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이 땅에서 6·25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햇수로 62년 째가 되었다. 어찌보면 반세기가 넘어 2012년이 된 이제는 오래된 과거의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잊혀지지 않을 전쟁의 아픔은 분단 조국의 현실이라는 살아있는 역사로 우리와 함께 숨쉬고 있다. 여전히 남북을 갈라놓은 채로 그어진 38선이 한반도의 지도 위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것처럼 말이다.
호국보훈의 달 6월도 끝자락이다. 요즘 젊은 세대는 한국전쟁이 언제 일어난 일인지조차 제대로 모른다는 비판성 기사도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눈에 띈다. 하지만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요즘 어린 세대를 그저 꾸짖고 다그치기보다는, 그들에게 역사를 조금이나마 더 가까이서 보고 배운 세대들이 어른으로서의 책임감으로 차분하게 알려주면 더욱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일제고사로 대표되는 입시지옥의 성적 경쟁을 강요받는 10대들, 취업난에 시달리며 스펙과 학점 쌓기에 매달려야 하는 20대들에게 역사마저 외워야 할 암기 과목이나 토익 점수마냥 필수조건으로 갖춰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되어선 안 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마냥 아이들을 붙잡고 앉아서 한국전쟁에 대하여 이야기해주자니, 지루한 옛날 이야기로 여길지 모르겠다는 걱정이 든다면, 영화나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면 어떨까? 자칫 건조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 역사적 사건을 영화같은 매개체로 접한다면, 거부감없이 더욱 흥미롭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세대를 뛰어넘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심지어 영화로 한국의 역사를 알려주고, 공감하는 데 있어 국경도 넘어설 수 있음을 경험하기도 했다. 필자가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로 지내던 동안 외국인 친구들과 영화를 함께 보면서 한국에 대해 생각했던 경험을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2009년 호주 시드니, 아트갤러리에서 열린 '한국 알리기' 전시회
2009년 3월부터 약 3개월간, 호주 시드니에 위치한 뉴사우스웨일즈(NSW) 아트갤러리에서 시드니 총영사관의 주최하에 열린 '한국 알리기'를 위한 전시회가 있었다. 이 특별전시회는 1876년 갤러리 개관 이후 최초의 한국 관련품 단독전시회였다.
전시회는 조선 후기의 병풍과 민화를 비롯한 그림 40여 점 전시와 영화 상영, 그리고 NSW대학 그레고리 이본 박사 외 연구진들이 발표하는 '한국의 음악과 문화', '조선시대의 학문적 경향', '조선시대 미술' 등을 주제로 한 세미나로 이어졌다. (미술품들은 손상을 우려하여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었기에 눈으로만 담아야 했다.)
이 기간동안, NSW 아트갤러리에서는 13편의 한국 영화가 무료로 상영되었다. 1주일에 1편씩 보여주는 일정이었는데, 상영작들은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을 비롯하여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혈의 누>와 <괴물><공동경비구역 JSA> 등 한국을 대표할 만한 영화들로 선정되었다.
이러한 소식을 접한 나는 이 전시회에 현지에서 알고 지내던 외국인 친구들을 데리고 가기로 마음먹었다. 호주에 간 지 8개월을 훌쩍 넘긴 당시에 호주 현지인과 일본, 영국, 페루 등 세계 각지에서 온 친구들과 친하게 어울려 지냈었고, 각국의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기도 했었다. 그러던 중 나도 그들에게 한국에 대해 알려주고 싶었고, 때마침 열린 전시회에 데려가서 시각적인 전시물들을 보여주는 것이 친구들로 하여금 한국의 문화를 느끼도록 도와주는 데에 더욱 좋겠다고 생각했다. 입장료는 물론, 한국 영화까지도 무료로 즐길 수 있다는 나의 제안에 친구들은 흔쾌히 동행하기로 했다.
익숙치 않다던 영어 자막에도 몰입해서 영화 본 친구들, '감동이었다'"영화가 이미 시작되었잖아. 얼른 들어가서 앉자.""밀지마. 어두워서 아무것도 안 보인다구."3월이었던 당시 호주는 푸르고 맑은 하늘에 시원한 바람 불어오는 가을이었다. 화창한 날씨를 즐기면서 너무 천천히 걸었던걸까. 아트갤러리에 도착했을 때엔 이미 영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뒤늦게 발걸음을 재촉하여 시작 시간에 아슬아슬하게 맞추어 도착할 수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입장한 상영관 안은 이미 불이 꺼져 어두컴컴했고, 당황한 우리는 종종걸음으로 얼른 빈자리를 찾아서 앉느라 바빴다.
이 날의 상영작은 <공동경비구역 JSA>였다. 한국인이라면 이미 제목만 들어도 가슴이 찡해지는 영화 아닌가. 박찬욱 감독에 이병헌과 송강호, 이영애와 신하균, 김태우가 주연을 맡아 연기한, '공동경비구역'에서 근무하는 남북 병사들의 이야기.
원래 내 계획은 10분 정도 일찍 도착해서 우리가 보게 될 영화가 무엇인지 확인한 다음, 친구들에게 '이 영화는 말이지' 하며 어떤 내용인지와 한국의 어떠한 부분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영화인지 설명해주는 거였다. 부랴부랴 서둘러 오느라 미처 그러한 설명을 해주지 못했음을 아쉬워하는 순간에 막이 올랐다.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나 지났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양 옆으로 앉은 페루, 영국인 친구들이 내게 자그마한 불편을 호소했다.
