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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다섯 번씩 드리는 라마단 때의 기도.
▲ 기도 하루에 다섯 번씩 드리는 라마단 때의 기도.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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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의 라마단은 무려 한 달간이나 계속되는 명절이다. 내가 사는 이집트는 20일부터 라마단 기간에 들어간다. 약 한 달간 해가 지기까지 낮 동안 금식하고, 날마다 5번의 기도를 하는 의식을 치르는 것이다.

이미 한 달 전부터 주부들은 그 한 달의 명절음식을 준비하기에 분주해진다. 한낮 동안 더위와 허기에 지친 가족들을 위해 수프와 디저트는 필수이며, 아이들 간식거리도 넉넉해야 하고 어른들이 차와 곁들여 먹는 과자도 마련해 두어야 한다. 또한 매일매일의 주요리도 다르게 차려내는데, 대개는 하루의 주요리가 서너 가지쯤 된다.

그렇다 보니 미리 야채와 고기를 손질해 냉동포장을 해두지 않으면 낭패를 보는 수가 있다. 허기에 지치기는 음식을 만드는 주부도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금식 중이라 요리 도중에 맛을 볼 수도 없다. 주부들의 요리 신공이 발휘되어야 할 순간인데, 만일 요리에 대한 공력이 전무하다면 냉동저장하기 전에 미리 간을 보아두는 것도 방법이다. 나는 후자에 속하므로 당연히 간을 다 맞춰놓기로 하였다.

사람들은 해물요리를 잘하는 집에는 해산물을 '언제 어떤 것으로'라는 식으로 사전주문을 해두고, 닭고기나 소고기 요리 등도 선주문을 해둔다. 경비를 아끼기 위해서 집에서 식재료를 다듬어 식당에 갖다주고 주문을 하는 집도 매우 많다.

하지만 해산물은 소화가 빨리 된다고 믿으므로 부요리에 가까운 취급을 하며 주요리로는 꺼리는 경향이 강하다. 대개는 육류요리를 주요리로 삼는데 그 요리의 종류가 매우 다양해서 현지 지인들의 집에 초대를 받을 때마다 감탄을 하곤 한다.

남들은 이렇게 한 달 전부터 나라 안 대형 슈퍼마켓이나 골목시장들을 훑고 다니는데 나라고 너무 밋밋하게 있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라마단 기간에는 늘 그랬듯이 식자재 값이 매우 오른다. 이 때문에 계절과일을 사서 용도에 맞게 잘라 얼려놓는 집들도 적지 않으며, 냉장고 외에도 냉동고를 별도로 갖춘 집들도 해마다 늘고 있다.

나는 한 달 동안 차려낼 일일 주요리를 우선 정한 후 필요한 양의 식재료를 구입하기 위해 마켓으로 달려갔다. 식구들 디저트를 위해 케이크 재료와 토핑거리들도 준비했다.

대형마켓마다 정육 판매대와 냉동식품 판매대가 엄청나게 붐비고 있었다. 간신히 줄을 서서 고기를 종류별로 주문하는데 정육 판매대는 물론이고 냉동식품 진열대에서 호주산 닭들을 싹쓸이하다시피하는 다른 사람들을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나는 너무나 조촐하게 장을 보고 있었다. 그래도 우리집 냉장고의 용량에 한계가 있으므로 더 구입하지 못하고 참기로 했다.

라마단 음식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장을 본 식재료들을 구분해서 늘어놓고 나는 아이들의 고사리 손에 도와달라고 하소연을 했다. 야채껍질을 깎을 수 있을 정도로 아이들이 자라서 올해 라마단 준비는 지난해보다는 힘이 덜 들었다. 대부분 현지인들은 라마단의 첫날을 '마아쉬'로 시작한다. 마아쉬는 각종 채소에 향신료를 섞은 쌀을 담아 쪄내는 주요리로서, 호박잎으로 쌀을 말기도 하고 토마토 안을 완전히 비워 쌀로 채우기도 한다.

향이 매우 강하게 섞인 쌀이라 우리 집에서는 그다지 인기가 없는 음식이다. 아랍의 전통음식인 코프타는 향이 중요하기 때문에 아예 코프타용 향가루를 구입했는데, 노련한 주부들은 시장에서 향나물들을 직접 사다가 말리고 다져서 사용한다. 우리 집도 어차피 한 끼에 여러 종류의 주요리가 나가야 하므로 한 줄 트레이마다 여섯 개의 소고기 코프타를 빚어서 모양 내어 늘어놓았다.

