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토요일(6월 16일) 밤 11시가 가까운 시간에 예약된 두 분의 게스트가 오셨습니다. 젊은 두 남자였습니다. 신체적 특징이 완전히 다른 것으로 봤을 때 형제는 아님이 분명했습니다.

관계를 묻는 질문에 형님과 동생으로 지내는 사이라고 했습니다. 2층의 방으로 안내하는 동안 너무 늦게 와서 죄송하다는 말을 거듭 했습니다. 마치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미안해하는 두 사람에게 오히려 제가 송구스러운 마음이 되었습니다.

30분쯤 뒤, 이 두 청년은 큰 박스를 들고 서재에 나타났습니다.

몸과 생각이 모두 싱싱한 두 젊음, 최승현 총각네야채가게 아시아선수촌점 사장(왼쪽), 이국에서 외로울 때 만나 7년째 교우가 계속되고 있는 강성두 아우
 몸과 생각이 모두 싱싱한 두 젊음, 최승현 총각네야채가게 아시아선수촌점 사장(왼쪽), 이국에서 외로울 때 만나 7년째 교우가 계속되고 있는 강성두 아우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너무 늦은 것이 미안해서 과일을 좀 가져왔습니다."

저는 체크인 시간이 늦은 것은 전혀 미안한 일도 아님은 물론 과일도 한두 개가 아니라 한 박스를 가져온 것을 선물로 덥석 받을 수가 없어서 거북한 어조를 실어 책망하듯 말했습니다.

- 젊은 사람들이 넉넉하게 쓸 돈이 어디 있겠어요? 이렇게 한 박스나…….
"아, 저는 야채장수입니다. 저희 가게에서 가져온 것이니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렇게 젊고 잘생긴 총각이 야채장수라는 말에 혹시 하는 마음으로 물었습니다.

"혹 <총각네 야채가게>의 그 총각인가요?"

저는 오래 전에 읽었던 책의 제목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서가에 꽂힌 <총각네 야채가게>의 단행본을 뽑아들었습니다.

"네, 그 총각네입니다. 하지만 그 책은 '총각네 야채가게'를 창업한 대표인 이영석 형님이 쓰신 것입니다."

저는 이 두 젊은이들에게 대한 궁금증이 더욱 커졌습니다. 박스를 받아 개봉했습니다. 멜론이었습니다.

"앉으세요. 이 멜론은 그저 받은 것이니 함께 먹어야합니다. 그런데 이 멜론의 고향은 어디입니까?"

최승현 강성두씨가 들고 온 싱싱한 멜론
 최승현 강성두씨가 들고 온 싱싱한 멜론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저는 멜론을 자르면서 물었습니다.

"아... 고향은 미쳐 조사하지 못했습니다. 멜론은 종류가 100가지가 넘는데 금방 따서 과육이 아삭한 상태에 먹어도 단 품종이 있고 3~4일 두었다가 먹어야 더 달게 먹는 풍종이 있습니다. 음... 원산지는 북아프리카, 중앙아시아 혹은 중동으로 나와 있네요. 선생님 때문에 하나 더 배우게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야채가게 총각은 멜론의 종류를 설명하면서 스마트폰으로 금방 멜론의 고향을 검색하여 답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몰랐던 질문을 물은 것에 감사해했습니다.

저는 멜론을 담아내고 아직 방으로 들어가지 않은 다른 게스트가 있는지를 이층까지 살폈습니다. 이미 자정이 된 시간이라 모두 방으로 들어가고 없었습니다. 야채가게 총각과의 맛있는 대화는 저 혼자만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7년간 우정 쌓은 두 젊은이와 맛있는 대화를 나누다

- 오늘 바쁜 일이 있었나요.
"형님이 가게를 닫는 시간이 정해져 있으므로 영업이 끝날 때를 기다렸다가 함께 왔습니다."

