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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시 이목동 마을 초입 다리위에 내걸린 각종 투쟁구호가 적힌 빨간색 펼침 막들이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수원시 이목동 마을 초입 다리위에 내걸린 각종 투쟁구호가 적힌 빨간색 펼침 막들이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 김한영

경기 수원시 이목동 민간도시개발지구내 강제수용 토지 보상가격을 놓고 건설사 측과 주민들의 갈등이 수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특히 이 가운데 일부 주민들은 사실상 토지보상에 합의하고도 이주를 못해 위험에 노출되는 등 또 다른 문제를 낳고 있다.

지난 25일 오후, 건설사와 주민들의 토지보상금 분쟁이 첨예한 이목동 8××번지 일대를 찾았다. 지난 2월 주민들의 반발이 컸던 이곳은 개발사업자의 토지강제수용지구에 포함된 수원의 대표적인 낙후지역이다. 4개월 만에 다시 찾은 이곳은 평온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마을 초입 다리위에 내걸린 각종 투쟁구호가 적힌 빨간색 펼침막들이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자 유독 눈에 띄는 김아무개(86)할머니 집 안팎은 한눈에도 위태로워 보였다. 콘크리트 담장은 중간 부분이 부서진 채 금방이라도 집안 출입문 쪽으로 무너질 듯 아슬아슬하다.

녹슨 철대문 안으로 들어가 보니, 슬레이트 지붕 아래 처마 부분은 시멘트로 미장한 표면이 절반은 떨어져 나가 콘크리트가 그대로 드러나 있고, 지붕을 떠받치는 구조물도 균열이 심했다. 그 위엔 비가 새는 것을 막기 위해 파란색 천막이 씌워져 있었다. 본채 옆 창고로 이어지는 통로 쪽 지붕 역시 폭탄을 맞은 듯 주저앉았고, 구멍이 숭숭 뚫렸다.

옥상도 상황은 심각했다. 바닥은 페인트가 벗겨진 채 곳곳이 갈라지고 패인 상태였다. 비가 많이 새는지 낡은 장판과 합판으로 바닥을 덮고 벽돌과 블록들을 올려놓았다. 콘크리트 옥상 난간 한쪽은 넘어가지 않도록 천막과 각목으로 '땜질'한 모습도 보였다.

이 정도면 거의 폐가 수준에 가깝다. 김 할머니는 이곳에서 30년을 넘게 살았다고 한다. 수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건강이 악화되면서 기억력이 쇠퇴해진 할머니는 청력까지 잃어버린 상태. 어머니가 걱정된 막내딸 박아무개(45)씨 부부가 자주 찾지만, 매일 혼자 집에서 보내야 하는 할머니의 집 안 동선에는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형국이었다.

"합의한 대로 보상하지 않으면 죽어도 못 나간다" 

 수원시 이목동 김아무개 할머니 집 슬래브 지붕 아래 처마 부분은 시멘트로 미장한 표면이 절반은 떨어져 나가 콘크리트가 드러나 있고, 지붕을 떠받치는 구조물도 균열이 심한 상태였다.
수원시 이목동 김아무개 할머니 집 슬래브 지붕 아래 처마 부분은 시멘트로 미장한 표면이 절반은 떨어져 나가 콘크리트가 드러나 있고, 지붕을 떠받치는 구조물도 균열이 심한 상태였다. ⓒ 김한영

이 때문에 맞벌이를 하는 박씨 부부는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항상 불안해 일에 집중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 부부는 당장 김 할머니를 안전한 집으로 모실 수가 없는 형편이다. 강제수용 당한 토지보상금을 받지 못해 집을 장만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박씨는 "어차피 토지를 수용당해 떠나야 한다면 빨리 보상에 합의하고 병석의 어머니를 편히 모시자는 생각에서 토지보상에 동의했는데, 건설사 측이 계속 보상을 미룬 채 시간 끌기로 진을 빼고 있다"면서 "이러다 어머니가 사고라도 당할까봐 큰 걱정이다, 더구나 현재 명도소송이 진행 중이어서 임시 방편으로 집을 손볼 수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김할머니 집과 이웃한 이아무개(80, 이목동 8××번지)할아버지 집을 비롯해 이 일대 주민들의 사정도 거의 비슷했다. 그 중에서 이할아버지 집은 좀 나은 편이었지만, 오래된 집이라 건물의 노후로 인해 위험이 존재하기는 마찬가지.

