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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만남. 과연 여기서 싹이 날까?
▲ 4월 6일 낯선 만남. 과연 여기서 싹이 날까?
ⓒ 김재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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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오빠 얼굴이 흙바닥처럼 타버렸다고요? 새벽 5시에 아침을 먹는다는 말에 보지 않고도 알만해요. 가뭄이 심하다고 하던데, 오빠네도 무사하지는 못하겠지요? 어떻게 해보지도 못하고 걱정만 하고 앉았습니다. 주말부터는 비가 온다고 하는데….

오늘은 강낭콩 이야기를 좀 하려고요. 아이가 "학교에서 강낭콩을 심고, 자라는 것을 관찰하라는 숙제를 내줬다"며 여남은 개 쯤 되는 강낭콩을 가져온 게 지난 4월 어느 날 쯤인가봐요. 엄마는 별 걸 다한다고 "그것 심어봤자 베란다에서 자라기나 할 거냐"고 한소리 하셨을 거예요. 저도 그 생각을 했어요. 게다가 바짝 마른 콩에서 과연 싹이나 날까 의심부터 했지요. 엄마가 콩나물 시루에 앉힐 콩을 물에 불려, 보자기로 덮어 싹을 틔우던 것을 알고도 말이에요.

나면서부터 농사꾼이었던 엄마의 딸이면서도, 저는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얼뜨기 딸이지요. 농부가 씨앗을 믿지 못하는 일은 없잖아요. 돌밭에 '옥수수 알'을 심을 때 엄마는 그 씨앗을 믿었을 것입니다. 종자씨를 골라 두는 눈이 따로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제 기억에 엄마의 농사가 실패한 적은 없었으니까요. 밭이 아닌 화분에 콩 몇 알을 심으면서 제 마음은 내내 의심과 불안뿐이었어요.

"꽃씨 안이 궁금해/쪼개보기엔/너무 작고 딱딱해// 꽃씨 안이 궁금해/귀에 대고 들어보지만/숨소리도 없어//꽃씨 안이 궁금해/코로 맡아 보지만/냄새도 없어//궁금해도 기다려야지/흙에 묻고 기다려야지/꽃씨만이 아니야/기다려야 할 건 참고 기다려야지.//"(유경환, '꽃씨' 전문 <냉이꽃 따라가면> 중에서, 파랑새 어린이)

어제 독서 모임에서 읽은 동시에요. 이 시를 같이 읽은 동무 말이 집안에 정말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씨앗이 굴러다니길래 심었더니, 그게 자라면서 꽃을 피우는데 '봉숭아'였다고 하더군요. 그 콩이 강낭콩인지 심어봐야 아는 건 아니었어요. 그래도 막상 싹이 올라오고 자라는 모습을 보는데….

"히야, 참말로 신통하네요."

거름이고, 뭐고, 약 될 만한 건 아무것도 없이 오로지 물만 주고 햇빛만 보게 했어요. 못 됐지요? 그러고도 꽃을 기다리고 열매를 바라는 마음을 가졌으니 말이에요.

흙속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마치 흙을 밀고 올라오는 소리를 들은 것 같은 착각을 했다.
▲ 4월 13일 흙속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마치 흙을 밀고 올라오는 소리를 들은 것 같은 착각을 했다.
ⓒ 김재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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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주대'가 필요한데 마땅한 것이 없었어요. 철사 옷걸이를 두어 개 이어서 베란다 천장에 매달아 주니, 강낭콩은 기운 세게 그걸 타고 오르네요. 그걸 '지주대'라고 만들어 매다는 동안 대화집 마당을 생각했어요. 언제부턴가 나는 그 마당을 '엄마의 마당 밭'이라고 이름을 붙였어요. 마당을 갈아 감자를 심고, 마늘을 심고, 고추를 심고, 도라지를 심고, 그러더니 어느 해부턴가 곤드레도 심었지요.

사람이 드나들던 마당을 어찌 밭으로 만들었을까 싶었어요. 자식들은 다 떠나고, 아버지의 병을 간호하느라 먼 밭에 가지 못하니 마당을 밭 삼아 가꾸셨나 생각을 한 적이 있었지요. 시집오고 나서는 일년에 겨우 한두 번 집에 가서 그 마당에서 난 곤드레 나물로 밥을 해 먹고, 그 마당에서 딴 '당콩(강낭콩의 강원도 사투리)'을 한 봉지씩 얻어와 밥에 넣어 먹었지요.

어쩌자고 자꾸자꾸 자라는지.
▲ 5월 19일 어쩌자고 자꾸자꾸 자라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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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만큼 긴 '지주대'를 세워주고 거름도 듬뿍 주니, 엄마의 콩은 당연히 잘 자랐겠지요. 몇 줄기 안 되는 데도 거기서 난 콩을 엄마도 잡숫고, 저도 가져왔으니까요.

숙제를 내 준 선생님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 콩을 심어 먹겠다는 마음은 아니었어요. 콩을 심고,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자라는 것을 관찰하는 것이 아이에게 주어진 과제였을 거예요.

그런데 정말 강낭콩이 강낭콩으로 자라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꽤 신기하고 재미있었어요.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 즐거운 일이 되다니, 저는 이제 영락없는 도시 사람이 되어버렸어요.

