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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극 어머이의 주인공 배우들, 어머이역 한승연, 꼬마신랑역 신헌영, 각시역 최진실
 창극 어머이의 주인공 배우들, 어머이역 한승연, 꼬마신랑역 신헌영, 각시역 최진실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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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소야, 반갑소야, 이리 만나니 반갑소야, 이 마을 저 마을 아라리 불러 지화자 좋네."

이미 열려 있는 무대로 출연 배우들이 특유의 몸짓으로 걸어 나오며 부르는 노래가 정겹다. 정선아리랑 창극 <어머이>의 첫 과장 '길놀이'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느낌이 산뜻하고 좋았다. 무대장치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 배우들의 노래며 몸짓, 특히 토속 말씨와 미소가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큰 기대는 하지 않고 느긋한 마음으로 관람을 했다.

지난 6월 22일 오후 4시 40분, 강원도 정선읍 정선문화예술회관 3층 공연장, 총 400석의 객석 중 300여 석에 자리 잡은 관중들이 일제히 박수로 환호하며 배우들을 맞았다. 관중들은 대부분 매 2일과 7일에 서는 5일장에 맞춰 정선을 찾은 관광객들이었다.

극의 형태는 뮤지컬, 아니 우리전통 창극이었다. 내용은 아리랑으로 전해져 오는 우리네 어머니를 위한 일종의 진혼곡이다. 제1과장 길놀이는 토속적인 가사와 음률로 시작되었다. 아리랑 고개 너머에서 흔적들이 열차를 타고 정선5일장을 찾아와 역사 속으로 관객들을 인도하는 내용이었다.

현지 주민들로 구성된 출연진에 기대하지 않았던 공연

창극 <어머이> 안내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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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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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살겠구나, 못 살겠구나, 나는 못 살겠구나, 임 그립고 금전이 그리워 나는 못살겠구나."

노래로 시작되는 제2과장은 '1940년 정선골'이다. 때는 일제치하, 일제의 착취는 극에 달하고 민초들의 삶은 곤궁하지만 희망의 아리랑으로 질긴 삶을 이어간다. 정선마을의 지주인 황부자가 근로정신대라는 명분을 앞세워 마을의 처녀를 위안부로 유혹하자 친정어미는 꼬마신랑에게 어머이를 시집보내는데, 첫날밤부터 고된 시집살이가 시작된다.

"시집가네, 시집가네, 간난이 시집을 가네, 건너 마을 꼬마한테로 시집을 가네."
"노랑 저고리 진분홍 치마를 받고 싶어 받았나, 우리 부모 말 한마디에 울미불미 받았네."
"이 칸 저 칸 미닫이문에 보름달은 밝았는데, 우리 집의 저 낭군은 언제 커서 내 방에 오시나."

역시 재미있는 노래로 시작되는 제3과장은 '1945년 정선골'이다. 꼬마신랑의 응석받이와 시집살이가 고달픈 어머이의 삶이 펼쳐진다. 그러나 가끔씩 각시의 편을 들어주는 꼬마신랑의 귀여운 모습이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정선읍내 물레방아 일삼삼 삼육칠팔 마흔여덟살 스물네개 허풍선이 물살을 안고 비빙글 배뱅글 도는데 우리 집에 서방놈은 날 안고 돌 줄 왜 몰라."
"이탄 백탄에 원자폭탄이 그다지도 무수워 땡삐같은 왜놈들이 줄행랑을 치네."

꼬마신랑과 어머이의 애환과 재미있는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악랄하기만 했던 일본이 패망하고 해방의 날이 밝아온다.

"참 재미있게 잘 하네요. 저 사람들 혹시 전문배우들 아닐까요?  이곳 현지 주민들이라기엔 너무 잘하잖아요?"

옆자리의 일행이 소곤소곤 하는 말이다. 그도 역시 현지 주민들이 출연하는 창극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관람을 시작했던가 보았다. 그런데 극이 진행될수록 그런 선입견은 여지없이 깨지고 있었다. 배우들의 노래며 동작, 연기가 그렇게 완벽할 수가 없었다. 과장이 달라질 때도 무대장치의 변화는 거의 없이 약간의 소품만 바뀌었다. 극의 전개도 끊임이 없이 이어지며 흥미와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시집살이 없는 살림 달마다 찾아오는 제사상에 음식치성 고달프다. 견우직녀 만나듯이 꼬마신랑 찾아들고, 셀 수 없는 시댁식구 치성 들여 공양하고, 더부살이 종년처럼 부엌데기 도맡아서 산나물로 죽을 쑤고 강냉이로 밥을 짓고 (중략) 고추 당추 맵다해도 이보다 더할 손가, 아들 커서 장가들면 이 고생을 덜어줄까, 무정한 세월네월 지나가면 나아질까, 죄 많은 요 내 몸이 죽어져야 끝날런가, 아 무서버라 요 내 고생 저승까지 따라오면 우태하나."
"아츰 저녁 우는 새는 배가 고파 우지, 야밤삼경 우는 새는 임 그리워 운다."

