노재근)에서 장학금을 기증하고, 면사무소와 지역 농협에서도 적극 힘이 돼주고 있다고.

학교를 찾은 금요일은 매주 한 반씩 돌아가며 실시하는 '1박 2일 학교체험의 날'이었다. 아이들이 직접 텐트를 치고, 밥을 해먹으며 우의를 다지는 날. 다른 학교에서도 비슷한 행사를 한다고 들었지만, 이 학교는 따로 자연으로 갈 필요가 없을 만큼 완벽한 야생의 환경이었다.

마침 저녁식사 시간. 삼삼오오 웃음을 먹던 아이들은 모르는 이들에게 "아저씨 누구세요?"나 "왜 오셨어요?"라는 질문 대신 줄지어 자신들이 만든 음식을 입에 넣어준다. 의심도 거짓도 없는 티 없는 선의 그 자체다.

아이들의 웃음이 하늘만큰 맑은 학교.
 아이들의 웃음이 하늘만큰 맑은 학교.
ⓒ 나영준

관련사진보기


지켜보던 교장이 "아이들이 참 맑지요?"라고 묻는다. 극히 일부를 빼놓고는 말썽꾸러기들이 없단다. 가장 큰 문제인 '왕따'도 이 곳 아이들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란다. 도시가 가진 병폐를 자연이 정화시켜 준다고 믿는단다.

"이런 저런 힘은 들지만 아이들의 순수함을 보면 보람은 있습니다. 버스가 한 대뿐인 교통이 문제였는데 올해 시에서 버스 한 대를 증설해 해소됐어요. 내년에는 5대로 늘린다니 이만하면 다닐만하죠?"


슬며시 웃는 교장선생님의 소박한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추억과 웃음을 반찬삼아 구김살 없이 웃고 있었다.


태그:#탄현중학교, #방과후 학교, #파주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