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는 5일 파나마시티에서 열린 국제포경위원회(IWC) 연례회의에서 '과학연구용' 포경 계획을 IWC위원회에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제사회는 지난 1986년부터 협약에 따라 멸종 위기에 놓인 고래 12종에 대한 상업적 포경 활동을 유예(모라토리움)하기로 했다. 한국은 1986년부터 IWC가 포경을 유예한 12종을 포함한 모든 고래에 대한 포경을 금지해왔다. 따라서 이번 발표는 사실상 20년 넘게 금지했던 포경을 재개한다는 공식 선언이다.
일본은 과학연구용 포경을 허용하는 협약의 허점을 이용해 포경활동을 계속했다. 매년 1천 마리를 잡고 있으며, 이중에는 IWC의 협약부표에 등재된 포획금지종 밍크고래도 포함되어 있다.
1985년에서 2009년까지 일본이 포획한 총 고래수는 1만1389마리로 이 중 밍크고래는 1만443마리였다. 우리나라는 포경이 금지되어 있음에도 사실상 혼획에 의한 고래의 상업적 유통은 합법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 탓에 밍크고래와 혹등고래 등 12~15종의 고래가 매년 혼획되어 왔다. 현재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혼획 고래는 매년 1000여 마리 정도이며 밍크고래는 60~70여 마리 잡히고 있다.
정부의 이번 발표는 새로운 정책 방향이 아니다. 정부의 포경재개 의지는 그동안 언론을 통해 종종 표출됐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2009년 5월 19일 '신개념 수산발전 10대 프로젝트'를 발표했는데, 이 안에는 '고래자원의 효율적 이용 방안'이라는 항목이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는 "포획된 고래의 투명한 공급기반을 구축하는 등 고래 고기 식(食)문화 유지 방안을 강구하겠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또한 정부는 2009년 4월 22일~23일 동경에서 열린 '고래류 지속적 이용에 관한 대표자회의'에 참석해 "고래류가 전통적으로 식용으로 활용되는 다른 해양생물자원 또는 육상생물자원과 다르지 않다"며 과학적 이용을 명목으로 한 포경 뜻을 사실상 밝혔다.
또한 정부는 당시 "지속가능한 연안지역사회, 지속가능한 생계, 문화적 전통의 보전, 식량안보, 빈곤의 감소에 기여하기 위해 풍부한 고래자원의 지속적 이용 원칙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고래를 식량자원으로 보고 있으며, 사실상 상업적 포획과 유통을 지지한다는 견해다.
표면적으로 과학연구, 본질은 고래사냥지금까지 과학적 연구를 명목으로 포경을 하는 나라는 일본이 유일했다. 일본은 추적기 등을 이용해 살아있는 상태에서 고래 연구를 할 수 있음에도, 고래를 죽여 극히 일부분의 시료만 채취한 후 99% 이상을 고기로 유통시켰다. 이 탓에 국제사회는 "고래를 상업적으로 이용한다"고 일본을 비난해왔다.
과학자들은 DNA 샘플링과 원격 모니터링의 시대에 고래를 죽여 연구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다. IFAW(세계야생동물보호기금. International fund for animal welfare)의 자료에 따르면 샘플은 고래의 허물, 고래기름, 분변으로부터 수집할 수 있으며, 일부 과학자들은 고래가 숨구멍으로 숨을 내쉴 때 샘플을 채집하여 병원균 탐지에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육안 관찰과 각 개체의 사진, 음향 조사 등의 연구 기술로도 고래 개체수와 추세를 알아낼 수 있다고 한다.
정부와 울산시의 포경 허용 방침에 대해 그린피스 국제본부는 2009년 5월 20일 성명을 내고 "현재 고래 개체수가 회복되고 있다는 과학적인 근거는 없는 상황"이라며 "(고래가) 어류 자원을 고갈시킨다는 주장은 딱다구리가 산림자원을 훼손한다는 말과 같다. 고래가 어족 자원을 고갈시킨다는 근거를 제시하라"고 밝혔다.
그간 한국에서 과학적 명분의 고래 포획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86년에만 과학연구 목적으로 밍크고래 69마리를 잡았으며, 과학적 용도를 소명할 정보는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돼 있다.
2010년 개정된 고래자원의 보전과 관리에 관한 고시 개정안에도 고래류 포획의 예외조항에 과학적 조사를 위한 포획과 교육용, 전시용, 공연용 목적을 위한 포획이 명시되어 있다. 문제는 과학적 연구라는 용어의 애매모호성이다. 고시의 5조에 따라 사업계획서 등 간단한 서류를 제출하고 고래 포획 허가를 받는다고 해도 연구의 목적을 검증할 수 없다. 또한 포획한 고래를 과학적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아도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다면 오히려 다른 목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
정부는 고래포획 금지 조치 이후 우리나라 연근해 수역의 고래가 급증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없다.
