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오랜만에 뵙는 얼굴이다. 내가 대학을 졸업한지 37년이 되었으니, 짧은 시간이 아니다. 마음은 그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 금방이라도 그 때처럼 훨훨 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어쩌란 말인가? 속절없이 약해지고만 있는 몸을 어찌해야 할지 그 방도를 찾을 수 없다. 은사님에게 전화를 드렸더니, 은사님만 계신 것이 아니었다. 다른 은사님도 함께 계시었다. 그 은사님은 정말 오랜만에 뵙는다.
후배들의 30주년 기념 동창회에서 초청을 받았다고 하셨다. 멀리 일산에서 살고 계시는데, 제자들의 초청에 전주를 방문하신 것이다. 전주에 계시는 은사님은 자주 찾아뵙는 편이다. 그러나 일산에 계신 은사님은 공간상으로 아무래도 어렵다. 그런데 이런 기회에 뵐 수 있었으니, 그 감격은 컸다. 은사님의 연세는 80대 중반을 넘어 9순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에도 정정하시니, 그렇게 고맙고 반가울 수가 없었다.
다시 올라가야 한다는 말씀에 난감하였다. 어떻게 해드는 것이 좋을지 생각하였다. 입맛이 많이 떨어졌다는 말씀에 순창의 한식을 떠올렸다. 발효 식품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순창 한정식이 노 은사님의 입맛에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용기를 내어 시동을 걸렀다. 은사님들은 그냥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차 안에서는 자연스럽게 학창 시절의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다.
좋았다. 추억의 뒤안길에서 달콤한 맛을 보는 것 같았다. 마음은 이미 그 때 당시로 돌아가 있었다. 막걸리 마시던 일이며 데모에 참가하여 은사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던 일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그리운 그 시절을 일들을 회상하게 되니, 시간의 소중함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 때 그 시절은 과거의 일이 되었지만 과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회상하고 있는 한 시각은 언제나 살아 있는 오늘이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은사님의 얼굴을 보았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 본질만큼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과거가 소중한 것은 바로 눈앞의 현실과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일을 두려워할 이유도 없다. 왜냐하면 오늘의 연장이 바로 내일이 아닌가? 아직 도래하지도 않은 내일을 앞당겨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한다고 하여 달라질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한정식 상 앞에 앉아서 웃음꽃이 피어났다. 은사님의 입맛에도 맞았는지, 한 공기를 다 비우셨다. 다양한 발표 식품을 마다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추억의 뒤안길로 돌아가서 환하게 웃음꽃이 피어나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마음을 내려놓고 이야기꽃이 피어나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경비가 많이 드는 것도 아니었다. 마음만 먹으면 되는 일이었다. 참으로 즐거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