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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도 너를 잊은 지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은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타는 목마름으로>

그때는 민주주의가 갈급해 김지하 시인의 <타는 목마름으로>를 불렀습니다. 하지만 2012년 6월, 대한민국은 비가 갈급해 농민과 땅이 타들어갑니다. 며칠 전 비가 내려 제가 사는 곳(경남 진주)은 가뭄이 어느 정도 해갈되었지만 아직 시골 곳곳의 땅은 타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자갈이 조금 섞인 밭은 이미 타 죽은 곡식들이 많았습니다. 생명이 끊어진 곡식은 농부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파릇파릇 새싹 흔적은 오간 데가 없고, 메말라 버렸다.
 파릇파릇 새싹 흔적은 오간 데가 없고, 메말라 버렸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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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는 씨를 뿌렸지만 비가 오지 않으면 안 된다. 비는 모두에게 생명줄이다.
 농부는 씨를 뿌렸지만 비가 오지 않으면 안 된다. 비는 모두에게 생명줄이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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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릇파릇했던 새싹의 흔적은 오간 데가 없고, 메말라 버렸습니다. 농부는 지난 봄 새싹이 난 것을 보고 기뻐했으리라. 거짓말하지 않는 이 녀석들을 보면서 아들과 딸처럼 아침은 "잘 잤느냐", 저녁에는 "잘 자거라"했으리라.

농부는 누구나 그렇게 합니다. 하지만 타 들어가는 논밭을 보면서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콩이 힘겹게 생명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비야 제발 좀 내려다오"라며 울부짖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콩은 물 한 방울이 생명수임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타는 목마름'
 '타는 목마름'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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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보다 조금 빨리 심었는지 옥수수는 더 자랐습니다. 옥수수는 그래도 괜찮네 하겠지만 쩍 갈라진 틈이 커보입니다. 조만간 비가 내리지 않으면 틈 사이는 점점 그 간격이 넓어질 것입니다.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증발은 더 빨라집니다. 옥수수 역시 타는 목마름을 부르게 될 것입니다.

갈리진 틈으로 옥수수가 올라왔다. 비가 와야 잘 자랄 것이다
 갈리진 틈으로 옥수수가 올라왔다. 비가 와야 잘 자랄 것이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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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진 틈 사이로 자라는 이들...애타게 비만 기다려

"아빠 이것 이름이 무엇이에요?"
"담배"
"어떻게 담배가 돼요?"
"응 나중 잎을 말리면 담배가 되지."
"…?"

옥수수 옆에 담배가 있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담배를 만드는지 물었지만 정확하게 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어릴 적 담배굴에서 담배잎을 말리는 것을 본 적이 있었지만 담배를 피우지 않으니 어떻게 만드느냐는 막둥이의 물음에 답하지 못했습니다. 하기야 담배 피우는 사람들도 담배가 자기 손에 어떻게 들어오는지 모르는 분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담배 농사는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담배다. 워낙 큰 잎이라 그런지 생생하다. 하지만 이 녀석도 비가 오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담배다. 워낙 큰 잎이라 그런지 생생하다. 하지만 이 녀석도 비가 오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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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태권도 시범 보여줄게요."
"태권도 시범?"
"응, 쇠막대기를 넘을 것이니까. 잘 보세요."
"쇠막대기를 넘는다고?"

"응."
"네가 어떻게?"
"한 번 보세요."


막둥이가 담배밭 옆에서 태권도 시범을 보였다. 자세히 보면 발목이 쇠막대기에 걸렸다.
 막둥이가 담배밭 옆에서 태권도 시범을 보였다. 자세히 보면 발목이 쇠막대기에 걸렸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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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쇠막대기를 넘는 것이 아니라 다리로 쇠막대기를 넘었습니다. 하지만 발목이 걸려 넘어질 뻔 했습니다. 가뭄으로 타 들어가는 땅과 곡식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는데 막둥이 태권도 시범 때문에 웃었습니다. 담배밭을 지나 가니 고구마도 목말라 애타게 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고구마도 비슷하다. 목이 마르고, 타 들어간다. 타는 목마름을 젹서 줄 비가 빨리 내리기를.
 고구마도 비슷하다. 목이 마르고, 타 들어간다. 타는 목마름을 젹서 줄 비가 빨리 내리기를.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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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나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치떨리는 노여움이
신새벽에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타는 목마름으로>

그때는 이렇게 불렀지만 2012년 땅과 곡식이 부르는 <타는 목마름으로> 다음과 같은 노랫말일 것입니다.

내 몸은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논밭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오래
오직 한줄기 타는 땅 속 목마름의 추억이
네 이름을 모두가 외친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비여 비여 비여 만세....

24, 25일 비가 내린다는 기상청 예보가 나왔습니다. 예보가 맞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너무 목마릅니다.


태그:#가뭄, #타는 목마름, #옥수수, #콩, #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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