정부는 5일 포경재개 허가 보도에 따른 비난 여론이 빗발치자 설명자료를 홈페이지에 올렸다. 정부 자료의 한 부분을 보자.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 모라토리움 시행 이후 국내 고래 자원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국내 어업인들은 고래에 의한 피해가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다며 '솎음포경' 등의 대책 마련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2004년부터 연근해에 분포한 고래자원의 조사 평가 실시 중에 있으나 대부분 목시조사(눈으로 관측)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으로 어업 피해에 대한 조사에는 한계가 있는 실정입니다."사실상 고래 개체수가 늘어났다는 주장은 일부 어업인들의 주장이고, 정부 역시 이를 뒷받침할 어떤 근거도 제시하지 못함을 시인한 것이다. 그린피스는 어족 감소는 고래가 원인이 아니라 무분별한 남획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 논리에 따르면 개체수를 측정하고 피해 현황을 조사하기 위해 고래를 죽여야 한다. 가장 정확한 개체수 조사는 바다에 사는 고래를 모두 죽이면 알 수 있으니까.
1946년 포경협정의 '과학적 목적으로 포경을 허용하는 방침' 자체는 사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사실상 과학을 가장한 상업적 포경이 수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포경을 하는 국가의 포획 허용치는 국제포경협회가 아닌 해당 국가 스스로 결정하고 있다. 일본은 자신들의 과학적 포경 허용치를 외부 검토 없이 스스로 승인하고 있다. 또한 과학적으로 허용된 포경은 고래 고기의 소비를 요구한다. 사실상 과학적 포경은 고래 고기 판매 면허보다 조금 나은 것에 불과하다.
고래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동물에 속한다. 즉 고래를 잡아 죽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포경업자들은 고래를 포획하여 끌어내기 위해 폭파작살을 사용하고, 고래를 죽이기 위해 고출력 소총을 이용한다. 고래는 일단 작살에 맞기 직전까지 탈진할 지경에 이르도록 쫓기게 된다. 폭파작살은 대개 치명적이지 않아 일부 고래는 죽기 전까지 몇 번이나 작살에 맞는다. 작살에 맞아 상처를 입은 고래들은 죽음에 이를 때까지 더 많은 작살 혹은 고출력 소총에 맞아 포경선으로 끌려 나온다. 꼬리쪽에 작살을 맞은 고래는 살아 있는 채로 포경선뱃머리에 들어 올려지게 되고, 결국 머리가 물에 강제로 잠긴 채 질식사하게 된다.
고래는 스스로 호흡과 심박동을 느리게 조절할 수 있어 의식이 있더라도 죽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즉 업자들은 고래가 죽었다고 판단하지만 실제로 깊은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자료출처 IFAW(International fund for animal welfare)>
지역 이해 넘어 동물복지·환경 생각해야울산환경연합이 2009년 6월 17일에서 18일까지 2일간 전국 만19세 이상의 남녀 7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67.9%가 고래잡이를 반대하고 고래를 보호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울산환경운동연합 오영애 정책실장은 인터뷰를 통해 "고래를 어업자원으로만 보는 농림수산식품부 어업정책과에서 고래 관련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설명했다.
그간 포경재개를 끊임없이 주장해온 울산 남구청장은 5일, 포경 재개 정부 발표를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통해 "현재 동해안에는 고래의 개체수가 포경 금지 이전의 개체수로 회복되었고 이는 동해안 어장 생태계의 불균형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조차 정확한 고래 개체수를 모른다는 마당에 구청장의 이런 발언이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주장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오히려 "국제포경위원회의 결정 때문에 우리 고유의 식습관과 전통을 포기해야 했다"는 발언은 지역 수산업계의 이해만을 대변할 뿐이다.
울산환경운동연합은 "울산 남구 등 일부 자치단체들이 고래 해체장을 문화 복구라는 이름으로 추진하고, 고래 식문화 활성화를 위해 고래 고기 요리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면서 "이번 정부 발표는 한국 내의 고래 고기 시장을 확대하겠다는 일부 수산업계의 왜곡된 요구를 반영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고래는 2~3년에 한 마리씩 새끼를 낳는, 매우 긴 생식주기를 가진 포유동물이다. 따라서 포획을 쉽게 허가하면 멸종 위기에 처할 위험이 크다. 사냥방식 또한 잔혹하다. 과학적 명목으로 포경을 계속하고 있는 일본은 이미 국제적으로 비난받고 있다.
영원한 산업이란 없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정책의 방향을 잡고 소외되는 지역민의 생계대책을 세우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국내외적 비난이 쇄도하는 가운데, 정부의 정책이 동물복지와 환경이라는 미래적 가치를 담고 중심 잡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IFAW의 자료번역에 도움을 주신 이지영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