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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남자 나이 마흔 중반을 넘기면 집안에서 목소리가 점점 작아집니다. '우리 집 왕은 나다'라는 생각으로 살다가는 '홍시 먹을 때'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당연히 아내 말을 잘 들어야 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물론 아직 완강하게 저항해보지만 갈수록 힘은 빠집니다. 토요일 아침 빨래를 하던 아내가 불쑥 던졌습니다.

"물청소 하세요"...

"계단 물청소 좀 하세요."
"물청소?"
"지금 빨래하는 것 안 보여요. 나는 빨래 할 것이니까. 당신은 계단 청소 좀 하세요."

"…"
"그냥 가면 어떻게해요. 양동이에 가지고 가서 물을 담은 후 뿌려야 하잖아요."
"…"

'하늘같은 남편'이 아니라 이제 아내 말을 들어야 하는 신세로 전락한 나를 보면서 빗자루와 양동이를 들고 쓸쓸히 계단으로 갔습니다. 물을 한 가득 담고 물을 뿌렸습니다.

아내 명을 받아 물 청소를 하고 있습니다
 아내 명을 받아 물 청소를 하고 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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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이 카펫트로 되어 있어 원래 먼지가 많은데 워낙 가뭄이라 더 많이 납니다. 물을 뿌리지 않고 빗자루를 쓸면 먼지 천국이 됩니다. 아빠 모습이 처량한지 딸이 도와주겠다고 나선 것이 조금은 위안입니다.

"아빠 내가 도와 드릴게요."
"네가? 고맙네. 그럼 한 번 쓸어봐."
"아빠가 물을 뿌리고 내가 쓸면 되잖아요."


카페이라 빗자루로 쓸면 먼지가 많이 나기 때문에 반드시 물청소를 해야 합니다.
 카페이라 빗자루로 쓸면 먼지가 많이 나기 때문에 반드시 물청소를 해야 합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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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아빠 모습이 처량했는지 자기가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딸이 아빠 모습이 처량했는지 자기가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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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손으로 뿌리는 것이 아니라 호스로...

딸 덕분에 물청소를 잘 마쳤습니다. 이제 허리 좀 펼까 생각했지만 아니었습니다. 물청소한 현장을 '점검'한 아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물을 구석구석 뿌려야 먼지를 다 쓸어낼 수 있다며 다시 해야 한다고 합니다. '아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손으로만 물을 뿌리지 말고, 호스로 물을 뿌려야해요. 그래야 먼지가 나지 않잖아요."
"그럼 당신이 호스로 물을 뿌려주세요. 나는 빗자루로 쓸 테니까."
"나는 호스로 물 뿌리면서 빗자루질도 하는데 당신은 꼭 물을 뿌려 주어야 해요."
"…"


남편이 물청소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아내는 구석구석 물을 뿌려주었습니다.
 남편이 물청소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아내는 구석구석 물을 뿌려주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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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물청소는 다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내 도움으로 물청소를 다 마치고 손을 씻으려고 하는데 풀이 보였습니다. 이때다 싶어 아내가 말을 하지 않아도 풀을 뽑기로 했습니다. 먼저 나서서 풀을 뽑으면 아내에게 점수를 조금이라도 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풀을 뽑으면 점수를 땁니다.

"풀이 많이 났네."
"그럼 좀 뽑으세요."
"…"


풀이라는 놈, 정말 작은 빈틈만 있어도 납니다. 풀을 뽑아야 했습니다.
 풀이라는 놈, 정말 작은 빈틈만 있어도 납니다. 풀을 뽑아야 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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뽑은 풀을 비닐봉지는 담는 모습이 참 처량합니다
 뽑은 풀을 비닐봉지는 담는 모습이 참 처량합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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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은 작은 틈만 있어도 비집고 나옵니다. 비가 오고 나면 풀은 더 잘 자랍니다. 아마 일주일 정도 지나면 풀은 많이 자라 있을 것입니다. 그 때도 재빨리 풀을 뽑아 아내에게 점수를 조금 따야 할 것 같습니다. 남편들어여 가끔을 물청소도 하고, 풀을 뽑아 아내에게 점수를 따야 합니다. 풀 뽑는 모습이 조금 처량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야 '홍시 먹을 때 편안합니다.'


태그:#물청소, #풀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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