"생각해보니 한국 영화라 영어자막이잖아. 자막 속도 따라가며 읽기 힘드네."사실이었다. 영화 초반에 JSA에서 일어난 총기 발사, 교전 상황 등에 관련된 사건에 관해 주인공들이 수사받는 장면에선 많은 대사들로 인해 자막들이 길게 나왔고, 그럼에도 내용 전개를 위해 자막이 넘어가는 속도가 조금 빠르다고 생각했다. 나는 '조금만 참으라'며 친구들을 다독였다.
조사를 받던 주인공 중 한 명, 한국군 일병이 자살을 시도하면서 내 친구들과 극장 안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사건 수사에 대한 내용에서 벗어나면서 자막도 조금씩 읽기 편해졌고, 내용이 진전되며 사람들이 영화에 몰입하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영화는 천천히 보여주었다. 왜 남북한 병사들이 서로에게 총을 겨누어야 했는지를. 그리고 사건 이전의 회상 장면으로 넘어가 남북한 병사들의 소박하고 훈훈한 우정을 그리기도 했다. 그 우정이 남북의 대치상황 때문에 짓눌려 안타깝게 망가져야만 했던 이야기를 통해 한반도의 슬픈 분단현실을 느낄 수 있는 영화였다.
영화가 끝나고 건물 안이 다시 환해졌다. 그 순간, 영화를 본 사람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밝아진 상영관을 둘러보니, 대부분 외국인들이거나, 나처럼 외국인 지인을 데려온 한국인들 같았다.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끼면서, 아트갤러리를 천천히 걸어나왔다. 나와 함께했던 친구들은 상영시간 내내 기다리며 참았을 이야기와 질문들을 나에게 쏟아내기 시작했다.
"슬픈 이야기다. 친구들끼리 서로 쏴야만 했네.""그럼에도 우정을 지키려했던 장면, 감동적이다.""하모니카 반주와 나온 그 노래('이등병의 편지'를 말함)는 가사가 어떤 내용이야?""그런데 한국은 원래 북한과 같은 나라였어? 왜 나뉘어지게 된거야?"이런저런 질문에 자세히 대답해주다가, 나는 자연스럽게 한국전쟁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한민족이 남과 북으로 갈라져야만 했던 슬픈 이야기부터, 1950년 6월 25일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어야 했던 아픔까지도. 그리고 나는 친구들에게 '직접 보여주고 느끼도록 해주자'는 생각을 이어갔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시드니 중심부에서 도보로 3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센테니얼 공원(Centennial Park)'에 들렀다.
한국전쟁 참전국이었던 호주, 그들도 기억하고 있었다
한적한 오후, 우리가 들른 곳은 여느 공원과 다를바 없이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방금 막 한국전쟁에 대한 영화, <공동경비구역>을 보고 나온 뒤였기에 사뭇 숙연한 분위기였다. 이 곳 센테니얼 공원에는, 호주 국기와 태극기가 같은 곳에 나란히 서서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란히 서 있는 태극기를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 다가간 우리는, 두 국가의 깃발이 내려다보는 듯한 자리에 놓인 석판들을 발견했다. 그 중 하나에는 호주인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1950년에 시작되어 3년 동안 계속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사망한 전사자들을 기리기 위한 추모비였던 것이다.
이를 본 호주인 친구가 탄성을 질렀다.
"맞아. 우리 할아버지도 전쟁에 참전하셨댔어. 이제 기억이 난다. 한국전쟁이었어!"그 순간, 나는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친구에게 '할아버지께 고맙다고 전해달라'고 말하는 순간, 목이 메이는 것 같았다. 진심으로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호주에서 멀고 먼 한국까지 날아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목숨바쳐 싸우다 죽어간 그들의 이름을 보고 있으니 가슴 안이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 2012년의 대한민국과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이 몇 번이고 나오는 것이었다.
역사 교육은 중요하다. 역사를 잊지 않아야 잘못된 과거가 미래에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역사를 기억한다는 것은 다른 의미도 지니고 있다. 바로 이 땅의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해 싸우다 피흘린 사람들을 기억하는 것이다. 우리가 해마다 6월 25일이 되면 묵념을 하곤 하는 것은, 62년 전에 있었던 전쟁의 아픔 뿐만 아니라 그 아픔을 멈출 수 있도록 숭고한 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용감했던 그들이 있었음을 잊지 않기 위함이다.
2009년 6월의 어느날, 나는 영화 한 편으로 외국인 친구들과 분단된 한국의 문제를 함께 나누고 공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서 방문한 공원에서 한국전쟁 전사자 추모비를 보며, 한국전쟁의 의미와 참전용사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끼고 추모의 묵념을 올렸다.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교과서로 배우는 역사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이런 작은 발걸음을 요하는 다른 방식으로도 역사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전쟁에서 한반도의 민주주의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 죽어간 호국 전사들에게 이 기사를 통해서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다. 그리고 시드니 센테니얼 공원의 추모비에 적혀있는 마지막 문장처럼, 그들의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까지고 그들을 기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