어머이의 고달픈 삶을 흔적(특별한 배역 없이 출연한 배우들)들이 모두 나와 마치 경이라도 읽듯 읊조린다. 가사 내용이 너무 절박하고 슬퍼 객석까지 숙연해진다.

제4과장은 '1950년 정선골'이었다. 꼬마신랑은 성장하여 뗏목을 타고 떠나 1년이 지나야 한 번씩 돌아오는 세월이 반복된다. 그 사이 어머이는 3명의 아이를 출산하여 키우지만 가난한 살림에 고생이 막심하다. 수많은 시누이들의 시집살이에 견디다 못한 어머이는 꼬마신랑을 찾아 서울로 떠난다.

감동으로 다가온 극본과 연출... 배우들의 연기력과 노래까지

공연이 끝 난후 사진 촬영에 함께한 출연진들
 공연이 끝 난후 사진 촬영에 함께한 출연진들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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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없는 임보다 내가 먼저 죽고 나면 자식들도 멀리하는 그 수발 누가 들꼬."
"내 살 같은 자식들아 나 죽거든 울지마라, 생이란 허무하다, 낙 모르고 살았구나."
"원도 한도 난 모른다, 이 세상에 미련 없다, 서산마루 노을 따라 아리랑고개 넘어간다?"

제5과장은 '1950년 한국전쟁'이다. 꼬마신랑을 찾아 서울로 간 어머이는 투전판에서 신랑을 만나지만, 그곳에서 한국전쟁을 맞게 된다. 결국 전쟁의 깊은 상흔을 안고 아리랑고개를 넘게 된다.

"색시야, 색시야, 내 각시야, 열일곱 꽃다운 나이에 시어미 시집살이 어린신랑 철없는 무심함에 그 곱던 섬섬옥수 잔주름 늘고, 앵두같은 입술에 한숨만 늘고, 새벽부터 잠들 때까지 모진 일상의 무게로, 새벽녘 피다 사라진 안개처럼 검은 머리 어느 새 덜컥 희었소, 미안하오, 죄송하오, 사랑한단 말 한마디 못하고, 미안하오, 사랑하오, 내 색시야, 내 각시야."

꼬마신랑이 어머이를 안고 부르는 노래는 애절한 후회와 절규를 토해내고 있었다. 객석 이곳저곳에서 눈물을 찍어내는 모습과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전문배우들이 아니고 주민들이 출연하는 창극이어서 특별한 기대를 갖지 않고 관람하기 시작한  극이었는데 극이 종반으로 접어들면서 진한 감동으로 밀려오고 있었다.

"영감은 할멈치고, 할멈은 아 치고, 아는 개치고, 개는 꼬리치고, 꼬리는 마당치고, 마당 웃전에 수양버들은 바람을 맞받아치는데, 우리 집에 서방놈은 낮잠만 자네."
"우리 집에 서방놈은 잘났던지 못났던지, 깍구깍구 머리깍구, 싸구싸구 모재싸구, 입구입구 양복입구, 치구치구 각반치구, 신구신구 구두신구, 돈 한 짐 잔뜩 걸머지구 한양서울 종로거리 화투치러 갔는가, 나는야 어이해서 임 계신 곳을 모르나."
"아우라지 강물이 소주 약주만 같다면 오고가는 많은 사람들 모두 내 친굴세."
"앞남산에 딱따구리는 생구멍도 뚫는데, 우리 집의 저 멍텅구리는 뚫버진 구멍도 못 뚫버,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마지막 과장인 제6과장은 '뒤풀이'로 어느새 흥겨운 가락과 경쾌한 리듬으로 바뀌어 있었다. 흔적들의 어머이를 위한 아리랑 진혼곡은 메아리가 되어 상생과 평화의 의미를 담은 소리로 신명나게 펼쳐지며 끝을 맺고 있었다. 관객들의 아낌 없는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공연을 끝낸 출연자들이 밖으로 나가 관객들을 전송하는 동안 수많은 관객들이 배우들과 사진촬영을 하며 멋진 공연을 칭찬하고 있었다. 출연자들은 대부분 현지 주민들이었다. 직업도 농업과 상업, 학생, 어린이집 교사 등 다양하고, 연령층도 20대에서 60대까지, 70세 이상도 3명이나 되었다.

정선아리랑 극은 1999년 아리랑연극이라는 이름으로 탄생되었다가 정선아리랑 창극과 한국뮤지컬의 시기를 거쳐 2009년 '정선아리랑극'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되었다. 이 극은 정선아리랑을 토대로 극적인 구성을 거친 공연 형태로 우리네 전통과 민속, 역사와 민족성을 구현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도후 극본, 연출의 정선아리랑극 <어머이>는 매 2일과 7일에 서는 장날에 맞춰 정선문화예술회관 3층 공연장에서 12월 2일까지 4시 40분에 공연하며 입장료는 무료다.

덧붙이는 글 | 공연이 시작 되기 전 입장객이 적은 시간에 몸이 부실한 아내가 춥다고 하여, 관광과를 찾아 추위를 막아줄 수 있는 덮을 것을 부탁했을 때, 자신의 정장 윗저고리를 선뜻 건네준 여직원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태그:#정선5일장, #어머이, #각시 이야기, #창극, #정선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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