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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권 출신 첫 국회의장이 탄생했다고 환호작약하는 이들이 많았다. 충청권의 일간신문들 모두 그 사실을 대서특필했다. 충청권 출신 첫 국회의장의 탄생이야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것이 충청도의 명예와는 별 관련이 없다. 한 껍질 벗기고 보는 눈을 접은 채 지방 언론들은 오늘의 피상적인 사실만을 가지고 충청도의 명예를 결부시킨다. 한마디로 천박하다.

 

대전 중구에서 6선을 한 강창희 국회의장(새누리당)은 지난 2일 오전 국회 본회의 의장 선거에서 정족수 283명 중 195명의 찬성을 얻었다. 무려 88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국회의장 선거는 경선이 아니라 단일 후보에 대한 찬반을 묻는 형태로 이뤄지기 때문에 대개 10명에서 20명 정도가 반대표를 던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무려 88명의 반대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중령으로 예편한 강 의장은 '하나회' 출신이라는 전력을 가지고 있다. 5공 출범과 함께 정계에 입문했기에 당연히 '5공 세력'으로 분류된다. 그는 하나회 전력 시비에 대해 "나쁜 짓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떳떳하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그는 2009년 발간한 자서전 <열정의 시대>에서 12·12쿠데타를 "우발적 사건"으로, 하나회를 "어느 사회나 조직에 존재하기 마련인 일종의 리딩(ledading) 그룹"으로 평가했고, 전두환에 대해서는 "정치생활의 멘토"라고 말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대한민국 건국헌법이 제정된 이래 헌정질서를 송두리째 유린한 최대 사건은 1961년의 5·16쿠데타와 1972년의 시월유신, 그리고 1979년의 12·12쿠데타와 1980년의 5·17정변이다.

 

5·16쿠데타는 일본 육사를 나와 광복군 토벌에 앞장섰던 황군 출신 박정희가 주도했고, 12·12쿠데타와 5·17정변은 군대 내에 '하나회'라는 사조직을 만들어 이끌었던 전두환이 감행했다. 5공이라는 이름의 독재체제는 하나회의 전두환이, 전두환의 하나회가 만든 셈이다. 하나회라는 사조직이 없었다면 전두환이 신군부의 실세로 부상할 수도 없었고, 살인 만행을 저지르며 정권을 찬탈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5·6공으로 회귀... 섬뜩한 공포감

 

군대 안의 일부 장교들이 사조직을 만들어 운영한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사조직의 힘은 너무도 막강했다. 서로 은밀히 밀어주고 끌어주며 회원들은 비회원들보다 늘 진급에 앞섰고 군 요직을 번갈아 차지하곤 했다. 그들에게는 군대의 정상적인 지휘계통이나 상하관계보다 회원 간의 사사로운 의리가 더 중요했다.

 

그리하여 정상적인 군대의 생명인 명령계통을 무시하고, 부하가 직속상관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일이 벌어졌다. 하나회의 실상이, 다시 말해 국가의 군대가 사병화(私兵化) 되어버린 실례가 12·12사태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났다.

하나회는 김영삼의 문민정부 시절에 단죄를 받았다. 잔존하고 있던 하나회 멤버들은 조기퇴역을 당하기도 하고 진급과 보직 등에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그것은 당연하고도 필연적인 결과였다. 군대의 생명인 정상적인 지휘계통을 교란시키는 사조직은 존재 자체가 큰 해악이라는 것을 국민 모두가 명확히 인식하게 된 결과였다.

 

그러므로 하나회 출신이라는 것은 결코 명예로운 것이 될 수 없다. 과거의 부정적인 전력은 과거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오늘에도 알게 모르게 악영향의 그림자를 지니기 마련이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전력은 중요한 법이고, 모두의 관심사항일 수밖에 없다. 

 

하나회 출신 5공 세력 국회의장의 출현은 오늘의 시대상을 압축적으로 반영한다. 5·6공 시대의 인물들이 대거 정계에 포진하는 상황과 맞물린다. 이 과거로의 회귀현상에는 상당한 자만심이 내포되어 있다. 정권재창출을 기정사실화하는 자만심이다.

 

그 자만심은 여러 가지 형태로 표출된다. 최근 전 재산이 29만 원뿐이라는 전두환이 이등병 신분임에도 육군사관학교에 가서 사열을 받은 풍경도 사실은 회귀현상이 가져온 자만심의 표출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회 시절에 공고히 내장된 조폭 수준의 사사로운 '의리'가 면면히 흐르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어서 섬뜩한 공포감마저 자아낸다.

 

떳떳치 못한 과거... 부끄러움이라도 알았으면

 

오래전 <과거를 묻지 마세요>라는 가요가 널리 유행한 시절이 있었다. 나애심이라는 여성 가수가 불러 크게 히트한 노래다. KBS에서 선정한 '가요 100선'에도 들어 있는 노래고, 서울 광진구의 어느 공원에 노래비도 있다. 이 노래의 가사를 보면 감추고 싶은 부끄러운 과거 사연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옛 사랑'을 감추고 싶다는 뜻임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이 노래의 제목은 선뜻 부끄러운 과거 사연을 묻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사람들에게는 떳떳치 못한 과거를 감추고 싶은 본능 같은 것이 있다. 전력을 감추거나 전력 노출을 꺼리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어느 정도는 양심이 있고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부정적인 전력을 오히려 광고하며 합리화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거에 무슨 짓을 했건, 어떤 살인 만행을 저지르고 얼마나 부정한 치부를 했건, 또 어떤 형태의 민족반역 행위를 했건 양심의 가책도 없고 수치심도 전혀 없는 사람들의 무서운 위세를 우리는 오늘 두 눈으로 보며 산다.

 

그들은 오히려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하기 위해 온갖 궁리를 다하고, 현실 권력을 쟁취하고 또 유지하기 위해 요술방망이 같은 묘수를 다 발휘한다.

 

그게 다 '광복'의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탓이다. 해방공간에서는 미군정의 방해로, 정부수립 이후에는 이승만의 훼방으로 민족정기를 제대로 세우지 못했기에 그 '죄업'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국민 대중은 그 사실을 먼저 자각해야 한다. 진실과 정의에 대한 인식의 눈을 새로이 뜨고, 민족정기와 정도(正道)를 갈망하는 눈을 가질 때 <과거를 묻지 마세요>라는 노래도 진솔한 심정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태안의 <태안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강창희 국회의장, #전두환 육사생도 사열, #한선교 도청의혹사건, #과거 회귀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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