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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 실버영화관으로 운영되던 서대문아트홀이 11일 문을 닫았다. 11일 오후 서대문아트홀 앞에서 시민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3년간 실버영화관으로 운영되던 서대문아트홀이 11일 문을 닫았다. 11일 오후 서대문아트홀 앞에서 시민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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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 실버영화관으로 운영되던 서대문아트홀이 11일 문을 닫았다. 11일 오후 김은주 대표가 "극장을 지키지 못한데에 책임을 느껴 말 뿐인 사과가 아닌 진심어린 행동을 단행하다"며 삭발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극장 못 지켜 죄송" 서대문아트홀 김은주 대표 눈물의 삭발 3년간 실버영화관으로 운영되던 서대문아트홀이 11일 문을 닫았다. 11일 오후 김은주 대표가 "극장을 지키지 못한데에 책임을 느껴 말 뿐인 사과가 아닌 진심어린 행동을 단행하다"며 삭발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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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E(끝이란 뜻의 이탈리아어).' 영화가 끝났다. 서울에 남은 유일한 단관극장이며 노인전용극장인 '서대문 아트홀(옛 화양극장)'의 역사도 끝났다.

서대문아트홀을 운영해온 김은주 (주)추억을 파는 극장 대표는 11일 오전 "(노인들을 위한) 문화가 만들어지기 힘든데 지키지 못하는 건 한 순간"이라며 극장에 모인 취재진과 관람객들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이날 김 대표는 "모든 어르신들에게 머리 숙여 사과드리며, 어르신들을 위한 문화공간이 계속 생겨났으면 하는 마음을 알리고 싶다"며 삭발을 단행했다.

1964년 화양극장으로 개관한 이곳은 한때 <천녀유혼> <영웅본색> 등을 흥행시키며 홍콩영화 붐을 이끌었다. 하지만 멀티플렉스에 밀려 '드림시네마'란 시사회 전용관으로 활로를 모색하다가 2009년 연극·뮤지컬·시사회 등을 하는 공연문화 공간 '서대문 아트홀'로 변신했다.

서대문 아트홀과 함께 종로 허리우드 극장을 운영하는 김 대표는 2009년 허리우드 극장을 실버영화관으로 탈바꿈시켰다. 서울시는 이를 본떠 2010년 7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서대문 아트홀을 빌려 노인전용극장 '청춘극장' 사업을 진행했다. 이후 김 대표는 올 1월 서대문 아트홀을 다시 열어 노인전용극장의 역사를 이어왔다.

"노인들을 위한 공간 없어지고 있다"... 눈물의 삭발식도 열려

하지만 지난해 바뀐 건물주가 이 자리에 관광호텔을 짓겠다며 극장을 비워달라고 통보했다. 김 대표는 "2009년 재계약을 할 당시 건물주는 '앞으로 5년은 기본이고, 10년도 문제없이 운영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며 "구두 계약이었지만 다른 임차인들도 믿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를 바탕으로 김 대표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에서 패소했다. 과거 건물주가 한 약속을 새 건물주가 지킬 의무는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서대문 아트홀은 영화 한 편당 2천원으로 관람료가 저렴하고,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바로 앞에 위치해 있어, 주머니가 가볍고 이동이 불편한 노인들에게는 훌륭한 문화공간이었다.

정인장(70, 서울시 구로구 개봉동)씨는 이날 마지막으로 상영되는 <자전거도둑>을 보러 극장을 찾았다. 그는 "<벤허> <십계> 등 옛 외화들을 보러 한 달에 두 번 이상은 왔다"며 "발전하려면 새로운 것을 지어야겠지만, 우리를 위한 공간이 없어지는 게 아깝다"며 말끝을 흐렸다.

 3년간 실버영화관으로 운영되던 서대문아트홀이 11일 문을 닫았다. 11일 오후 많은 시민들이 "극장을 지키지 못한데에 책임을 느껴 말 뿐인 사과가 아닌 진심어린 행동을 단행하다"며 삭발을 하는 김은주 대표를 지켜보고 있다.
 3년간 실버영화관으로 운영되던 서대문아트홀이 11일 문을 닫았다. 11일 오후 많은 시민들이 "극장을 지키지 못한데에 책임을 느껴 말 뿐인 사과가 아닌 진심어린 행동을 단행하다"며 삭발을 하는 김은주 대표를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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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부터 이곳에서 공연을 해온 가수 심현주(47)씨와 이수연(47)씨는 "마음이 안 좋다"며 "우리가 옛날 노래 부를 때 어르신들이 박수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느낀 희열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심씨는 "보통 700~800명, 많을 땐 1000명도 오셨다"며 "이제 어르신들 가실 곳은 종로 '허리우드 극장' 하나 남았다"고 말했다.

극장 내 매점에서 구운 가래떡을 파는 강정임씨는 이날 손님들과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재료를 평소보다 넉넉하게 준비했다. 강씨는 "가래떡 한 개에 500원, 커피 한 잔에 200원씩 팔면 인건비랑 전기세도 안 남았다"고 말했다. 그래도 저렴한 가격을 유지한 이유는 "할아버지 할머니 배고프지 말고 영화 기분 좋게 보시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날 강씨는 폐관에 항의하며 머리를 삭발하는 김은주 대표를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한편 청춘극장 사업을 담당하는 서울시 문화관광디자인본부 문화정책과는 "서대문 아트홀이 사라져도 서울시가 운영하는 청춘극장이 계속 유지되므로 노인문화공간이 없어지는 게 아니다"라고 밝혔다. 서울시는 청춘극장을 연신내 은평 메가박스로 옮겨 지난 1월부터 운영 중이다.

또 청춘극장 계약을 만료한 이유는 관광호텔 개발뿐 아니라 "건물이 오래 돼 안정성 문제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호텔 개발 역시 "건물주와 계약할 당시에도 재개발 얘기가 있었다"며 "이 때문에 2010년 7월~2011년 2월말, 2011년 3월~2011년 12월 31일까지 두 차례로 나눠 계약을 했다"고 말했다.

서대문아트홀 입구에 걸려있는 사진. 경영난에 시달리던 서대문아트홀은 극장을 지키기 위해 서명운동을 벌여왔지만, 11일 결국 마지막 영화를 상영하게 됐다.
 서대문아트홀 입구에 걸려있는 사진. 경영난에 시달리던 서대문아트홀은 극장을 지키기 위해 서명운동을 벌여왔지만, 11일 결국 마지막 영화를 상영하게 됐다.
ⓒ 박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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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서대문 아트홀, #노인, #노인 전용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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