- 아, 그랬었군요. 두 사람은 어떻게 형, 동생이 된 건가요.
"최승현 형님은 '총각네 야채가게' 아시아선수촌점을 운영하게 계시고 저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유학을 마치고 올해 1월에 귀국해서 지금 회사에 다니고 있는 강성두라고 합니다. 저희는 7년 전에 형님이 어학연수를 위해 캐나다에 오셨을 때 6개월 동안 한 기숙사를 쓴 룸메이트였습니다."

- 성두씨는 먼저 유학을 가 있었고.
"네, 저는 고등학교 2학년에 한국을 떠나 캐나다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제가 대학 다닐 때 형님이 한국으로 귀국하기전 6개월 동안을 저와 함께 있었습니다,"

- 나도 미국 대학의 기숙사에서 지내보았는데 기숙사에서 한방을 쓴다는 것, 그거 고통인데...   원수가 되거나 형제보다 더 친한 사이가 되거나... 그런데 두 사람은 7년 뒤에 이렇게 또다시 함께 여행을 온 것으로 보아 후자의 경우인 모양입니다. 평생 함께 갈 수 있는 우애가 만들어진?
"네, 맞습니다. 기숙사에서 한방 생활을 하면서 너무나 열심이고 모범적인 승현 형님의 생활태도에 감명을 받았고 형님이 한국으로 돌아가신 후에도 계속 연락을 하고 지냈습니다."

- 이렇듯 함께 여행을 할 생각은 어떻게 하신 건가요? 혹시 기념해야 하는 날인가요.
"제가 한국으로 귀국한 후 캐나다 친구들이 몇 명 다녀갔습니다. 그 친구들은 술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술을 사주는 것보다 함께 여행을 해주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비용도 술 먹는 비용과 비슷하고요. 그 친구들이 돌아가고 난 후 늘 가게 운영 때문에 피곤에 절어있는 형님과 여행을 한 번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오게 된 것입니다.

- 성두씨의 마음씀이 참 고맙군요. 이 야채가게 형님이 여전히 그렇게 좋은가요.
"물론입니다. 한국에 귀국하고 형님 가게에 가보면 그 피곤한 일을 즐겁고 열정적으로 하고 계세요. 형님의 그런 삶의 자세가 늘 저에게도 자극이 되어요."

- 승현씨는 어떻게 어학연수를 갈 생각을 하셨나요? 야채가게의 국제화를 위해서?
"야채가게에 외국인이 오셨어요. 저를 찾아왔는데 저는 그분의 주문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분이 그분의 주문에 답했습니다. 그때 어학연수를 결심하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캐나다에 1년 반 있었고 그곳에서 다시 대학을 진학하고 싶었으나 가정 형편 때문에 귀국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성두 동생을 얻었습니다."

- 젊은 사람이 어떻게 야채가게를 할 생각을 했나요.
"저는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입대를 했는데 군대 제대할 때가 되니 장차 무얼 해서 먹고 살아야 할지에 대한 막연했던 명제가 더욱 뚜렷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제대를 하자마자 지인의 소개로 '자연의 모든 것'이라는 대치동의 야채가게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제게 그 야채가게는 충격이었습니다. 16평의 야채가게에 8명의 젊은 점원과 5명의 배달사원도 일손이 모자랄 판이었습니다. 제게 충격을 준 것은 그 작은 가게에 길게 줄을 선 손님들과 많은 점원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 가게의 형님들은 각자 자신의 손님들을 두고 있어고 자신의 손님들에 대한 정보를 낱낱이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가족의 수와 식습관까지도... 그래서 손님이 오시면 지난 번엔 무엇을 가지고 가셨으니 이번에는 어떤 것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는 맞춤조언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야채들의 보관법과 조리법, 그리고 보관하시다가 시간이 지난 것은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것까지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 가게의 주인은 이영석 사장님이셨는데 모두가 '사장님'대신 '형님'으로 불렀습니다. 형님은 대학 졸업 후 회사에 취직하셨다가 편법이 횡행하는 것에 한계를 느끼고 땀 흘린 만큼의 대가가 주어지는 장사와 인연을 맺은 분이었습니다. 오징어 행상으로 시작하여 '자연의 모든 것'이라는 야채가게를 열었습니다.

