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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증도 없고, 수술부위도 잘 고정돼 있군요. 이제부터 슬슬 목발을 짚고 걸음마를 시작해 보세요."
"네? 이렇게 붓기도 빠지지 않고 무릎도 퉁퉁 부어 있어 통증이 심한데도요?"
"원래 인간은 운동을 하지않으면 혈액 순환이 되지 않아 다리도 붓고 아픈 법입니다. 성한 사람도 운동을 안 하고 며칠만 가만히 누워 있어보세요. 허리, 어깨 팔다리 사방이 붓고 아프지요."
"네, 잘 알겠습니다."
"넘어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디뎌야 합니다."
"네."

아내의 다리 수술을 집도한 외과의사는 X레이를 걸어놓고 수술부위를 가리키며 마치 어린아이에게 타이르듯 주의사항을 일러줬다. 아내는 두 달 전 발을 헛디뎌 발뒤꿈치뼈 골절상을 입는 바람에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단순히 계단에서 발을 헛디뎠을 뿐인데 진단결과 뒤꿈치 뼈가 금이 가고 부서졌다는 것.

여자들은 남자에 비해 나이가 들수록 골다공증이 심해 뼈가 약해진다고 한다. 생리적으로 피를 많이 흘린 데다가 아이를 낳으면서 많은 피를 소모하게 돼 남자에 비해 뼈가 약할 수밖에 없단다. 더구나 아내는 면역 억제제를 매일 복용하고 있어 골다공증이 더 심해 뼈가 더 약하다.

4년 전 6월 30일... 새 생명이 태어난 날

지난 6월 30일은 아내가 심장 이식을 받은 지 만 4년이 되는 날이다.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다가 장기이식으로 다시 태어나 새 생명으로 살아가고 있는 아내. 그래서 나는 아내의 나이를 심장이식을 받은 날부터 하루하루를 새로 세고 있다.

무더위에 좁은 공간에서 훨체어 생활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인내심이 필요하다
 무더위에 좁은 공간에서 훨체어 생활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인내심이 필요하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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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2008년 6월 30일, 그날 아내는 심장을 이식을 받아 새로 태어났으니 올해 6월 30일은 새로운 나이 계산법으로 만 4살이 되는 날이다. 기적적으로 소생한 아내는 평생 면역 억제제를 복용해야 하고, 부작용을 조심하며 살아야 한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거기에다가 발뒤꿈치 골절상을 입었으니... 그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걷지 못한다는 게 얼마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아요."

휠체어 생활을 2개월째 하고 있는 아내를 지켜보니 아내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처음 1개월 동안은 대소변은 물론 어디를 가든 휠체어에 태워주고 밀어줘야 움직일 수 있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칭호를 받게 된 것도 직립해 걸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사람이 직립으로 서지 못하고, 걷지 못하면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스스로 걷지 못하면 살아있어도 제구실을 못하게 되니 말이다.

아내는 차츰 나아져 이제 실내에서는 스스로 휠체어를 타고 움직인다. 무더운 여름에 좁은 실내 공간에서 휠체어를 타고 거동을 한다는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나마 이제부터 슬슬 걸음마를 시작해 보라고 했으니 참 다행이다.

"남편이 고생이 많겠네요?"
"하하, 고생이요? 아내에게 전생에 빚을 엄청 많이 졌나봅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다 보니 별로 고생이라는 생각이 안 돼요. 오히려 제가 아내를 바라보며 많은 걸 배웁니다."

아내 덕분에 사회복지사와 요양보호사 자격까지 취득

나는 4년 전에 아픈 아내를 간병하며 요양보호사와 사회복지사 공부를 해 두 개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심장 이식을 한 아내를 1년 동안 간병하며 공부를 하다 보니 내게 도움이 되는 것도 참으로 많았다. 사회복지사는 사이버대학에서 독학으로 공부를 했고, 요양보호사는 몇 개월 동안 이론 교육과 실습을 번갈아 가며 행했다.

늦은 나이에 아내 덕분(?)에 두 개의 자격증을 얻게 된 셈이다. 아내는 이렇게 나를 공부시키고 있다. 그러니 나는 아내에게 늘 배우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 6월 28일은 종일 병원에서 보냈다. 오전 5시에 채혈을 하고, 낮 12시에는 정형외과, 낮 1시에는 내분비과, 오후 2시에는 심장내과에 들렀다. 그리고 약국에 가서 약을 타고나니 저녁이 됐다. 아내는 간호사님들의 말처럼 '움직이는 종합병원'과 같다.

"신장 수치, 혈압도 정상이고요. 콜레스테롤, 간 수치도 정상입니다. 다친 다리만 제외하고 관리를 잘하고 있군요."
"모든 게 선생님 덕분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식을 받은 지 4년째 되는 아내의 심장 상태. 심장 주치의는 아내의 심장 상태가 극히 정상이라고 했다. 다리 수술을 받은 데다가 4년 검사를 받으며 마음이 조마조마했는데 참으로 다행이었다.

목발로 걸음마 시작하는 아내

수술한 지 2개월이 지난 아내는 이제 겨우 목발을 짚고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했다.
 수술한 지 2개월이 지난 아내는 이제 겨우 목발을 짚고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했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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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걸음마를 시작해 볼까요?"
"잘 걸을 수 있는지 모르겠네요."
"네살배기 어린애가 처음부터 잘 걸을 수 있나?"

목발을 짚고 조심스럽게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내의 표정이 상기돼 있었다. 무더위에 2개월 동안 감아놨던 깁스를 풀고 처음으로 발걸음을 디디니 다소 흥분되는 모양이다.

"저런! 저런! 보폭을 좀 더 좁게 해야지."
"그게... 생각대로 잘 안 돼요..."
"하하, 당신은 이제 겨우 네 살이잖아."
"호호, 그런가요?"

힘들수록 웃어야 한다. 성질이 다소 급한 아내는 보폭을 넓게 뛰다가 비틀거렸다. 그래도 깁스를 풀고 걷게 되니 내심 기분은 좋은 모양이다. 아내의 의지와 용기는 실로 대단하다. 수술을 받는 것도, 병을 이겨내는 것도 용기와 의지, 그리고 인내심이 없으면 견뎌내기 어렵다.

"당신 어깨 근육 하나는 끝내주게 단단해 지겠어."
"제발 웃기지 말아요. 그렇지 않아도 힘들어 죽겠는데."

2개월 동안 발 대신 팔로 휠체어를 밀고다니다가, 휠체어 대신 목발 신세를 지며 팔에 힘을 줘야 하는 아내는 정말 팔 힘이 세졌다. 인간의 신체는 쓰면 쓸수록 강해지는 법이다. 용불용설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어려운 고비를 인내하며 다시 기적처럼 일어서는 아내에게 갈채를 보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휠체어, #목발, #아내의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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