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객 수가 다소 기대에 못 미치고 있어, 온 국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중략) 귀 부처(기관)와 산하기관·단체 직원들이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가족과 함께 박람회를 방문해 바다를 주제로 한 국제전시관 등 더 없이 좋은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도록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요청 드리오니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누구일까. 누가 협조 부탁한 내용일까. 극장이나 연극장 주인은 아니다. 관광회사도 아니다. 주인공은 대한민국 국무총리실장 직인이 찍힌 공문이다. 전 공무원들에게 내려 보내진 공문의 일부 내용이지만 '국무총리실'이란 문구만 봐도 오싹한 느낌을 주는 이유는 뭘까.
26일 국무총리실은 정부 부처와 예하 기관들, 지방자치단체 등에 '2012 여수세계박람회 참여 협조 요청'이란 제목의 공문을 내려 보냈다. 여수세계박람회 조직위원회가 할 일을 국무총리실이 직접 나서서 챙긴 이유가 궁금하다. 대상은 실로 엄청나기 때문이다. 전 공무원과 그 가족들에게 여수세계박람회에 참여할 것을 독려한 내용이 골자를 이룬다.
국무총리실 "가급적 빠른 시일 내 여수엑스포 방문해 달라"... '오싹'
그러나 행간의 의미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구시대적 냄새가 풍긴다. '동원적'인 의미가 묻어난다. '동참'을 요구했지만 전후 맥락을 보면 '동원'으로 읽히기 쉽다. 국무총리실은 공문에서 "여수세계박람회는 치열한 국제경쟁을 거쳐 2007년 유치이후 약 5년간 많은 준비와 노력을 기울여 왔다"며 "5월 12일 개막 이후 박람회는 훌륭한 콘텐츠로 국내외적으로 호평을 받고 있으나, 관람객 수가 다소 기대에 못 미치고 있어, 온 국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이어 "엑스포 조직위는 입장객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가격을 대폭 할인하고, 예매제를 재시행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여수세계박람회 조직위원회가 내놓은 학생, 어린이, 경로 등 평일 단체권 가격인하와 입장권 권종 신설방안 등을 담은 보도자료 등을 첨부하며 자랑한 모습은 국무총리실 답지 않아 보였다.
얼마나 많은 인파를 예상했기에 국무총리실까지 나서서 공무원들과 가족들에게 참여를 호소할 지경에 이른 것일까. 가뜩이나 민간인 불법사찰 파문의 진원지로 좋지 않은 이미지를 지닌 곳이다. 그런데 국무총리실은 이러한 우려와 불신은 안중에도 없는 듯,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가족과 함께 박람회를 방문해 줄 것"이란 다소 고압적인 표현을 써가며 당부했다.
그건 협조나 당부 차원을 넘어 지침 또는 강요로 해석될 수 있다는 사실을 왜 모를까. 상명하복에 길들여져 온 공무원 조직의 관례상 국무총리실에서 내려온 공문이라면 예하 기관·단체, 학교 등에 다시 내려 보내질 때쯤이면 더욱 고압적인 표현과 수식어가 따라 붙기 마련이다. 특히 시급성을 요하는 경우 더욱 강한 채근과 요구가 담긴 내용들로 가득차기 일쑤다.
이번에도 일부 기관, 학교들에선 일정 기간 동안 해당 기관 소속의 공무원과 가족들의 여수박람회 방문계획(실적)을 파악해 공문으로 다시 제출하라는 요청 때문에 부담을 안겨주었다. 실제 "범정부적 행사에 동참하는 차원에서 우리 기관(학교) 직원들의 여수세계 박람회 참여를 권장하며, 소속기관(부서)의 여수세계박람회 관람 실적 및 계획을 파악하고자 하니 적극 협조해 줄 것"을 요청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불평과 불만을 사기 마련이다. 왜 아직도 이런 일들이 공무원 사회에선 태연하게 발생하고 있는 걸까.
"흥 사라진 여수박람회 관람객, 목표치 3분의1에도 못 미쳐"
27일 자 광주전남지역 주요 일간지 1면 머리기사들이 이를 대변해 주었다. <광주일보>는 이날 '절반 지난 여수박람회 '흥'이 안난다'란 제목의 1면 머리기사에서 "오는 8월 12일까지 93일간 펼쳐지는 여수세계박람회가 27일로 반환점에 다다랐지만 관람객은 목표치의 3분의1에도 못 미치고 있다"며 "전시관 예약제 폐지와 부활, 잦은 입장료 조정 등 운영 전반도 여태껏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기사는 또 "남은 기간 '절반의 성공'이라도 거두기 위해서는 더욱 체계적인 마케팅과 학생 단체 관람객을 위한 풍성한 교육·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며 뼈 있는 충고도 빠뜨리지 않았다.
이날 <전남일보>도 '엑스포, 이대로는 500만명도 힘들다'란 제목의 1면 머리기사에서 질타했다. "2012여수세계박람회가 27일로 반환점을 돈다. 여수엑스포는 1082만명을 목표로 지난달 12일 화려하게 개막했다"는 기사는 "현 추세라면 500만 명 달성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망했다.
기사는 이어 "7월 중순부터 초중고 방학이 있고, 휴가철이 남아 있어 막판 관중몰이를 기대하고 있지만 이달 말부터 장마가 시작되고 7월 말부터 여수엑스포 폐막일인 8월 12일까지 런던올림픽이 열린다"며 우울한 상황들을 열거했다. 또한 "조직위가 특정 전시관에 대한 관람 방식을 예약제→선착순제→예약제 부활 등 갈지자 행보를 펼치면서 '관람이 불편한 엑스포'라는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준 것도 흥행에 악재가 되고 있다"며 조직위의 미숙한 운영방법을 꼬집었다.
여수세계박람회는 이처럼 오랜 기간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 붓고도 수요 예측조사와 기간 내 발생될 갖가지 변인들을 제대로 분석하고 파악하지 못했다. 특히 턱없이 많은 참여인원을 예상한 것이 화근이 된 형국이다. 이 때문에 지역언론들은 여수세계박람회 조직위와 박람회 운영과정의 문제점 등을 연일 비판의 도마 위에 올려놓고 신이 난 모습이다.
오죽했으면 국무총리실이 직접 나서서 공무원과 그 가족들을 상대로 참여를 협조했을까. 뜻을 이해할 만도 하다. 그러나 이에 참석하는 사람들을 감시하고 미행하는 일은 설마 없겠지 하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뭘까. 자꾸만 기우이길 바라는 이유는 민간인 불법사찰과 관련된 의혹과 불신들이 아직도 속 시원하게 밝혀지지 않은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