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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가 기적 같은 일> 겉표지
<모두가 기적 같은 일> 겉표지 ⓒ 오마이북
누구나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살고 싶어한다. 아니면 바다가 보이는 낮은 언덕에 빨강머리 앤의 '초록지붕집'처럼 다락방이 있는 목조집은 어떨까. 마당에는 살구나무, 석류나무, 풀꽃들 사이로 순박하게 생긴 개가 뛰어다니고, 집 앞 논에는 파랗게 자란 벼 사이로 우렁이가 마실을 다니는 집. 상상만 해도 가슴 뛰는 흐뭇한 풍경 아닌가.

이런 집을 5000만 원에 짓는다면? 그건 기적이겠지. 그런데 진짜 기적이 일어났다. 5000만 원으로 바다가 보이는 곳에 땅을 사고, 그 땅에 다락방이 있는 목조집을 지었다. 마당엔 살구나무, 석류나무도 있고 목줄 없는 개도 뛰어다닌다. 기적의 주인공은 <모두가 기적 같은 일>(오마이북)의 저자이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송성영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성공에 대한 욕망으로 치열한 경쟁 속에 사는 도시생활자들에게 이런 집은 꿈이자 이상이지만 누구도 쉽게 용기내지는 못한다. 왜? 도시를 떠나면 왠지 낙오되었다는 소외감과 함께 무엇을 먹고 살 것인지, 애들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걱정들이 물밀듯이 밀려들 테니까.

따라서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차지하듯이 용기 있는 자가 평화와 행복도 얻는 법이다. 바쁜 도시 생활에서 돈 버느라 행복할 시간이 없었다는, 그래서 덜 벌더라도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송성영은 과감히 도시 생활을 접고 공주 인근의 시골에서 글쓰는 농부로 십여 년을 살았다.

그런데 집 뒤로 호남고속철도 개발이 추진되면서 그 곳에서의 생활을 접고 새로운 터를 찾아야 했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은 저자 송성영과 가족들이 새로운 터를 찾고, 그 터에 집을 짓고 그리고 주변과 조화를 이루며 느리지만 여유롭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담고있다.

저자는 책에서 '적게 번 만큼 불안하고 불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돈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돈과 성공에 목숨 거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돈이 많지 않아도, 세상이 말하는 성공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아름답고 풍요롭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아마 느끼게 될 것이다.

돈이 많을수록 고민도 커진다

 기적의 도서관이 따로 없었다. 열흘 만에 책장 두 칸이 비좁을 정도로 천 권이 넘는 책들이 들어왔다. 송성영 시민기자의 작은도서관.
기적의 도서관이 따로 없었다. 열흘 만에 책장 두 칸이 비좁을 정도로 천 권이 넘는 책들이 들어왔다. 송성영 시민기자의 작은도서관. ⓒ 송성영

단표누항(簞瓢陋巷)이란 말이 있다. <논어>의 '옹야'편에 나오는 말로 공자가 제자인 안회의 청빈한 삶을 칭찬하며 한 말인데, 소박한 시골 살림이지만 그 속에서 올바른 인간의 도를 추구하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안빈낙도의 모습을 이르는 말이다. 즉 가난하게 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여유를 즐기며 마음 편히 사는 것을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돈에 가치를 두지 않아야 한다. 황금만능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하고, 돈이 없어서 문제지 많은 건 문제가 아니라고 여긴다. 그런데 오히려 돈이 많으면 그 돈의 양만큼 고민의 양도 커지는 것 아닐까. 저자는 없던 돈이 생김으로 고생길로 접어들었다고 말한다.

정신 나간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놈의 돈이 생기는 바람에 고생길로 접어든 셈이었습니다. 돈이 없었다면 비싼 땅이고 싼 땅이고 찾아 나설 이유가 없었습니다. 정든 사람들에게서 멀리 떠날 이유도 없었습니다. 돈이라는 게 인간을 얼마나 속박하는지 뼈저리게 느끼면서도 차마 그것을 물리치지 못한 채 업보처럼 들쳐 메고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오지를 찾아 나섰던 것입니다.('여는 글' 중에서)

고생의 시작은 헌 외양간을 수리해 만든 공간에서 아내가 동네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면서 모은 돈 3000만 원이었다. 거기에 예전에 누군가에게 빌려주었던 돈 2000만 원이 보태지면서 마련된 5000만 원을 들고 평생 살 집을 지을 땅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찾아낸 곳이 전라남도 고흥의 바닷가 마을이다.

생면부지의 고흥에 터를 잡고 집을 짓는 과정은 기적 같은 일이었다고 말한다. '큰 욕심 부리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땀 흘려 살다 보면 하늘이 다 알아서 해줄 것'이라는 그의 믿음대로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거짓말처럼 어디선가 도움의 손길이 나타났고, 집은 돈이 아니라 사람이 짓는 것임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저자는 돈에 대해 '돈은 불붙이면 타는 종이에 불과하지만, 문제는 소비에 무감각해지는 것이고, 불필요한 소비에 익숙해진다는 건 자본의 수렁에 깊이 빠져든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본의 수렁에 빠지면 어떤 형태로든 고통이 뒤따르게 될 것이라고 일갈한다. 그러니 돌고 도는 것이 돈이라는 말처럼 돈이 오든 가든 무감각할 수 있어야 한다.