직접 고른 야채를, 그날을 넘기지 않고 팔았으며, 손님 한 분 한 분의 사정을 여쭈어서 개별적으로 맞춤응대를 하는 것으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대치동뿐만 아니라 강남 전역은 물론 분당에서까지 손님이 오셨습니다."

한여름에 수박을, 김장철에 배추를 팔지 않은 야채가게 사장님

- 도대체 그 가게의 어떤 면이 가락동 도매시장 가는 것보다 더 먼 곳의 야채가게로 사람들이 몰리도록 했을까요.
"이 가게의 사장인 영석 형님이 구매를 담당했는데 여름에 수박이 제철이라 쌓아놓고 팔아야할 때인데 하루는 수박을 가져오지 않았어요. 점원들이 난리가 났지요. 수박을 가져오지 않으면 오늘 무엇을 팔겠냐며... 그런데 형님은 '오늘 수박은 장마 때문에 당도가 낮고 자신 있게 손님들에게 권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날은 수박을 사러 오신 모든 손님께 오히려 사과하며 돌려보내야했습니다.

배추가 하루 매출의 태반을 차지하는 가을 김장철에 배추를 가져오지 않은 날이 있었습니다. 김장을 할 만한 상품이 없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무만을 팔거나 다른 날 오시도록 말씀드리라고 했습니다. 품질을 위해 기꺼이 매출감소를 감수하는 형님이었습니다. 좋지 않은 물건으로 손님을 손해보게 하는 장사꾼이 아니라 기꺼이 자신이 손해를 보는 성실성을 사람들이 알아본 것이지요."

- '자연의 모든 것'이라는 상호가 어떻게 '총각네 야채가게'로 바뀌었나요?
"방문하시는 고객분들께서 그렇게 부르셨습니다. 모두가 총각들이니 '야채가게'앞에 자연스럽게 '총각네'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이지요. 그래서 모두가 부르기 좋은 이것으로 상호를 바꾼 겁니다. 그러니까 고객분들이 지어준 이름인 셈입니다."

- 이영석 사장님은 지금도 야채가게를 하시나요?
"26개 체인점을 두고 지금은 본사에서 근무하시면서 물건을 매입하고 가게들을 관리하고 계세요. 형님이 대단한 것은 대치동과 상권이 겹치는 곳에 새로운 점포를 내어 함께 일한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나누어주었어요. 자신의 매출이 줄어드는 것이 자명한 그 일을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여겼어요. 그래서 26개의 체인점 대부분이 지금도 강남에 몰려있어요."

- 혹 최승현씨는 이영석 사장님과 혈연이나 지연 같은 특별한 관계가 있었나요?
"아닙니다. 저는 도매시장의 모습도 궁금하고 좋은 상품을 고르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하니 영석이 형님이 기꺼이 자신의 집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새벽 2시에 도매시장으로 가야하니까요. 그래서 몇 번 형님집에서 함께 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결혼을 하셨지만 그때는 총각이셨거든요."

- 승현씨는 그럼 그때부터 복학하지 않고 야채가게 일을 계속하셨나요?
"복학을 했다가 야채가게에서 번 돈으로 만두와 어묵을 파는 차량 행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만두 파동으로 결국 실패를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야채가게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 졸업하기 전에 이런 저런 장사를 시도해본 겁니까.
"부모님께서는 모든 것이 때가 있다면서 졸업을 권했지만 저는 사회 현장에서의 적용과 응용이 더욱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어학연수 후에 다시 가게를 하게 되었습니다."

