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30만여 명. 최저임금을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숫자다. 아르바이트하는 청년, 공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청소·경비노동자인 고령자가 대부분이다. 2012년 이들이 1시간 일해서 손에 쥐는 돈은 4580원. 5200원짜리 맥도날드 빅맥 세트 하나 사먹지 못한다. 한국노총·민주노총은 최저임금을 시간당 5600원으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밥 한 끼는 마음 놓고 사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6월 30일 새벽 최저임금위원는 양대노총이 불참한 가운데 2013년 최저임금을 결정했다. 시간당 4860원이다. 결국 내년에도 햄버거 세트 하나 사먹지 못하게 됐다. 대학 입학하고 2년 반 동안 최저임금으로 밥 벌어 먹은 휴학생을 만났다. 그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편집자말]
[기사 수정: 2일 오후 5시]

28일 오후 서울 구로구 신도림역 근처 패스트푸드점에서 조광현(22세·안양과학대)씨가 주문하는 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지난 3월부터 약 2개월 반 동안 패스트푸드점에서 최저임금(4580원)을 받으며 아르바이트를 했다.
 28일 오후 서울 구로구 신도림역 근처 패스트푸드점에서 조광현(22세·안양과학대)씨가 주문하는 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지난 3월부터 약 2개월 반 동안 패스트푸드점에서 최저임금(4580원)을 받으며 아르바이트를 했다.
ⓒ 이주영

관련사진보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가 중학교 3학년일 때 일이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일터로 나갔다. 그가 대학 입학을 앞둔 어느 날, 어머니는 일을 그만 뒀다. 몸이 점점 안 좋아져서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그에게 말했다. 어머니는 주식투자를 시작하셨다. 이후 그는 직접 돈을 벌었다.

그렇게 조광현(22세·안양과학대)씨는 경기도 군포 물류센터에서 일을 시작했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인 2010년 2월이었다. 택배 트럭이 오면 짐을 내리고, 다른 짐을 트럭에 실었다.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12시간 일했다.  꼬깃꼬깃한 만원권 5장을 받았다. 그가 처음 몸을 써서 번 돈이었다. 최저임금과의 지긋지긋한 싸움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단기알바만 30여 번했는데... 책값 없어 점심 굶었다

2010학번으로 입학하자마자 그는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수업 때문에 평일 장기 아르바이트는 불가능했다. 단기 아르바이트에 주력했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의 한 레스토랑에서 설거지를 했고, 안산 반월공단 자동차부품공장에서 엔진 조립하는 일을 도왔다. 하루 12시간 일하면 4만~5만 원을 받았다. 시간당 3400원 정도였다. 한 달 3건 정도 일이 들어오면 15만 원을 손에 쥐었다. 1년 동안 30군데 넘는 곳에서 일을 했다.

그래도 늘 적자에 시달렸다. 식비, 교통비, 통신비, 책값 등을 다 내기엔 15만 원은 부족했다. 돈 씀씀이를 줄여야 했다. 안양역부터 학교까지 약 3km를 걸어 다녔다. 왕복 1시간 걸렸다. 점심은 한 개에 1000원짜리 주먹밥으로 대신했다. 책값이 많이 들 때면 그냥 굶었다. 처음에는 위가 뒤틀어지는 듯 고통스러웠다. 시간이 지나자 '배고픈가보다' 하며 넘기게 됐다.

2011년 2월. 2학년이 되기 전 그는 휴학했다. 마음 놓고 장기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2012년 3월부터는 안양시 범계역 근처 A패스트푸드점에서 일을 시작했다. 하루 6시간씩 4일 동안 주방에서 햄버거를 만들고 받는 시급은 4580원. 정확히 2012년 최저임금이었다. 월급날이 되면 주휴수당까지 포함해 45만 원이 통장에 들어왔다. 지금까지 번 돈 중 가장 많았다. 그러나 그는 다른 때보다 더 절약을 위해 바동거렸다. 올해 9월 군 생활을 하기 전까지 생활비를 벌어놔야 했다. 공익근무요원이 받는 월급 19만 원으로는 빠듯하게 살 게 뻔했다. 

