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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미화의 서평집 <독과 도>
윤미화의 서평집 <독과 도> ⓒ 북노마드

서평을 어떻게 써야 잘 썼다고 할까요? 대부분 서평을 쓰는 이들이 안고 있는 고민이기도 하죠. 서평을 잘 쓰면 독자들도 그만큼 책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좋은 서평 덕에 그만큼의 책도 많이 팔릴 수도 있을 것이고요. 책을 쓰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그래서 요즘은 좋은 서평을 쓰는 '리뷰어'들도 한몫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윤미화의 서평집 <독과 도>는 그에 따른 좋은 지침서가 될 것 같습니다. 그녀는 책 한 권을 읽고 서평을 쓰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서너 권의 책들을 한데 묶어서 리뷰를 쓰고 있습니다. 구슬 서 말을 꿴 보배와 같다고 할 수 있겠죠. 염소를 키우며 산다는 그녀에게는 그만큼의 노력과 정성이 들어가는 작업이겠고요. 그녀의 리뷰는 단순한 서평이 아니라 염소 새끼 한 마리를 잉태하는 것과 같은 까닭입니다.

 

황상은 육유 시의 대가였다. 육유는 남송 때 시인으로 만 수가 넘는 시를 지었다. 황상은 한 땀 한 땀 꼼꼼한 수를 놓듯 빈틈없이 육유의 시를 초서했다. 그리고 마침내 시로써 조선후기 대가 반열에 올랐다. 황상의 시 공부 방식은 한 자 한 자 깨알같이 베껴 쓰는 초서 작업과 파뿌리 캐듯 근원까지 훑는 다산의 치밀한 공부 방식을 따른 것이다. 깐깐한 스승은 포기를 몰랐다.(53쪽)

 

그녀가 그와 같은 리뷰의 방식을 채택한 배경을 알 수 있게 하는 부분입니다. 이른바 다산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 나오는 초서(鈔書)에 있었던 것이지요. 초서란 흔히 만들 책의 규모와 편목을 세운 뒤에 남의 책에서 간추리는 걸 뜻한다고 해요. 다산은 그걸 두 아들과 둘째 형님인 정약전과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에도 강조했다고 하는데, 그녀가 쓴 서평집도 그와 같은 흐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례로 '세계화와 바이러스 섹스'라는 서평만 봐도 그렇습니다. 그녀는 세계화로 인한 공포는 단순히 경제적인 도미노 현상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질병이 확산되는 추세도 같다고 꼬집습니다. 그것을 추적하고 밝혀내기 위해 앤드류 니키포룩의 <대혼란>과 대니얼 맥스의 <살인단백질 이야기>란 책을 인용하여 리뷰를 쓰고 있는 셈입니다. 듣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 구제역과 대량 살처분도 실은 로마 교황청 산하의 장원과 농장에서 시작되었다는 것도 새로운 정보라 할 수 있겠죠.

 

치킨 사업 번창은 A4 한 장 정도 공간에서 알만 낳다 죽는 닭 공장을 탄생시켰다. 육류 외식사업은 길이 2미터에 폭 60센티미터에서 새끼를 낳다 죽는 돼지공장을 만들었다. 소도 다르지 않다. 한국을 예로 들어보자. 소는 더 이상 워낭을 목에 걸고 일하러 들로 나가지 않는다. 그 대신 태어난 축사에서 귀표를 달고 카길이 제공한 옥수수 사료를 먹다가 시장에 팔려나가거나 도축장으로 간다.(168쪽)

 

공장식 축산의 폐해를 정확히 꼬집어 내는 리뷰라 할 수 있겠죠. '관계와 순환의 밥상'이란 제목의 리뷰에 들어 있는 내용입니다. 옛날의 소나 돼지가 낳은 똥과 오줌들은 밭에 진귀한 거름이 되었고, 그 속에서 생산한 곡물과 과일과 채소는 시골 밥상에 곧잘 오르는 좋은 먹거리가 되었죠. 그런데 지금은 그것들이 배설한 똥오줌은 모두 질병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입니다. 그 모두가 공장식 축산과 관계된 일이라고 하죠. 

 

그녀가 시골에 살고 있어서 대부분의 서평 목록이 농업이나 생태계와 연관돼 있을 거라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입니다. 그녀는 한미FTA와 대학교육, 경제성장, 삽질 한국 등 경제와 교육 분야를 비롯해, 문학과 영화도 넘나드는 리뷰를 올려놓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내게 신선하게 다가왔던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이른바 우리나라의 노조와 관련된 내용입니다.

 

북한이 과연 노동권을 보장하는가? 부의 공평한 분배가 이뤄지고 있나? 노동권과 인권을 묵살하고 당의 국가 경제권을 독점하고 전횡하는 체제가 북한이다. 따라서 노동권 회복을 주장하는 한국의 노동운동과 노동권을 독점한 북한 체제는 대척점에 있다. 오히려 노조 탄압을 합법화한 기업과 정부 정책이야말로 노동 착취와 탄압을 일삼는 북한체제에 동조한다고 볼 수 있다.(24쪽)

 

어떻게 이토록 예리한 글을 쓸 수 있을까요? 다들 우리나라 노조를 북한의 빨갱이처럼 몰아붙이고 있는 현실인데 말이죠. 북한과 똑같은 주적 상대로 말이죠.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과 언론들을 향해 명확한 선을 그어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노조는 결코 종북 좌익 이념에 대입할 수 없다는 식으로 말이죠. 오히려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노동 착취와 탄압을 일삼고 있는 기업과 정부 정책이 실은 북한 체제와 다르지 않다고 일침을 놓죠.

 

'파란 여우'라는 닉네임으로 이미 온라인 서평계를 뒤흔들고 있는 윤미화씨. <깐깐한 독서본능>에서도 유감없는 리뷰집을 선보였던 그녀가, 이번의 <독과 도>를 통해서 다시금 실력발휘를 하고 있습니다. '초서 리뷰'란 어떤 것인지를 알고 싶은 분들은 한번쯤 들여다보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아요. 그녀가 써 내려가는 서평은 단순한 리뷰를 넘어 작품 하나를 잉태하는 것과 같은 힘든 작업이기 때문이죠. 그것은 시골서 염소를 키우는 일보다도 더 고된 일이겠죠. 그만큼 이 책을 읽으면 더 많은 세계를 배울 수가 있을 것입니다.


독과 도 - 울자, 때로는 너와 우리를 위해

윤미화 지음, 북노마드(2012)


#윤미화#〈독와 독〉#파란 여우#대혼란#깐깐한 독서본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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