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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연예인인줄 알았다. 검정색 배기바지에 깃 바짝 올린 하늘색 자켓, 단추 3개 풀린 셔츠, 그리고 넥타이 대신 행거칩을 멋들어지게 꽂은 이 남자. 한 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포스와 스타일이 느껴지는데…. 풋, 나도 모르게 웃었다. 다름 아닌 뒤에 걸린 그림 때문.

누가 보든 안 보든 시원하게 판 코딱지를 세상에 먹는다. 누가? 그림의 주인공, 홍승택(미룡동·31)씨가. 아니, 생긴 것하고 다르게 이 남자 토속적인 매력(?)이 감지된다. 점점 더 그와 그의 작품이 궁금해지는 건 나뿐일까. 그에 대해 낱낱이 파헤쳐 봤다.

코딱지 홍선생이라는 불리는 홍승택씨. 그 이유는 작품만봐도 알 수 있지 않을까.
▲ 젊은 예술가, 홍승택씨 코딱지 홍선생이라는 불리는 홍승택씨. 그 이유는 작품만봐도 알 수 있지 않을까.
ⓒ 박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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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7일 아침, 그를 만나러 작업실이 있다는 군산대학교 인근 한 원룸으로 향했다. 자동차 소리를 듣고 마중 나온 그는 지하 작업실로 안내했다.

"제가 사는 곳은 3층인데요. 원룸 주인아저씨의 배려로 지하에 있는 방도 작업실로 쓰고 있어요. 누추하지만 들어오세요."

가지런히 놓여 진 실내화를 신고 들어섰다. 8평 남짓 내부를 훑어봤다. 순백의 커튼과 빨간색 천이 드리워진 소파가 인상적이다. 먼지 하나 없이 잘 정돈된 작업실은 지금껏 만났던 작업실과는 엄연히 달랐다.

"제가 주변 환경이 지저분하면 무언가에 집중하지 못하는 성격이에요. 쫌, 피곤한 스타일이죠?"

예술가는 뭔가 달라도 다르다는데 첫 대면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원룸에 사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듯 그는 이곳 사람이 아니다. 멀리 제주도가 고향이다. 섬에서 육지로 오게 된 계기는 미대를 가기 위해서다. 어렸을 때부터 그리는 재주가 남달랐던 그는 이곳 군산까지 오게 됐다. 군산에 정착한지도 횟수로 11년.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치고 올해 박사과정 준비 중이다. 일 년에 두세 번 찾아오신다는 어머니가 때마침 방문해 아들의 인터뷰를 반겼다.

"승택이가 세 살 때부터 그림을 그렸을 거예요. 오백 원짜리 스케치북 하나 사주면 그날 하루만에 다 그렸죠. 관찰력이나 표현력이 남달라 그림, 글짓기 등 상을 수없이 많이 받았어요. 아마 엄마 재주를 물려받았나 봐요. 제가 미대를 가려고 했거든요."

멀리 제주도에서 아들을 보기 위해 찾은 어머니. 재주 많은 아들을 둔 어머니답게 포스가 예사롭지 않다.
▲ 홍승택씨의 어머니 정영숙씨. 멀리 제주도에서 아들을 보기 위해 찾은 어머니. 재주 많은 아들을 둔 어머니답게 포스가 예사롭지 않다.
ⓒ 박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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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만큼 범상치 않은 기운의 어머니 정영숙(60)씨가 아들 자랑에 나섰다. 군인 출신인 그녀는 외동아들 승택씨를 천생 예술가로 키웠다. 그리고 그런 아들의 작품을 가장 냉정하게 비판하면서도 가장 넉넉하게 지지하는 후원자다.

"승택이가 아빠보다 절 많이 닮았더라고요. 그림 솜씨는 물론이고 깔끔하고 꼼꼼한 성격. 그리고 제가 25년째 운동을 빼놓지 않고 있는데 아들 녀석도 저만큼 운동을 좋아하더라고요." 

그 어머니의 그 아들이라 했던가. 이 남자,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운동 2시간은 필수란다. 게다가 8년 넘게 타고 다니는 차는 거의 새 차에 가깝다. 제 몸 닦듯 매일 닦는다. 꼼꼼한 성격에 메모습관은 기본이고 미술학원에서 지각없이 아이들을 가르친 지도 무려 6년째다. 무엇하나 허투루 하는 것 없이 자기관리가 완벽하고 꼼꼼한 성격의 소유자다. 이런 사람이 작품은… 인물은 못생겼고, 행동은 더러우며, 상황은 우스꽝스럽다.

작품명 비오는 날 빨간우산과 막걸리
▲ 홍승택 작품 작품명 비오는 날 빨간우산과 막걸리
ⓒ 박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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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명 헉!
▲ 홍승택 작품 작품명 헉!
ⓒ 박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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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명 헉!2
▲ 홍승택 작품 작품명 헉!2
ⓒ 박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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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앞에서 멋진 척하고, 있는 척하지만 제 이면을 관찰해 보면 그렇지 않아요. 하품하고, 이 쑤시고, 코 파고… 그러면서 시원한 무언가를 느끼고. 노골적인 자화상을 그리면서부터 그림은 제 일상의 탈출구가 됐습니다."

그가 처음부터 자화상을 그린 건 아니다. 유년시절엔 풍경화를 주로 그렸고, 대학에서는 서양화를 전공했다. 초기 작품은 뭔가 모르게 심오하고 난해했다. 그러면서 자화상을 그리게 된 건 스스로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솔직하지 않으면서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허무맹랑한 자신을 발견하고나서부터다.

"주변사람들이 그래요. '팔리는 그림을 그려야 되지 않느냐.' 저도 마음먹고 그리면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겠죠.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림에서까지 저의 본 모습을 숨기면 숨 막힐 것 같더라고요. 제 그림은 누구나 이해하기 쉽고 어렵지 않길 원해요. 엉뚱해도 되고, 웃어도 되고, 통쾌해 해도 됩니다. 그림으로나마 사람들에게 편하게 다가가고 싶거든요."

지금껏 수많은 전시회에 참여하면서 두각을 드러낸 승택씨. 코딱지 파는 그림이 너무 강렬해서 일까. 그는 그곳에서 '코딱지 홍 선생'으로 불린다. 이런 별칭이 그도 처음엔 거북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편하다. 그림만 보면 자신을 알아봐주는 사람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관심을 즐기는 31살 승택씨에겐 유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훗날, 교단에 설 자신을 그리면 오늘도 지하 작업실의 불을 밝힌 승택씨. 누군가에게 유쾌, 상쾌, 통쾌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 자신과의 고단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그림을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자, 일상의 탈출구라 말하는 승택씨. 41살, 51살, 61살… 그의 그림이 기대되는 건, 이런 솔직함과 진실함이 담겨서이다. 아름다운 청년, 승택씨의 진솔한 그림이야기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태그:#홍승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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