28일 오후 서울 구로구 1호선 신도림역에서 조광현(22세·안양과학대)씨가 전철을 기다리고 있다.
 28일 오후 서울 구로구 1호선 신도림역에서 조광현(22세·안양과학대)씨가 전철을 기다리고 있다.
ⓒ 이주영

관련사진보기


출퇴근길에는 약 두 정거장 거리를 걸었다. 지하철요금 100원을 아끼기 위해서였다. 점심은 일터에서 공짜로 주는 햄버거를 먹었다. 매일 먹는 햄버거가 질린 다른 아르바이트생들은 밖에 나가서 사먹었다. 그래도 그는 참고 햄버거를 목구멍 너머로 삼켰다.

일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갔다. 친구들이 맥주 한 잔 하자고 연락하면 일이 있다고 둘러댔다. 사람 만나면 기본 만원은 나가므로 곤란했다.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은 친구들 모임에 나갔다. 나가서도 돈을 덜 써야겠다는 고민은 끊이지 않았다. 친구들이 술값으로 만원씩 걷겠다고 하면 그는 5000원만 낸다. 화장실에 다녀온 뒤에, 나머지 돈을 주겠다고 말해뒀다. 진짜 주진 않았다.

휴대전화도 폴더로 된 2G폰을 고수했다. 기본요금 5만 원짜리 3G 스마트폰 요금은 그에게 사치였다. 대신 한 달에 5만 원치 전공·어학 책을 사서 독학했다. 남들 다니는 토익 학원에 가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월급의 3분의 1이나 되는 학원비를 감당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이렇게 최대한 안 쓰면 한 달에 5만 원 정도 남았다. 남은 돈은 저축했다.

3개월 뒤인 6월 26일, 군 입대를 앞두고 일을 그만뒀다. 1년 반 동안 휴학하고 돈을 벌어 온 지난날을 회상하며 통장 잔고를 확인했다. 15만 원 남아 있었다. 한숨이 나왔다. 그때 전화 한 통이 왔다. 기자였다. 그에게 최저임금으로 생활이 되느냐고 물었다. 뭔가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자에게 만나자고 했다.

"최저임금 오르면? 절약 고민 줄어"

28일 오후 신도림역. 근처 백화점 푸드 코트에서 기자를 만났다. 그가 좋아하는 국밥을 먹으러 갔다. 그릇 가득한 국물에 밥을 말아 먹고 나면 배가 팽팽해지는 게 좋았다. 하지만 사먹은 적은 별로 없다. 5000원을 훌쩍 넘는 국밥은 그가 받는 시급보다 비쌌다. 다행히 이날은 기자가 한 턱 내는 자리였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뭐가 좋은지 기자가 물었다. 그는 통장에 늘어날 잔고를 떠올렸다. 평소 사먹고 싶던 음식을 생각했다. 그동안 해본 적 없는 고민이었다. 여태까지 그는 '뭘 사먹으면 안 되는지'만 고심했다. 아침에 현관문을 나설 때도, 자려고 침대에 누울 때도, 머릿속에는 늘 '절약'이란 두 글자뿐이었다. 한때 소원이 충동구매인 적도 있었다. 고민 없이 물건을 산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그는 모른다.

'최저임금을 시간당 5600원으로 올리자'고 청년유니온에서 캠페인하는 걸 본 적 있다. 1000원 정도 시급이 오른다고 그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테다. 하지만 그의 고민이 조금은 줄어든다. 잠깐 동안 절약이라는 단어를 머릿속에서 치워두고 먹고 싶은 음식을 사먹는 용기를 낼 수도 있다. 그에게 최저임금 인상이란, 잠깐의 여유를 부릴 기회였다.

그는 그릇에 남은 국물을 들이켰다. 팽팽해진 배를 문지르며 기자의 질문에 답을 했다.

"이 국밥을 사먹을 수 있어요. 제가 번 '시급'으로."

그러나 이틀 후인 30일. 2013년 시간당 최저임금이 4860원으로 결정됐다. 그는 내년에도 국밥을 사먹을 수 없다.


태그:#최저임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