노동의 고통 없이 가만히 앉아서 꽃이나 보는 일은 결코 농사가 아니지요. 한여름 땡볕에서 김을 매지 않고 얻는 열매가 가당키나 한가요. 그런데 이 강낭콩이 연보라색 꽃을 피워내고, 꽃똥구멍으로 콩꼬투리를 뱉어내는데 미안하게도 감동이었어요. 이게 어쩌자고 이런 데서 꼬투리를 뱉어내는가 싶고, 알을 밸 수 있을까 싶고, 그러는 사이 조금씩 꼬투리가 배가 불러 가는 거예요. 살짝 만져보니 제법 딱딱한 것이 안에 콩이 들어있는 것 같았어요.

지긋지긋한 게 농사고, 세상의 일 중에 고된 것이 농사일인데, 고작 아이 숙제로 키운 강낭콩에 열매가 맺힌 것에 호들갑을 떠는 제가 못마땅합니다. 그래서 생각해 봤어요. 생산적인 삶이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생산하며 살고 있는가. 빈 꼬투리만 잔뜩 가진 것은 아닌가. 그것마저 없이 사는 것은 아닌가. 나는 농사꾼의 딸인데 말이에요. 엄마에게 농사는 무엇이었을까 물어 본 적 없는 말을 속으로 해보았습니다.

꽃이 지는 자리에 꼬투리가 생긴다는 것을 보고 알았다.
▲ 5월 24일 꽃이 지는 자리에 꼬투리가 생긴다는 것을 보고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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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키워본 이웃들은 대부분 빈 꼬투리가 된다고 말했다. 이 마른 몸 안에서 알이 자랄 수 있을까
▲ 5월 30일 먼저 키워본 이웃들은 대부분 빈 꼬투리가 된다고 말했다. 이 마른 몸 안에서 알이 자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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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엄마 딸이 되어 부끄러운 게 있어요. 농사꾼 딸이면서 제 손은 무엇하나 제대로 길러 내지 못한다는 것이에요. 몇 해 전 주말농장을 빈 땅으로 되돌려 주면서 저에게 크게 실망했지요. 어깨너머로 보기만 한 것으로는 흉내만 낼 뿐이었어요.      

어쩔 수 없이 도시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는데, 요새는 제가 불임환자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무것도 생산해 내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저 소비하고 없애는 일만 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꼬투리 색깔이 꽃 색깔하고 같아서 놀랐다.
▲ 6월 20일 꼬투리 색깔이 꽃 색깔하고 같아서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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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낭콩을 심고 그게 자라 다시 강낭콩으로 돌아온 지금, 이 강낭콩은 그 강낭콩일까요? 원래 심은 강낭콩에서 줄기가 나고 열매가 맺혔으니 그것과 이것은 하나일까요?

한 알을 심어 네 알을 얻었으니, 하나는 곧 넷이 되는군요. 이 확장성 혹은 생산성이 농사의 힘이지요. 밭 갈라고 보낸 아버지가 밭은 안 갈고 술만 잡숫고 있더라는 말이 아버지의 전설이 된 것처럼 엄마가 혼자서 팔 남매를 키워 낸 것은 엄마의 전설이지요. 아흔 아홉 구비전설입니다. 그 전설이 존재하는 것이 이 농사의 생산성의 힘이겠지요. 그러니 농사가 생명이라는 말이 맞네요.

꼬투리 두 개에 콩이 두 알씩!
▲ 6월 27일 꼬투리 두 개에 콩이 두 알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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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화분에서 싹을 틔우고 자라 열매를 맺는 강낭콩을 지켜보면서 엄마 생각이 많이 났어요. 그때마다 내 모습도 떠올랐어요. 일을 다 마쳐야 집에 간다는 엄마한테 '집에 가, 일 좀 그만해' 하면서 징징대고 해 떨어져도 안 오는 엄마를 기다리다 보면 별이 뜨기도 했어요. 그 후로도 오랫동안 엄마 땀 냄새를 엄마 냄새로 알았던 시절입니다. 

엄마가 막내딸 아들 봐주느라 도시 생활을 한 지도 근 8년 가까이 되어가는군요. 여전히 대화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죠? 도시의 산에서도 나물을 뜯어내는 엄마를 존경해요. 여전히 생산하고 있는 당신은 농사꾼입니다.

고작 아이 숙제로 키운 강낭콩 하나로 이 호들갑을 떠는 딸한테 "에이고, 지랄도 되게 한다. 게우 아 하나 키우면서 그깐 콩 하나 심거 놓고는. 그게 뭔 말거리라고. 자식 농사나 잘 지으라"고 할 게 분명합니다. 엄마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고 말고요. 그러나저러나 이 콩으로 무엇을 할까요?

아이는 다시 심자고 하고, 저는 밥 해 먹자고 하였어요. 진보라색 콩알이 참말로 예뻐요. 이 단단한 몸속에 강낭콩의 전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이지요.  

이 강낭콩은 그 강낭콩일까
▲ 6월 27일 이 강낭콩은 그 강낭콩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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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강낭콩관찰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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