이곳에서 50여 년을 살았다는 이 할아버지는 "토지를 강제 수용당하고도 보상에 동의를 해줬더니, 건설사가 보상금을 적게 주려고 낮은 보상가로 공탁해 놓고 배짱을 내밀고 있다"면서 "당초 합의한 대로 보상하지 않으면 죽어도 절대 못 나간다"고 말했다.

이 할아버지는 이어 "땅값을 제대로 흥정도 않고 일방적으로 강제수용 결정 내려놓고 얼마 줄 테니, 나가라고 한다"면서 "이게 날강도 심보가 아니고 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처럼 일부 주민들이 토지보상에 합의하고도 낡은 가옥에서 위험을 감수하며 지내고 있는 것은 건설사의 약속 불이행 때문이다. 지난 2월 시행사인 대한토지신탁과 주민들의 토지보상가격 충돌 이후 시공사인 현대건설은 시행사를 대신해 주민들에게 보상을 약속했다고 한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전후 사정은 이렇다. 수원시와 이목지구개발주민공동대책위원회(주민공대위)에 따르면 대한토지신탁 측은 2009년부터 이목동 노송지대 부근 322번지 주변 일대 11만3500여㎡ 부지에 아파트·도로·공원 등의 민간도시개발 사업을 진행, 올해 2월 말까지 완료할 계획이었다.

수원시와 경기도가 '5자 협상' 통해 토지보상 중재

 김아무개 할머니 집 안팎은 한눈에도 위태로워 보였다. 콘크리트 담장은 중간 부분이 부서진 채 금방이라도 집안 출입문 쪽으로 무너질 듯 아슬아슬하다.
김아무개 할머니 집 안팎은 한눈에도 위태로워 보였다. 콘크리트 담장은 중간 부분이 부서진 채 금방이라도 집안 출입문 쪽으로 무너질 듯 아슬아슬하다. ⓒ 김한영

그러나 대한토지신탁은 현대건설과 함께 현재까지 '수원 장안 힐스테이트' 아파트 927세대를 지어 지난 2월 28일부터 입주를 시키고 있을 뿐, 당초 수원시에 기부채납하게 돼 있는 3만여㎡에 달하는 도로·공원 등의 도시계획시설은 토지보상 지연으로 착공조차 못하고 있다.

이는 아파트 건립부지 보상가격에 비해 도시계획시설로 수용될 토지의 보상가격이 크게 낮은 것으로 확인되면서 주민들의 거세게 반발해 합의보상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시행사가 아파트 건축부지는 3.3㎡당 최고 1800만 원대에 협의매수를 하고, 도시계획시설이 들어설 수용 토지는 정상 시가의 절반 수준인 400~600만 원대로 낮게 평가했다"며 재감정을 요구했고, 대한토지신탁 측은 이를 받아들였다.

