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4년째야. (재개발조합에서는) 제풀에 꺾여 나가길 바랄 거야…. 2백여 개 중에 이제 아홉 개 밖에 안 남았어"
2005년, 그는 물건이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사업이 잘 됐다. 그는 목 좋은 서울 용산역 앞 대로변, 30평 크기의 자동차용품 대리점을 가진 사장이었다. 네 명의 직원과 함께 내비게이션, 카오디오, 후방 카메라 등을 팔았다. 본사는 '최우수 대리점'이라고 대표이사의 이름으로 상표까지 만들어줬다.
7년이 지난 2일에도 최희윤(58, 경기도 화성)씨는 같은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대리점에는 그 때의 직원들은 사라지고 혼자 남았다. 팔고 남은 물건들이 사무실 한 쪽에 쌓여 있다. 이따금 내비게이션을 고치러 오는 손님이 있다.
최씨는 "지나고 나니 깨지고 부서져 버리고 결국 이렇게 됐다"고 말했다. 세 들어선 대리점이 철거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2008년 11월 용산구청은 최씨가 세든 건물에 관리처분인가를 냈다. 이른바 용산 재개발이다. 구청은 서울 용산역 앞을 구획하고 최씨의 대리점이 있는 한강로2가 381번지 일대를 '용산3구역'이라 불렀다. 낡은 건물을 대신해 주상복합 아파트를 짓겠다는 계획이다.
지난달 30일까지, '자진해서 옮겨가라'관리계획 인가에 따라 서울시 지방토지수용위원회는 용산 3구역의 건물들을 감정평가했다. 이에 따라 재개발조합은 최씨와 같은 세입자들에게 보상비를 받고 이전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최씨는 "그 돈은 다른 데로 옮겨 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세입자 이전대책 없는 재개발 중단하라"고 주장해 왔다. 2009년부터 감정평가가 무효하다고 행정 소송을 벌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2009년 1월, 최씨 대리점 반대편 용산4구역에서는 사고가 났다. 용산참사였다. 철거민 5명이 경찰의 강제진압 과정에서 숨졌다. 먹고 살기 위해 싸우는 그들을 지켜주지 못할망정.그는 경찰과 서울시에게 울분을 느꼈다. 그리고 숨져간 철거민들을 이해하게 됐다.
"그들이 망루 위에 올라가 새총으로 돌을 쏘고 왜 그렇게 처절하게 저항을 했을까. 결국은 생존권에 대한 마지막 절규였지. 그 사람들이 그렇게 원래 타고나는 게 아니었지. 나라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지."용산3구역 면적의 90%는 이미 철거가 진행된 상태. 200여 명의 세입자들은 어딘가로 흩어졌다. 그 중 만두가게, 옷 가게, 분식집 등 아홉 가게 남았다.
그는 매일 오전 7시에 대리점에 나온다. 언제 강제철거가 진행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서울서부지법 집행관 이름의 명도(부동산 점유권의 이전) 고시는 6월 30일까지로 못 박았다. 하지만 3일까지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다행'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강제집행은 재개발 조합이 신청해야 가능한 일이다.
최씨는 밤 늦게까지 사무실을 지킨다. 최씨는 지루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내비게이션으로 DMB TV를 켰다. 2일 오후 TV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화면에 나왔다. 박 시장이 "시장으로 있는 한 강제철거는 있을 수 없다"며 "시가 중재자로 나서 세입자와 조합원 사이의 강제철거를 막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씨에겐 고맙고 반가운 소식이었다. 강제철거를 피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하지만 최씨는 "박 시장의 조치가 현실적인 해결방안이 되기에는 부족하다"며 "세입자들의 이주를 법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강제철거 막으려면 박 시장 100명이 있어야 될 일이야. 우리 말고도 봉천동, 북아현동 등 서울만 해도 수십 곳이 되는데, 법, 제도 개정으로 풀지 않으면 재개발 문제는 언제 어디서나 반복될 뿐이야.""<두 개의 문> 2번 봤다... 더 많이 봤으면"
4년간의 투쟁 과정에서 최씨에겐 '동지'들이 생겼다. 지난해 8월 전국철거민연합에 가입하면서 연대하려고 찾아오는 이들이 늘었다. 지난달 29일에는 '생명평화 바람개비 자전거순례단'이 찾아와 무박2일 간담회를 가졌다. 그들은 용산뿐만 아니라 강정, 쌍용차 등 국가 권력에 의해 피해 입은 사람들을 위해 전국을 자전거로 일주하는 중이었다.
고마웠다. 이 더운 날씨에도 자전거로 전국을 누빈다니. 자기 일도 아닌데 그들은 그렇게 열심히였다. 그들과 꼬박 밤새 이야기도 나누었다. 최씨는 그들에게서 한 여름을 버틸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여기저기서 용산3구역에 있는 자신을 걱정하는 전화가 온다. 제2의 용산참사가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다. 같은 자동차용품 대리점을 했던 지인은 '내일이라도 당장 와서 같이 일을 하자'고 권유한다. 고맙다고 웃으며 넘겼지만 엄두가 안 났다. 최씨는 "생존권 문제를 풀지 않고서는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최씨는 용산참사를 다룬 영화 <두개의 문>(김일란·홍지유 감독)을 두 번 봤다. 세입자 대책위 사람들과 함께 분노를 느꼈다. 영화를 보면서 자신에게 희망을 찾으려 했는지는 모른다. 개봉 8일 만에 누적관객수가 만5000명이나 됐다는데, 최씨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봐줬으면 하는 바람뿐"이라고 말했다.
"남은 세입자들 때문에 수백억 피해" [전화인터뷰] 용산3구역 재개발 조합 관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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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를 비롯한 세입자들의 주장에 용산3구역 재개발 조합측 관계자는 "5, 6배 높은 보상비를 요구한다"며 "세입자들의 점유로 개발이 늦어져 수백 억의 피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재개발 조합측 관계자는 3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법적으로 보면 우리는 할 일을 다 한 것"며 "이제는 (세입자들이) 명도를 이전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용산3구역에는 앞으로 어떤 건물이 올라가게 되나? "연건평 6만2천평의 주상복합 아파트를 짓는다. 지하 9층 지상40층짜리다. 지하 1, 2층, 지상 1, 2층 상가, 3, 4층은 사무실, 5층부터 19층까지는 오피스텔, 20층은 커뮤니티 시설이 들어선다. 나머지부터 40층까지는 주거용 아파트다."
- 남은 세입자들과의 협상은 어떻게 진행 중인지? "2009년 4월에 서울시 지방토지수용위원회에서 감정평가를 하고 세입자와 협상을 해 왔다. 법적으로 보면 우리는 할 일을 다 한 것이다. 그분들은 비워 주지를 않는다. 그 사이 4년 가까이 임대료도 내지 않고 있다. 이제는 (세입자들이)명도를 이전하는 게 맞다."
- 이주대책을 세워달라는 세입자들과 조합 사이의 차이는 어느정도 인가? "만약 법원에서 1억 원을 보상하라고 조정했으면 세입자들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다른 데 다 차리려면 6억이 든다고 말한다. 5, 6배 높게 달라는데 말이 되나? 우리나라는 자본주의다. 건물주들의 재산권 행사도 중요하다. 지금 세입자들이 3년째 점유하고 있어서 개발을 못하고 있다. 수백억의 피해를 보고 있다."
- 서울서부지법에서 지난달 30일까지 비워달라고 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우리는 협상을 계속하고 싶은데 저쪽에서 거부해왔다. 계속 그러면 우리 쪽에서는 방법이 없는 거 아니겠나?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법대로 집행하는 것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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