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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종류의 길이 나란히 지나가는 곳

눌의산과 그 앞으로 펼쳐진 도로, 하천, 철도
 눌의산과 그 앞으로 펼쳐진 도로, 하천, 철도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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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령역을 나온 우리는 관리를 지나 사부리 쪽으로 향한다. 관리는 조선시대 역관(驛館)이 있던 곳이어서 그 이름이 생겨났다고 한다. 길 주변 논에는 가뭄 속에서도 벼에 장잎이 나서 잘 자라고 있다. 또 밭에는 감과 포도의 주산지답게 포도농원이 많이 보인다. 올해는 날이 가물어 과수농가에 어려움이 많다. 좋은 과실을 얻으려면 성장기에 물이 풍부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농부들의 마음고생이 심하다.

추풍령면은 산골임에도 불구하고 농토가 꽤나 넓어 옛날부터 살기 좋은 고장이었다고 한다. 논과 밭 사이로 난 철길로는 무궁화호 열차가 지나간다. 추풍령 면소재지를 빠져 나오면서 왼쪽으로 눌의산(745m)이 보인다. 눌의산에는 봉수대가 있어 영남으로부터 충청으로 변고를 알리는 역할을 했다. 우리는 사부리에서 4번국도와 만나 국도 옆 구 도로를  따라 간다.

사부리 버스정류장
 사부리 버스정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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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로는 2차선으로 과거 4번 국도였으나, 4차선 4번 국도가 새로 나면서 지방도로 전락하고 말았다. 4번 국도 남쪽으로는 경부선 철도가 지나가고, 그 너머로는 경부 고속국도가 지나간다. 그러므로 서울과 부산을 잇는 중요한 동맥 세 개가 이곳 사부리를 나란히 지나간다. 더욱이 작점리에서 발원하는 추풍령천이 이들 옆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도로와 철도 그리고 물길이 형제처럼 지나간다.

사부리(沙夫里)는 추풍령 면소재지에서 황간 방향으로 3㎞ 지점에 있으며, 하천을 따라 모래가 많아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원사부, 괴정, 황보, 금보의 네 마을로 이루어져 있으며, 62가구에 131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사부리는 남쪽의 눌의산과 북쪽의 봉대산 사이에 위치한다.  

의병장 삼괴당 장지현 장군 이야기

의병장 장지현 사당 충절사
 의병장 장지현 사당 충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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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리 4번 국도변에는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장지현 장군 사당이 있다. 사당 이름은 충절사(忠節祠)이며, 사당 안에는 위패가 모셔져 있고, 사당 옆으로 순절비가 세워져 있다. 비문은 1804년(순조 4년) 이조참의 송환기가 지었고, 후손들이 비를 세웠다. 비의 앞면에는 사헌부 감찰 증 병조참의 삼괴당 장공순절비라 썼고, 뒷면에는 장지현 공의 삶과 의병장으로서의 업적이 적혀 있다.

그 내용에 따르면, 의병장 장지현은 자가 명숙이고 호가 삼괴당이다. 1590년(선조 23년) 전라병사 신립의 부장이 되었다가 1591년 사헌부 감찰이 되었다. 그러나 어떤 연유에서인지 감찰직을 사임하고 황간으로 낙향해 후학을 가르쳤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공은 충청도 관찰사 윤선각의 휘하로 들어가 왜군과 맞서 싸우다 5월 2일 오룡동에서 순절하였다.

삼괴당 순절비
 삼괴당 순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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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현은 부모로부터 전수받은 충의보국(忠義報國)과 청백전가(淸白傳家)의 정신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 1592년 7월 25일 비변사는 적과 싸우다 순절한 공의 의열(義烈)을 기려 정려(旌閭)를 내리고 병조참의를 증직한다. 정려는 처음 공의 순절지인 오룡동에 세워졌다가, 1980년 길에서 가까운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 그리고 충절사라는 사당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포도밭에 물을 흠뻑 주고

사부리를 지나면 길은 계룡리로 이어진다. 계룡리에서 우리는 추풍령천을 따라 다시 농로로 들어선다. 밭의 고추도 더위와 가뭄에 고생이 많다. 다른 한쪽으로는 포도밭이 있는데, 고랑 사이로 물을 흠뻑 준 흔적이 보인다. 지금이 한창 열매를 키우는 때라 물이 부족하면 열매가 작아지기 때문이란다. 포도나무에는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포도농장
 포도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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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산쪽으로는 '세계로 수출하는 영동 포도'라 쓴 큰 간판도 보인다. 영동은 역시 감과 포도의 고장이고 국악의 고장이다. 우리는 이제 추풍령천에 놓인 계룡교를 건너서 철길 가까이로 간다. 철길은 상행선과 하행선으로 나뉘어져 저쪽 산속 터널로 이어진다. 그러나 예전에는 이 철로가 터널 없이 산을 돌아 우회했었다. 그 철로가 이제는 터널을 뚫어 직선화되었다.

