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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자동차에는 차대번호가 있다. 정비사는 차대번호를 통해 차에 대한 모든 정보를 알 수 있다. 제작국가, 브랜드, 차종, 바디스타일, 안전장치형식, 엔진종류, 핸들작동방식, 제작년도, 생산 공장, 생산일련번호 등. 그리고 이 차대번호는 아무도 임의로 변경할 수 없고 변경하면 불법이다. 자동차 차대번호는 조수석 의자를 뒤로 밀어내고, 내장재를 끌어 올린 채로 보이는 홈을 조심스레 밀고 당긴 후에 간신히 볼 수 있다. 그래서 차대번호는 혹 누가 변경하고 싶어도 임의로 그래서는 안 된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마트에 있는 옥수수나 고기도 마찬가지다. 스마트폰으로 스캔만하면 옥수수나 고기가 언제, 어느 지역, 어느 농부에 의해서 재배되고 양육되었는지 그 품목의 역사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이제 시장의 거의 모든 식품이나 상품은 그 출현 과정에 대한 이력, 즉 엄정한 기록을 가지고 있고 맘대로 그 기록을 변경하는 것은 불법이다. 돈과 수표도 마찬가지다. 각종 전자전기제품도 각각 그 고유 식별번호가 있고 그 식별번호를 통해 제품 역사를 한 눈에 알수 있다.

그러나 놀라지 마라. 세상에 가장 소중하다는 인간, 특히 한국인 중에는 출생에 관해 거짓으로 조작된 기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자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서. 한 인간의 출생기록이 거짓이란 말은 다시 말하면 인간의 가치가 마트의 옥수수나 생선, 전자제품보다 못한 존재라는 말과 같다.

물론 출생기록을 은폐·왜곡·조작하는 것은 불법이고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나 이런 믿기 어려운 일이 최근까지도 우리주변에서 벌어졌고 지금도 안 벌어진다고 확신하기 어렵다. 약 20만 명에 가까운 해외입양인들. 그들 중 수많은 이들은 자신의 개인역사라고 할 수 있는 입양기록이 타인에 의해 불법으로 조작·위조되어있다.

다음은 해외입양인의 권리를 위해 노력하는 '뿌리의집' 김도현 목사가 쓴 글의 일부다.

"몇 해 전 일이다. 노르웨이 입양인과 마주 앉았을 때였다. 그는 허망한 눈빛으로 창가를 내다보다가, 허망한 듯 말을 시작했다. '목사님, 양부모님께서 넘겨주신 제 입양서류에 의하면, 제 친부모님은 자동차 사고로 두 분이 동시에 돌아가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입양기관에 갔더니 두 분이 다 살아계신다는 겁니다. 지난 주간 친부모님을 차례로 만났고, 노르웨이에 사는 여동생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말 그대로 기적이 일어난 거죠. 기쁘고 행복하지만, 한 편으로는 어이가 없습니다. 출생기록을 이렇게 조작하다니요! 누나와 나는 사춘기 때부터 돌아가신 친부모님을 애도하는 날을 정해놓고 지내왔습니다. 거짓에 진심을 바친 거죠. 거짓 위에 세워진 내 정체성을 허물고, 새로 출현한 이 낯선 진실에 기초해 내 인생을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기쁜 일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한 편으로는 씁쓸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렇다! 이렇게 인간으로서 지금도 옥수수나 생선, 자동차보다 못한 대우를 해외입양인들은 지금도 우리사회로부터 받고 있는 것이다.

 입양 당시인 1977년의 이수현씨
 입양 당시인 1977년의 이수현씨
ⓒ 이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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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현(노르웨이 이름 모니카 헤팅)씨는 노르웨이 입양인이고 입양기록엔 그녀가 1973년 2월 22일 서울에서 태어난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물론 이것은 기록에만 그렇게 되어있고 이 기록도 진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아무도 그녀의 실제 이름과 언제, 어디서 그녀가 태어났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 백방의 수소문 끝에 2010년 3월 31일 그녀는 친엄마에 대한 기록을 처음 홀트로부터 들었다. 홀트에 의하면 1973년 겨울 부산송도경찰서의 경찰 서대욱씨는 아기인 그녀와 시각장애인인 친엄마가 부산의 한 거리에서 노숙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후 서대욱씨는 그녀 엄마를 부산시병원으로 데려 갔고 1974년 1월 22일 이수현씨는 성애원이라는 고아원으로 보내졌다. 그로부터 3년 후인 1977년 4월 21일 그녀는 홀트를 통해 노르웨이로 해외입양되었다.

2010년부터 지난 2년간 이수현씨는 친엄마를 만난 적이 있는 전 경찰 서대욱씨를 찾으려고 홀트롤 통해 송도경찰서 등에 백방으로 알아 봤지만 허사였다. 또 부산시병원에는 그녀 엄마에 대한 기록이 없다(이 병원은 10년간만 기록을 유지하고 파기한다). 물론 부산시에도 그녀와 그녀 부모에 대한 정보가 없다고 홀트는 알려왔다.

짐작했듯이 홀트는 이수현씨 이름과 생일에 대해서도 확실하지 않다고 2011년 1월 25일 연락이 왔다. 홀트는 그녀 이름과 생일을 경찰서에서 지었거나 아니면 고아원에서 지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했다. 