살아 있는 나무를 베지 않았는데도 때마침 땔나무가 굴러들어 왔듯이, 땀 흘리며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산다면 빈자리를 채울 뭔가 생기리라 믿습니다. 밥벌이가 있다는 것은 언젠가 밥벌이가 끊길 수 있다는 것이고, 또한 밥벌이가 없다는 것은 곧 밥벌이가 생기리라는 것이니까요.(본문 297쪽)

학교에 좀 늦으면 어때, 바다가 이렇게 보석 같은데

 고등학교를 포기한 인상이 녀석과 함께 토란을 심었습니다.
고등학교를 포기한 인상이 녀석과 함께 토란을 심었습니다. ⓒ 송성영

저자에게는 연년생인 아들이 둘 있다. 큰애는 고1이고, 둘째는 중3이다. 저자의 교육관 역시 보통 사람들과는 아주 다르다. 그는 항상 등교하는 아이들에게 '공부 열심히 하고 와'가 아니라 '잘 놀다 와'라고 얘기한다. 학교에 늦는다고 걸음을 재촉하는 아들에겐 '그럼 뛰어가자'가 아니라 '좀 늦으면 어때. 바다가 이렇게 보석 같은데'라고 말한다.

고등학교에 진학해 집을 떠나게 된 큰아들에게 그는 '고등학교에서 대학 가지 않아도 된다는 자신감을 얻었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가지 않겠다는 둘째를 보면서는 고등학교에 가면 오로지 대학입시 하나에 매달려야 하는데, 진학을 포기하고 나니 그 애에게 할 일이 참 많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대학에 못 가면 마치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하는 듯 여기는 부모들이 대부분인데 고등학교조차 가지 않겠다는 아들 편을 드는 부모라니, 부모로서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 아니냐고 눈흘김을 받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입시 경쟁에 시달리며 3년을 보내는 대신 이것저것 하고 싶은 일을 해보면서 자신이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오히려 인생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저자 역시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 때로 고통스럽겠지만,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되면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즐거울 것이고 덤으로 주변 사람들에게도 즐거움을 주게 될 것이라는 말로 믿음을 표현한다.

아이들의 인권을 존중하면 아이들 역시 누군가의 인권을 존중하게 될 것이고, 자유로움을 가르치면 자유롭게 살 것입니다. 하지만 매질과 욕설로 억압하며 가르치면 그만큼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고 억압하게 될 것입니다. 친구들과 경쟁하라 강요하면 세상에 나가서도 경쟁심에 얽매여 살아갈 것입니다. 누군가를 억압하고 상처 입히며 살아가는 길이 사람의 길이 아니라 돼지 같은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는 이미 그 길에 익숙해져 벗어나기 힘들게 될 것입니다.(본문 248-249쪽)

욕심을 내려 놓으며

 풀무고등학교에 다니는 형, 인효와 함께 겨울 방학 내내 책 읽기와 드럼, 기타 치기를 했던 송인상.
풀무고등학교에 다니는 형, 인효와 함께 겨울 방학 내내 책 읽기와 드럼, 기타 치기를 했던 송인상. ⓒ 송성영

얼마 전 성적을 비관한 고등학생이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은 일이 있었다. 아무개 시중은행의 지점장은 실적 압박에 따른 괴로움을 못 이기고 역시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죽음을 선택했다. 이제 겨우 십몇 년을 산 아이에게도, 남들이 부러워할 지위에 있는 중년에게도 삶은 왜 그렇게 힘든 것이었을까?

그것은 우리 사회가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배려하는 인간적 삶보다는 오직 숫자로만 평가하고 치열한 경쟁을 통해 살아남는 약육강식의 동물적 삶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시험 성적에 목숨을 거는 아이들에게 친구는 경쟁자일 뿐이며, 실적을 두고 승진을 다투어야 하는 동료는 더 이상 동료가 아니다.

어려서부터 경쟁을 배우고 자란 아이는 경쟁에서 조금이라도 밀리면 그게 세상의 끝이라고 생각한다. 어른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컸으니 다른 생각은 하지 못하고 결국엔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것이다. 욕심과 욕망을 내려놓고 마음을 풀어 놓으면 세상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아름다움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를 읽노라면 마치 온돌방에 누운 것처럼 따뜻하고 훈훈하다. 그 이유는 주먹을 쥐면 손 안에 아무것도 없으나 손을 펴면 세상이 내 것이라는 말처럼  비우고 사는 삶의 넉넉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문득 올 여름휴가는 털보 아저씨와 매력적인 까만 털을 휘날리며 뛰어다니는 곰순이가 사는 고흥의 바닷가 민박집에서 느림과 비움의 미학을 배우며 보내면 어떨까 싶다.

덧붙이는 글 |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송성영 씀, 오마이북 펴냄, 2012년 6월, 1만3000원



#송성영#모두가 기적 같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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