우리는 옛철로를 체험하기 위해 일부러 폐철도를 따라간다. 그것은 없어진 철도를 확인하는 뜻도 있고, 옛 기찻길의 향수를 느껴보려는 의미도 있다. 폐철도 위로는 잡초가 무성하고, 철길 가장자리로는 조록 싸리를 인위적으로 심어놓았다. 철로가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허리를 지나 어깨까지 올라오는 싸리나무를 헤치고 우리는 앞으로 나간다. 조록 싸리 특유의 냄새가 코를 찌른다.    

옛 기찻길에 세워진 살벌한 경고문

한국철도 시설공단의 경고문
 한국철도 시설공단의 경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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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철로를 빠져 나갈 즈음 조금은 위협적인 경고문이 보인다. 철도부지는 한국철도시설공단에서 관리하는 국유재산이므로 사용하거나 훼손하지 말라는 경고다. 그 내용은 3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노란 바탕에 검고 빨간 글씨로 써 눈에 잘 띄게 만들었다.

1. 철도부지를 허가 또는 승인 없이 무단 사용할 경우 국유재산법 제82조 등 관련 법률에 의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2. 불법폐기물 등을 투기할 경우 폐기물관리법 제63조에 따라 처벌된다.
3. 국유재산에 무단 침범하거나, 사용 또는 점용하는 경우 그리고 토지를 훼손하는 경우에도 민형사상 처벌을 받게 된다.

산길을 돌아가면서 행정구역이 추풍령면에서 황간면으로 바뀐다. 저 멀리 황간의 주산 월류봉이 보인다. 월류봉은 초강천과 어우러져 영동 제일의 경관을 이루는 곳이다. 들길을 따라 가다 우리는 다시 추풍령천을 건넌다. 하천 옆으로는 4번국도가 고가도로 형태로 지나간다. 고가 밑을 지나니 마을 어귀에 느티나무가 아닌 플라타나스가 우리를 맞이한다. 애교리 마을이다. 우리는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한다.

추풍령천은 애교리에서 초강천에 합류

애교리 마을유래비
 애교리 마을유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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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교리(艾橋里)의 옛 이름은 쑥다리다. 들판에 쑥이 많고 마을 앞으로 흐르는 추풍령천에 돌다리가 있어 그런 이름이 붙었다. 이것을 한자로 표현하다 보니 애교리가 된 것이다. 이 마을에는 김령김씨가 집성촌을 이루어 살았으나 현재는 집성촌이라는 개념이 상당부분 희석되었다. 애교리에는 43가구에 10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애교리를 지나 우리는 다시 추풍령천을 따라 서쪽 황간 방향으로 계속 걸어간다. 추풍령천은 수량도 많고 수질이 깨끗해 보인다. 하상에는 바위와 수초도 풍부해 생태하천으로의 조건을 갖췄다. 추풍령천은 소계리에서 초강천에 합류되어 황간면을 끼고 돌아 흐른다. 이제 우리는 다시 4번 국도로 들어선다. 이곳 초강천에 놓인 황간교를 건너면 황간면 소재지가 펼쳐진다.

추풍령천의 생태
 추풍령천의 생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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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는 황간교를 건너지 않고 초강천변 도로를 따라 구교리로 들어선다. 구교리(舊校里)는 옛날에 향교가 있던 마을이다. 그래서 향교골이라 불리기도 했다. 향교는 구교리 서쪽으로 우뚝 솟은 산자락 위에 세워져 있다. 옛날에는 구교리에서 향교로 올라갈 수 있었으나 지금은 향교로 올라가는 길이 남성리 쪽으로 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산자락을 돌아 계단을 타고 향교를 찾아간다.


태그:#추풍령천, #의병장 장지현 사당, #포도의 고장, #폐철로, #애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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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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