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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6개월에 처음 어린이집에 간 아들. 영유아도 발달단계에 따른 교육지원이 필요하다.
 생후 6개월에 처음 어린이집에 간 아들. 영유아도 발달단계에 따른 교육지원이 필요하다.
ⓒ 신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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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아이를 낳자마자 서울에서 친정이 있는 경기도로 이사를 왔다. 출산휴가 3개월이 끝난 후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 막막한 상태에서 마지막 보루는 어쩔 수 없이 친정이었다. 당시 친정 아버지는 몇 달 전에 큰 수술을 받고 요양 중이었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남편 직장 때문에 주말부부로 지내던 상황에서 내 직장은 어린이집 시간에 딱딱 맞춰 끝나는 곳도 아니었다. 집에 와서 아이를 봐주는 육아도우미에 맡기기엔 우리 부부의 수입이 턱없이 부족했다.
아이를 낳은 기쁨에 취하기도 전에 어떻게 키울지가 깜깜한 현실의 딜레마다. 정부가 말로는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고 하면서도 내놓는 대책들을 보면 별로 심각하게 생각 안 하는 것 같다.

출산지원금 몇만 원 더 준다고, 아이 키우는 여성들의 근무시간만 몇 시간 줄인다고 해결 될 문제가 아니다. 아이 키우는 데는 훨씬 많은 비용이 들어가고 야근이 보편화된 한국의 직장문화에서 워킹맘이 일을 덜하면 누군가의 퇴근시간은 더 늦어질 수밖에 없다.

나와 코드가 맞는 인사는 아니지만 지난해 12월,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4년 만에 처음 유치원을 방문해 "보육에 지원하는 것은 복지 차원만이 아니라 교육의 차원이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말했단다.

그 바로 전 서울시장 재선거에까지 이르게 했던 무상급식 논쟁에 대해 '복지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던 이 대통령이 단 몇달 만에 0~5세 무상보육과 교육은 '포퓰리즘'이 아니라 '투자'라는 획기적인 사고의 전환을 한 것이다. 그 속내야 모르겠지만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경우는 정말 흔히 않았다.

0~2세 무상보육, 시행 4개월여만에 '예산 부족' 문제 부딪혀

문제는 방식이다.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이기에만 바빠 사업 목표만 제시하고 예산이나 구체적인 사업추진 계획 등을 꼼꼼히 챙기는 일을 게을리했다. 이 대통령이 그렇게 강조했던 기업가정신의 결여다. 그 탓에 0~2세 무상보육은 전면 시행 4개월여 만에 '예산 부족' 문제에 부딪히고, 기획재정부 차관이 "정부가 재벌 손자에게까지 보육료를 대줘야 하느냐"며 공개적으로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는 모습까지 보였다.

보육 예산 부족사태를 기다렸다는 듯이 보수 언론과 일부 정치인들 사이에서 '무상보육 전면 재검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가정보육 중심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도 들린다. 직장생활도 안 하면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엄마들은 졸지에 국민세금을 좀먹는 얌체 취급을 당하고 있다. 미래 세대의 보육·교육을 국가가 책임진다는 최초의 대의는 어디로 갔는지 안 보인다.

출산휴가 때 내 소원 중 하나는 맘 편하게 샤워 한 번 하는 거였다. 아이가 잘 때 욕실에 들어가서도 건너편 방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후다닥 씻고 나오기 바빴다. 날마다 온종일 아이에게 집중한다는 건 엄청난 에너지 소진과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엄마에게도 숨통을 트일 시간이 필요한 게다. 그래서 나는 가정보육을 하는 엄마들을 만나면 아이를 꼭 어린이집 반일반이라도 보내 자기 시간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엄마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이도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이다. 신문 사회면에서 어린이집 사고 뉴스를 볼 때마다 흠칫 놀라는 만큼 심심찮게 집에서 위험에 방치된 아이들의 기사도 보게 된다. 가정이란 폐쇄된 공간에 갇혀 사회로 나오지 못하는 아이들은 더 많을지도 모른다.

육아 전문가가 아니어서 현재처럼 보육료 지원을 어린이집으로 일원화하는 게 최상책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영·유아들도 발달시기에 맞게 전문적인 교육지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우리 아이는 생후 6개월부터 어린이집에 다녔다. 아이가 기저귀를 떼고 말문을 트는 데 어린이집 선생님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또래들과 어울려 노래, 놀이들을 배우면서 아이는 자연스럽게 사회성을 익혔다.

아들이 어린이집에서 요리시간에 만든 과일꼬치를 들고 있다.
 아들이 어린이집에서 요리시간에 만든 과일꼬치를 들고 있다.
ⓒ 신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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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보육의 경우, 엄마들이 개별적으로 아이의 보육과정을 챙겨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비용도 많이 든다.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한 지인은 아이가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몇 개 수업을 받는데 어린이집 비용만큼 쓰다가 최근에 아예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했다. 영유아들은 부모의 따뜻한 보살핌만큼이나 다양한 자극과 경험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다채로운 경험을 하기엔 정부에서 주는 양육수당이 너무 초라하다. 엄마들은 다양한 보육서비스의 개발에 목마르다.

아동복지 예산, 복지부 예산의 0.56%에 불과

현재의 무상보육 중단 논란은 예산 부족이 아닌 의지의 문제다. 박원석 통합진보당 의원이 3일 '아동복지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밝힌 아동복지 예산은 전체 국가 예산도 아닌, 복지부 전체 예산의 0.56%에 불과했다.

왜 필요한지조차 이해 안 되는 4대강사업에 들어간 예산이 22조 원이고, 차세대 전투기 사업엔 8조3천억 원을 쓴단다. 그런데 현재 부족하다는 무상보육 예산은 5000~6000억 원이다. 이용섭 민주통합당 정책위의장은 2조5천억 원만 투입하면 0~5세아 모든 계층에 대해 무상보육을 실시할 수 있다고 했다. 아무리 숫자에 약해도 '무상보육 대란'으로 몰고 갈 문제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제는 엄마들을 얌체로 몰아가는 낮은 수를 쓰는 대신 국가가 아이들의 보육·교육을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높은 비전을 보여주는 정치인을 보고 싶다. 양육은 엄마의 몫으로 규정하는 구시대에서 벗어나 아빠들이 육아휴직을 쓰고 빨리 퇴근해 아이들과 놀아주는 게 아주 자연스러운 새시대로 넘어가길 기대한다. 아직 그런 시대는 오지 않았고, 나는 오늘도 저녁에 어린이집에서 누가 애를 찾을지에 대해 남편과 심도 깊은 카카오톡 대화를 나누고 있다.


태그:#무상보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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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엔 이야기가 있다는 믿음으로 삶의 이야기를 찾아 기록하는 기록자. 스키마언어교육연구소 연구원으로 아이들과 즐겁게 책을 읽고 글쓰는 법도 찾고 있다. 제21회 전태일문학상 생활/기록문 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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