- 승현씨는 지금 독자적으로 가게를 꾸리고 있나요?
"네, 총각네 야채가게 아시아선수촌점을 6년째 하고 있습니다."

- 직원이 있으신가요?
"한 명 있습니다. 5년째 저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 단 둘이 5년 동안이나 가게를 함께 꾸렸다면 혈육 같은 정이 들었겠어요. 작은 가게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같은 직원과 함께하는 것은 뛰어난 경영자도 쉽지않을텐데 확실하게 비전을 제시해 주시나봅니다?
"정말 한 가족으로 열심히 하니까 제가 어떻게 해주어야하나 고민하고 있습니다. 작은 가게다보니 지금까지는 특별하게 잘 해 준 것은 없어요. 이익금을 반반으로 나눌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계속 가게가 돌아가야 하니까 그것은 어렵겠더라고요. 앞으로 좀 더 복지에 신경 쓰려고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가게를 낼 수 있도록 도와야지요."

- 총각네 야채가게는 야채나 과일만을 취급합니까? 축산물은?
"저희는 야채와 과일만을 취급합니다만 축산물을 취급하는 곳도 있습니다. 보통 바로 옆에 별도의 가게를 둡니다."

- 가게 운영의 가장 힘든 점은 어떤 것인가요?
" '매일매일 싱싱하게'라는 말이 가게의 모토인데 이 말은 손님에게는 축복이지만 가게운영자에게는 큰 고역입니다. 그날 들인 물건을 모두 그날 소비해야하니까요."

'매일매일 싱싱하게'... 손님에게는 축복, 가게 주인에게는 고역

- 또한 좋은 물건을 들여오는 것이 중요할텐데... 본사에서 구매대행을 해주나요?
"네, 최고의 상품을 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특별한 판별능력을 가진 본사 구매팀을 통해 받기도 하지만 저는 때때로 그 구매팀과 함께 도매시장에 직접 나가기도 합니다."

- 생산자를 방문하기도 합니까? 좋은 상품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생산자를 검증하는 것도 중요할 텐데?
"네, 1년에 두어 품종씩 생산지를 방문하고 있습니다. 생산 과정을 보면 고객들에게 상품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드릴 수 있어서 가능하면 자주 방문하고자 합니다."

- 특별한 생산자와 독점 공급계약을 맺기도 하나요?
"그렇지는 못합니다. 저희는 매일 매일 가장 좋은 상품을 골라야하는 입장이라... 농산물은 매년 변화가 심한 편이거든요."

- 특별한 사업 확장 계획 같은 장기 플랜이 있나요?
"'총각네 야채가게'처럼 농수산물만의 브랜드로 가맹점이 운영되는 곳은 어느 나라에도 없나봐요. 그래서 해외로의 사업 확장도 본사 차원에서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함께 성장해야지요."

- 평소에 본인이 기둥 삼는 금언 같은 것이 있나요?
"'꿈, 열정, 도전'입니다."

- 나이는?
"33세입니다."

- 애인은?
"아직 없습니다."
"형님이 매일 바쁘다보니 여자를 만날 시간이 없더라고요(성두)."

- 가게를 찾는 단골분들중에는 승현씨의 성실성을 눈여겨보고 사위삼고 싶어 하는 분이 적지 않을 것 같은데요?
"간혹 농담삼아 그런 말씀을 하세요. 그런데 직접 딸을 주겠다고는 하지 않으시더라고요."

총각네야채가게의 싱싱한 멜론을 나누어 먹으면서 나눈 대화는 어느덧 새벽 2시를 넘겼습니다.

- 꿈과 열정 그리고 도전의 지침이 최승현사장께는 공허한 언어가 아니라 매일 매일 실천되는, 살아있는 채찍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누구나 단기적으로는 설정된 목표대로 잘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시간이라는 것이 개입되면 문제가 다르지요. 대부분 초기의 결심은 시간과 함께 녹슬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최사장님은 그 시간이 성실성을 담보해주네요. 강성두 후배와의 변함없는 7년 우정, 가게 직원과의 한가족 같은 5년 헌신 등이 그것을 말해줍니다. 독자적으로 경영한 사업경험이 6년을 넘겼다니 이제 본인을 위한 짬도 허락해야할 것 같아요. 장가도 가야하고요.