이에 주민들은 지난 1월 감정평가업체 2곳을 선정해 토지 재감정을 실시한 결과 대한토지신탁 측의 1차 감정결과보다 5~18% 가량 높게 평가됐다. 따라서 주민공대위는 "시행사의 감정결과는 지나치게 저평가됐다"며 "시행사가 재감정결과를 토대로 보상가격을 산정하면 보상협의에 응하겠다"고 밝혔다. 대한 측도 주민들의 요구를 수용하겠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시행사와 주민들이 합의점을 찾고 있는 상황에서 경기도지방토지수용위원회(위원장 김문수 경기지사, 경토위)는 지난 2월 6일, 시행사가 지난해 8월 제출한 토지수용재결 신청에 대해 전격적으로 강제수용 결정을 내려 주민들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경토위는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토지보상법)을 근거로 시행사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보상가격은 시행사 감정가보다 5% 정도 올린 수준. 현행 토지보상법은 공공용지 확보를 위해 토지소유주와 보상협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사업시행자는 토지수용위원회의 수용재결을 거치면 강제 토지수용이 가능하도록 돼 있다.

이에 따라 시행사 측은 지난 3월 7일 소유권이전 등 법적 강제수용절차에 착수했고, 주민들은 경토위와 시행사를 강력히 비난하며 집회·시위를 이어가는 등 더욱 거세게 반발했다. 파문이 확산되자 수원시와 경기도는 지난 3월 말 대한토지신탁 및 현대건설 책임자, 주민공대위 대표 등이 참석한 '5자 협상'을 통해 토지보상 중재에 나섰다.

"정당하게 수용 결정된 토지... 주민 고집 무시할 것"

 김할머니 집 옥상도 상황은 심각했다. 바닥은 페인트가 벗겨진 채 곳곳이 갈라지고 패인 상태였다. 바로 앞으로 보이는 게 장안 힐스테이트 아파트다.
김할머니 집 옥상도 상황은 심각했다. 바닥은 페인트가 벗겨진 채 곳곳이 갈라지고 패인 상태였다. 바로 앞으로 보이는 게 장안 힐스테이트 아파트다. ⓒ 김한영

특히 수원시는 이 과정에서 현대건설에 시행사 보증 책임을 부여했다. 시행사를 대신해 토지보상에 동의하는 주민들에게는 2차 감정평가액에 30%를 가산한 토지보상금을 지급하고, 도시계획시설을 책임 시공할 것 등을 주문해 합의를 이끌어낸 것이다.

이런 합의정신에 따라 현재 남아 있는 토지 수용지역 주민 40여 명 가운데 추가보상을 요구하고 있는 주민들을 제외하고, 김할머니와 이할아버지 등 9명이 주민공대위를 통해 토지보상 합의내용에 대한 동의서를 제출했다. 따라서 이들은 현대건설 측과 최종 보상합의서에 서명하고, 보상금이 지급되면 곧바로 이주가 가능한 주민들이다. 

그러나 현대건설은 당초 합의를 이행하지 않고 미루면서 보상금을 받아 이주하려는 주민들의 발을 묶어버렸다. 현재 토지강제수용절차를 추진 중인 현대건설은 법원에 공탁한 경토위 보상가격(시행사 감정가격의 5% 인상)에 30%를 더한 보상금만 지급하겠다는 입장이다. 

현대건설 보상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이기영 부장은 "수원시는 정당하게 수용 결정된 토지에 대해 돈을 더 주라고 하는 등 합의사항 이행을 요구하는데, 합의하지 않는 주민들을 책임질 것이냐"며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면서 "주민대표가 (합의내용을 이행하라고) 고집을 부려도 무시하고, 늦어도 다음 주 초까지는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주민공대위의 입장도 강경하다. 최문태 주민공대위 위원장은 "현대건설 측이 수원시 등 관계기관의 중재에 따라 주민들과 합의했던 약속을 저버린다면 중대한 결심을 할 수 밖에 없다"며 "이달 말까지 기다려 본 뒤 약속이행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구체적인 합의내용들을 공개하고, 법적 소송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에다 수원시도 현대건설을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현대건설 측의 최종 선택이 주목되고 있다. 도시계획과 관계자는 "현대건설 측에 수용토지 보상금 지급 의무가 발생했기 때문에 계속해서 주민들과 합의한 대로 보상에 임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건설#수원 이목동#토지강제수용#토지보상금 분쟁#대한토지신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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