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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 타기 행사에서 마포대교를 횡단하고 있는 '발바리'와 '자출사' 회원들. 저마다 취향에 따라 자전거 종류도 제각각이다.
 자전거 타기 행사에서 마포대교를 횡단하고 있는 '발바리'와 '자출사' 회원들. 저마다 취향에 따라 자전거 종류도 제각각이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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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안전부가 20km/h 이상 과속, 음주운전, 안전모 미착용 등 5대 자전거 안전수칙 마련 캠페인을 벌인다고 발표했다. 더불어 관련 내용을 어길 경우 제재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관련 법을 개정하겠다고 덧붙였다. 언론은 받아쓰기 바쁘고, 자전거를 타는 이들은 촉각을 곤두세우며 말을 옮기기 바쁘다. 각종 포털사이트와 관련 게시판은 이에 대한 의견으로 떠들썩하다.

처음 이에 대한 기사가 났을 때 사실 시큰둥했다. "또야"라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번 일은 처음이 아니다. 2008년 9월 경찰청이 자전거 음주운전 처벌 규정을 마련한다고 발표했다. 물론 그때도 지금처럼 시끄러웠다. 분위기만 보면 당장 법안을 마련할 것 같았지만 조용히 법안은 어디엔가 묻혔다.

2009년 12월엔 국토해양부가 자전거 교통안전종합계획을 발표했다. 역시 자전거 음주운전 규제 법안이 포함돼 있었고, 반사등 의무 설치도 법안에 들어 있었다. 역시 용두사미였다.

매년 발표 주체만 다를 뿐 내용은 비슷했다. 자전거 음주운전과 헬멧 착용은 단골손님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발표 주체가 행정안전부라는 것만 달라졌다. 몇 번이나 이런 일을 겪다 보니 '늑대가 나타났다' 우화를 보는 심정이 돼 버렸다. 지나치게 냉소적인 것인가.

자전거 음주 단속·헬멧 착용 법안 필요, 하지만...

만약 누군가 이번 법안에 대해 필요하다고 묻는다면 나는 당연히 "필요하다"고 답할 것이다. 그러면 왜 그렇게 냉소적이냐 묻는다면 거기에 대해선 몇 가지 할 말이 있다.

우선 성실함이 보이지 않아서다. 2008년, 2009년 이에 대한 대책마련을 심도 깊게 했다면 이에 대한 자료가 충분히 쌓여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매년 나오는 자료가 한결 같이 똑같은가.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자전거 사망사고가 해마다 늘고 있다. 이유는 헬멧을 쓰지 않아서다(이번엔 여기에 두 개가 추가된 것 같긴 하다. 과속과 음주)."

자전거는 자동차와 달리 굉장히 다양한 방식으로 운행한다. 전용도로를 달리기도 하고, 차로를 달리기도 하며, 보행자겸용도로를 달리기도 한다. 큰 대로를 달리는가 하면 골목길을 달리기도 한다. 사고유형 또한 천차만별이다. 게다가 자전거길 형태가 달라지면서 사고 유형 또한 매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책마련을 한다면서 매년 들고 나오는 자료가 자전거 사망자가 늘고 있다, 밖에 없을까.

게다가 "자전거 사고가 났다. 살펴보니 헬맷을 쓰지 않았다"는 문장에선 큰 비약이 느껴진다. 만약 이와 같이 조사를 한다면 이와 같은 결론도 가능하다. "자전거 사고가 났다. 살펴보니 자전거 전용복장을 입지 않았다"도 가능하다.

무엇보다 자전거 실제 이용자수와 사고건수, 사망자수를 반영한 자료 정도는 나와야 하지 않는가. 자전거 이용자수가 늘면 사고건수도 자연스럽게 느는 것인데, 정부 자료에는 오로지 사고가 늘었다는 것만 나와 있다. 주장을 위해서 이용 가능한 자료만 갖다 쓴 것이다.

두번째는 자전거를 타는 이들을 범죄자로 모는 듯한 기분 나쁨이다. 자전거 사고가 늘어나나는 것은 결과다. 왜 사고가 났는지 원인에 대해 심도 있게 조사를 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에서 발표를 할 때 사고가 느는 이유를, 자전거 운전자가 제대로 자전거를 타지 않아서라고 진단한다. 술을 마셔서, 과속을 해서, DMB를 시청해서, 라고 말한다.

물론 자전거를 모는 이들 중에는 이런 이들이 있다. 하지만 과연 이런 행동을 하는 이들이 어느 정도 되는지, 그들이 과연 사고의 주범인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일부 몇몇 사례를 놓고 전체로 확대 해석하면 대다수는 기분 나쁠 수밖에 없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의 불쾌감... 부주의 때문이라고?

 (자료사진)
 (자료사진)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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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가 그렇게 느끼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더군다나 이들을 그동안 "환경운동의 파수꾼"으로 치켜세웠다면 섬세한 접근이 필요했다. 하지만 접근방식은 정반대였다. 주요 자전거 관련 사이트에서 회원들이 법안엔 필요성을 느끼면서 왠지 모를 불쾌감을 느끼는 것도 그 때문이다.