그 세가지의 지침에 이제 2가지를 더 놓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하나는 '나눔'이고 또 하나는 '성찰'입니다. 나눔은 나와 인연이 전무한 사람에 대한 무조건적인 배려를 말함이고 성찰은 꿈을 향한 이런 열정적인 도전들이 더 가치 있도록 공고히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강성두씨와 최승현사장이 오늘밤 제 스승으로 여겨집니다.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사실 저희는 모티프원에 오면서 선생님과 얘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러데 너무 늦어서 그것이 불가능할 것 같아 조바심이 났었거든요.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을 뵙고 싶었던 저희의 바람을 이루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날 아침, 강남에서 오신 유은화 부부 게스트분에게 총각들의 멜론을 나누어 드리면서 어젯밤의 두 총각에 대한 얘기를 곁들였습니다.

"저희집이 삼성동인데, 저희들도 총각네 야채가게를 이용하거든요. 어린 아이가 있어서 검증되지 않은 것을 먹일 수는 없기 때문에, 아이가 어릴 때부터 총각네를 이용했지요. 가격은 다른 곳보다 비싸지만 한 번도 쇼핑을 실패한 적이 없어요. 신선도가 높은 것만을 팔기 때문에 저녁에는 '떨이행사'를 하는데 경쟁이 치열합니다."

체크아웃을 위해 두 청년이 내려왔습니다. 작별인사에 앞서 강성두씨가 책을 내밀었습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에서 선생님 얘기를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사인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열정이 옅어가는 제게 스승이 되어 준 두 젊은이

저는 최승현 사장께 <총각네 야채가게>라는 제 서가의 책에 서명을 부탁하고, 저는 강성두씨가 내민 책의 속지에 그들을 격려하는 몇 자를 적었습니다.

나는 강성두씨가 내민 책에 서명하고 최승현씨는 내가 내민 책에 서명을 했습니다.
 나는 강성두씨가 내민 책에 서명하고 최승현씨는 내가 내민 책에 서명을 했습니다.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건강한 도전, 중단 없는 실행, 세월이 담보하는 두 사람의 도전과 우정이 자랑스럽습니다. 두 사람을 점점 열정이 옅어져가는 저의 스승으로 삼겠습니다. 2012. 6. 17. 이안수"

그리고 최승현사장은 서명은 처음이라며 겸연쩍은 표정으로 펜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썼습니다.

"모티프원에서 비움과 채움을 느끼며 편안하게 즐기도록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짧은 만남에서 너무나도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워갑니다. 2012. 6. 17. 최승현"

모티프원에 트럭을 타고 나들이를 온 경우는 이 두 총각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젊은이의 성실한 땀과 도전을 의미하는 그 낡은 야채운반용 트럭이 마치 컨버터블 슈퍼카보다 멋져보였습니다.

나는 땀만을 믿는 이 젊은 두 사람의 삶의 태도를 증언하는 그 트럭 앞에 아들을 불러서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나는 이 두 사람의 건강한 생각이 아들 영대에게도 귀감이 될 수 있도록 세 사람을 ‘성실한 땀’의 상징인 자랑스러운 야채트럭 앞에 세웠습니다.
 나는 이 두 사람의 건강한 생각이 아들 영대에게도 귀감이 될 수 있도록 세 사람을 ‘성실한 땀’의 상징인 자랑스러운 야채트럭 앞에 세웠습니다.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그리고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젊음이란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http://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총각네야채가게 , #아시아선수촌점, #최승현, #강성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삶의 다양한 풍경에 관심있는 여행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