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단 한순간만 살아서 내게 와 주세요. 악마도 내 이 슬픔을 안다면 울지 않을 수 없으리라. 나, 한 사람을 사랑한 죄밖에 없는데…."1975년 5월 19일 강순희 여사가 일기장에 남긴 글의 한 대목이다. 그는 박정희 군사정권 때 자행된 '사법살인'인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희생자 우홍선 선생의 부인으로, 남편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한 달이 지나 쓴 것이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 희생자 가족들의 일기나 메모, 편지 등 개인적인 심정을 남긴 기록들을 포함해, 희생자 8명을 추모하고 이 땅의 민주주의와 평화를 염원하는 전시회가 열린다. 제목은 '꽃이 되어 바람이 되어'. (재)4․9통일평화재단과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는 오는 14일부터 8월 26일까지 부산 민주공원에서 전시회를 연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통혁당 사건'․'남민전 사건'과 더불어 박정희 유신정권의 대표적인 공안사건이다. 위기에 몰린 독재정권과 탄압으로 희생된 이른바 '사법살인' 사건이다. '인혁당 사건'(제1차)은 1964년 8월 14일에 발생했다.
유신헌법(1972년 10월) 강행 이후 학생과 재야인사들을 구속과 고문하여 감옥에 가두기 시작하던 때 '인혁당 재건위 사건'(1974년)이 일어났다. 대법원은 1975년 4월 8일 8명에 대해 사형을 선고했고, 판결이 내려진 지 불과 18시간만에 사형이 집행된 것이다.
그 8명은 서도원(당시 53. 전 대구매일신문 기자), 김용원(41. 경기여고 교사), 이수병(40. 일어학원 강사), 우홍선(46. 한국골든스템프사 상무), 송상진(48. 양봉업), 여정남(32. 전 경북대 학생회장), 하재완(44. 건축업), 도예종(52. 삼화토건 회장)이다.
국제법학자협회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 희생자들의 사형이 집행된 날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하기도 했다. 2002년 9월 12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이 사건이 중앙정보부의 조작이라는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박정희정권은 희생자 8명을 간첩으로 낙인 찍고, 가족들은 간첩의 부모와 아내, 자식, 형제, 친척으로 만들어 사회적으로 매장하고자 했던 것이다. 4․9통일평화재단은 "희생자들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다"며 "부정한 권력이 어느 사건을 통해 악의적으로 조작한 이미지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이번 전시는 독재자 박정희정권에 의해 조작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여덟 희생자들에게 강압적으로 덧씌워진 부정적인 이미지를 해체하고, 그 분들의 인간적 삶과 민주주의를 위한 노력들을 다시 원래의 자리로 복원하고자 기획된 전시"라고 밝혔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올 봄 새로 제작한 8명의 초상화와 이들이 살아생전 가족들과 함께 찍은 사진, 가족과 지인들이 남긴 기록들이 소개된다. 또 당시 희생자들의 구명을 위해 애를 쓰신 고 김수환 추기경의 탄원서, 당시 대법원에서 사형을 유일하게 반대했던 이일규 판사의 '소수의견서' 등의 사료들도 함께 전시된다.
민족미술인협회 서울지회 소속 작자들이 새로 제작한 그림과 설치작품들이 먼저 가신 분들의 넋을 위로하며 선보인다.
4․9통일평화재단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시절 군복을 입고 있는 '정치군인 박정희'와 군복을 벗고 양복으로 갈아입은 후 공포정치를 자행한 '독재자 박정희'의 사진들 사이로 이른바 '인혁당 재건위 사건'과 관련된 박근혜 의원의 역사 인식을 엿 볼 수 있는 발언들을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