과거 1993년 한국소비자보호원이 자전거 사고에 대해 조사를 한 적이 있다. 당시 조사에선 자전거 사고의 대부분이 자동차운전자에게 있다고 진단을 내렸다. 만약 지금 자전거사고의 책임이 주로 자전거운전자에게 있다면 그 동안 자전거운전자의 운전이 심하게 난폭해졌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한국소비자보호원은 최근 자전거 이용상 안전대책을 촉구하기 위해 서울 강남·용산 및 수원·남양주경찰서 등 수도권 9개경찰서에 지난 한 해 동안 접수된 4백17건의 자전거 교통사고 사례와 서울 신촌세브란스, 부산 위생병원 등 4개 종합병원에 자건거 사고로 입원한 사례 1백35건에 대해 원인 등을 조사, 분석했다. 조사결과 자전거 관련 교통사고중에서 자전거 이용자의 부주의나 과실로 인해 발생한 사례는 31건(7.4%)뿐이며 횡단보도나 교차로에서 자동차가 과속 등으로 자전거를 추돌하는 등 자동차운전자에게 과실책임이 있는 사례가 전체의 92.6%인 3백86건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연합뉴스(1993년 4월 19일)

자전거 운전자들은 자전거를 탄다는 것에 대해 굉장한 자부심을 느낀다. 자신이 자전거를 즐기기도 하지만 지구환경에 이바지한다는 것에 대해 남모를 자부심을 느낀다. 하지만 이렇게 교통환경을 저해하는 문제아로 낙인찍으면 기분 나쁠 수밖에 없다. "에이 기분 나빠, 이럴 거면 자전거 안타"라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이해 못할 바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게으름이다. 이번 발표는 과거 발표에 비해 한 발짝도 나갔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과거 음주운전 단속과 과속 단속 법안은 법안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고려하지 않았다 해서 입안이 되지 않았다. 만약 이번에 의지를 가졌다면 충분하게 대안을 마련했어야 한다.

장려책인가 규제책인가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다음 질문에 대한 답이 마련돼 있는가.

1. 자전거 단속 법안으로 인해 비용이 증가하는 것은 오로지 자전거 운전자의 몫인가?

자전거 과속과 음주운전을 단속하려면 일단 모든 자전거는 번호판을 달고 의무등록이 돼야 한다. 그렇지 않고 어떻게 단속할 것인가. 그렇다면 그로 인한 비용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와 등록제에 대한 의견도 포함됐어야 한다.

또한 헬멧 착용과 속도계를 다는 것도 꽤 많은 비용이 든다. 레저로 즐기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생활자전거를 타는 사람이라면 배보다 배꼽이 큰 일이 일어난다. 액세서리 구입 비용이 무서워 자전거 안 탄다는 사람이 충분히 나올 수 있다. 이에 대해선 대책이 있는가?

2. 각 도로 사정과 상관 없이 일괄 적용할 것인가.

자전거가 다니는 길은 꽤 다양하다. 자동차와 달리는 길이 있고, 보행자와 다니는 길이 있고, 자전거만 달리는 길이 있다. 또한 자전거만 달리는 길에서도 고속도로 개념 길이 있다. 이런 길에 모두 똑같은 속도를 적용할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지방도와 국도, 고속도로의 자동차 속도가 똑같다는 말인데 이는 자전거의 특성을 무시한 말이다. 도로경주에 나서는 자전거선수들은 차로에서 훈련을 한다. 이들에게도 20km/h 과속제한을 할 것인가. 이와 같은 예외 사례는 찾아보면 많다. 자전거 이용자들이 속도제한 20km/h에 대해 분개하는 이유다.

3. 처벌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번 법안의 성격을 둘러싼 논란이다. 장려책인가 규제책인지를 묻는 질문이다. 단속에 중점을 둔다면 처벌방안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단속할 이유가 없다. 장려에 중점을 둔다면 처벌보다는 장려방안이 포함돼야 한다. 정부의 목소리로만 본다면 처벌방안이 있을 것 같은데 어딜 봐도 그런 내용은 없다. 그렇다면 "뭐야, 단속한다고 해놓고, 뭐지?"라는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다.

틈만 나면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정부부처만 바꾼 채 들고 나오는 것을 보면서 "뭐야 자전거가 봉이야"라는 생각을 하는 게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자전거가 지금 눈길을 끄는 주제이다 보니, 한 번 건드려본 뒤 아니면 말고,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아닌지 의혹이 드는 게 과연 무리일까.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질문이 있다. 정부가 자전거 타기를 권장하는 이유는 교통에서 자전거 타는 비중을 늘려서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환경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과연 일반생활교통에서 자전거 비중이 과연 늘고 있는지, 이로 인해 에너지 소비가 줄고 있는지, 이번 방안이 그 목적에 들어맞는지를 설명하는 게 먼저다.

그런 의도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번 방안에 대해서도 냉소적이 되는 것이다. 보다 성실하게 연구하고 분석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담은 후속 방안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자전거#음주운전#자전거과속#행정안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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