지난 21일 이수현씨가 내게 친엄마나 친엄마에 대해 알고 있는 서대욱씨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연락이 왔다. 만나보니 그녀는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를 잡는 절박한 상태였다. 다음은 입양 보내 진후 35년 만에 처음으로 친부모를 찾기 위해 모국을 방문한 이수현씨와 '뿌리의집'에서 나눈 일문일답이다.

"'엄마아빠, 너무 기뻐요!'라고 말하고 꽉 안아 드리고 싶다"

 '뿌리의집'에서 만난  이수현씨.
 '뿌리의집'에서 만난 이수현씨.
ⓒ 한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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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양 보내지기 전 성애원 생활이나 한국모습, 친엄마에 대해 기억나는 것이 있나?
"전혀 없다. 백지장처럼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입양 보내지기 전 어려서 한국에서 몇 년간 산 것으로 기록엔 되어있지만 전혀 처음 본 나라 같다.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다."

- 노르웨이에서 어린 시절은 어땠나? 무슨 추억거리라도?
"초등학교 시절에 학교 전체 아이들이 나를 막 놀리고 괴롭히던 기억이 난다. 생각해 보면 당시에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나 동네에 아시아 학생이 나 혼자만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렇게 즐거운 추억은 아니었다."

- 좀 커서 10대 때는 어땠나? 좀 적응이 되어 갔나?
"내 10대는 운동, 특히 수영에 미쳐서 보냈다. 혼자 수영을 하는 것이 '현실' 세상을 시원하게 벗어나는 길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러나 가까운 몇 몇 친구도 사귈 기회가 있었다. 그 후 나는 곧 직장을 구해서 다녔다. 직장 생활을 빨리 한 편이다."

- 입양부모와 가족에 대해 말해 달라. 사이가 어땠나? 입양부모와 가족은 무슨 일을 하나?
"양부모는 나 외에 또 나이가 나보다 몇 살 어린 한 여자 아이도 입양하셨다. 그 후 양부모님은 이혼하셨고 지금 양부모님은 모두 은퇴하셨다. 그러나 양모는 지금 자원봉사를 하신다. 내 여동생은 프리랜서로 초등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친다. 가끔 음악회를 열기도 한다."

- 요즘 또는 성인으로서 노르웨이에서 생활은 어떤가? 무슨 일을 하나?
"오전에 나는 한 교회기관 헬프데스크(상담창구)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한다. 내 일은 컴퓨터 사용자들이 문제가 생기면 도움을 주는 것이다. 오후에는 수영장에서 인명구조원(라이프가이드)로 일한다. 1주에 한 번은 스포츠센터에서 에어로빅 등을 가르친다. 그 외에도 조그만 사업을 운영하는데 응급처치법, 수영교습, 마사지, 운동법, 식이요법 등에 대한 정보와 조언을 해준다. 그래서 나는 파트타임 직업이 4개나 있다. 나는 일종의 일중독자 같다. 나는 독신이고 아이도 없다. 지금 4살 연상의 노르웨이 남자와 데이트 중이다. 간혹 시간이 나면 영화관이나 음악회에 간다."

- 35년 만에 입양 보내진 후 처음 한국 방문인데 이번에 특별히 한국을 오게 된 계기가 있었나?
"친구가 한국에 가는데 함께 가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래서 한국에 온 김에 친부모님을 찾아 볼 생각이 들었다. 내 뿌리를 알고 싶었다고 할까. 그래서 홀트를 방문했지만 친부모님에 대해 이미 내가 알고 있는 것 이상의 새로운 정보는 얻을 수 없었다."

- 혹시라도 친부모님을 만나게 된다면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너무 기쁠 것이다. "엄마아빠, 너무 기뻐요!"라고 말하고 꽉 안아 드리고 싶다. 1973년 당시에 친모가 시각장애인 인데다가 그 추운 겨울에 노숙하시다가 길에서 발견되셨다니까 생활이 무척 어려우셨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래서 어떤 것이라도, 무엇이든지 친부모님을 도와드리고 싶다. 그리고 내가 자의식이 생긴 후 부터는 항상, 하루, 한 순간도 안 빠지고 친부모님 생각을 해왔다고 말씀 드리고 싶다. 그리고 친부모님을 노르웨이로 초대해서 내 삶의 공간을 보여드리고 싶다."

- 한국정부의 해외입양정책에 대하여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나?
"나는 한국정부나 입양기관이 입양인들과 그 친부모에 대한 기록을 10년만이 아니라 그 이상, 30-40년 이상을 보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해외입양인은 유아기에 해외로 보내지고 철이 들고 성장해서 한 중년정도 나이에 친부모를 찾으러 한국에 온다. 그래서 나를 포함한 많은 해외입양인들은 자기 자신 혹은 친부모에 대한 기록이 사라진 것을 보고는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절망감에 빠져든다. 자기에 대한 기록이 없는 인간, 아니 자기에 대해 거짓으로 조작된 기록을 가진 인간의 비극과 아픔은 겪어 본 사람만이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입양#이수현#김성수#서대욱#노르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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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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