바스테르마는 훈제고기를 얇게 썬 것을 말하는데, 대개는 샌드위치에 넣지만 라마단 같은 특별한 시즌에는 좀 더 많은 양을 준비해 볶음밥 위에 얹어내기도 한다. 바샤멜은 우유와 다진 고기와 밀가루 그리고 짤막한 마카로니가 주재료인데 준비한 재료들을 켜켜로 쌓아 오븐에 구워내는 고기파이 같은 것이다.

케이크처럼 잘라서 한 조각씩 먹게 되는데, 재료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매우 고열량식품이라 위에 부담을 줄 수 있으므로 자신이 먹을 양을 조절해야 한다. 나는 한 끼에 다른 주요리와 함께 이 바샤멜을 몇 조각씩 먹어치우는 현지인들을 보고 매우 놀란 적도 있었다. 그만큼 맛이 있다는 반증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라마단때의 저녁식사 시간.
▲ 새벽3시의 저녁식사 라마단때의 저녁식사 시간.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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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샛노랗게 밥을 지어 먹는데, 그래서 쌀 모양이 길쭉한 '달리아'(브랜드 이름)를 한 통 별도로 구입했다. 밥을 노오랗게 지으려면 별도의 가루가 필요한데 마켓의 식가루코너에 주부들이 붐비는 이유가 바로 이 밥을 짓기 위해서이다. 나는 '쌀에 섞기만 하면 노래지는' 인스턴트가루를 한 통 샀다.

해산물요리에는 쫄깃한 브라운 라이스를 만들어 내야 하는데, 이 브라운 라이스는 노랗지가 않고 갈색 비슷하게 색깔이 나며 마늘을 얼마큼 잘 볶느냐에 따라 밥의 색깔과 맛이 정해진다. 나는 브라운 라이스만큼은 자신이 있었으므로 인스턴트 가루를 사지 않았다.

또한 닭요리와 함께 반드시 내는 것이 있는데 닭수프의 일종인 '모로케야'이다. 모로케야 이파리를 건조시켜 다져서 사용하는데, 요즘 아랍의 주부들은 당연하다는듯이 냉동 모로케야를 구입한다. 걸쭉한 수프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호불호가 확실하게 갈리는 음식이다.

이 외에도 바샤멜과 비슷한 미트파이가 있고, 각종 야채와 고기를 볶은 뒤 토마토 소스를 부어 끓여내는 스튜, 올리브와 고추 등으로 담근 피클, 아주 잔 마카로니를 육수에 끓인 수프, 오렌지색 과립을 갖은 야채와 함께 갈아서 끓여 만든 야채수프 등도 이 명절에 사람들이 즐겨먹는 음식이다.

또한 언뜻 우리네 튀김만두처럼 보이는 '이따이후'는 안에 고기나 치즈가 아니라 각종 견과류와 코코넛 가루를 섞어넣은 후 튀긴 다음 시럽에 묻혀내는 후식이다. 바사부사 같은 케이크는 매우 기름지고 단맛이 강하며, '캬악'은 화이트슈거를 묻힌 쿠키인데 이 역시도 현지인들에게는 매우 인기가 높은 후식메뉴에 들어간다.

대개의 전통음식들이 '식용유보다 버터를 사용해야 맛이 살아난다'는 믿음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이 기간만큼은 어지간한 결심이 아니고서는 다이어트에 성공하기가 매우 어렵다.

아랍 식탁의 예절... "음식을 남기지 말라!"

이집트에는 우리의 추석처럼 라마단에 부모님 댁이나 일가친척을 방문하는 풍습이 있는데, 대접해주시는 그 모든 상차림 음식들을 남기는 것은 예의에 대단히 어긋난다. 식사를 할 때 대도시에서는 개인접시를 사용하는 것이 이미 일반적으로 되었는데, 시골에서는 아직도 요리를 담은 큰 접시와 봉투에 담아 내어오는 공갈빵이 식탁 위에 오르므로 알아서 자기 앞에 있는 음식들을 챙겨먹어야 한다.

일단 손을 씻고 주요리로 식사를 마친 후에는 디저트와 차까지 순서대로 다 '끝까지' 먹는 것이 아랍의 식사예절이기도 하다. 하물며 어른들이 권하시는 데에야 거절할 명분을 찾는 것 자체가 황송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 많은 전통음식들 중 어느 하나 절대로 단시간에 만들어지는 요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요리 하나를 완성시키기 위해 아랍의 주부들은 온종일 허리를 구부리고 야채를 깎아야 하고, 고기의 살을 발라야 하며, 화로 앞에 서서 몇 시간을 젓거나 구워야 한다. 그러니 과식으로 위가 짊어질 부담을 우려하여 '거절의 꼼수를 궁리하지 말고' 자신의 양을 알아서 조절하라는 충고가 충분히 납득이 될 것이다.

옆집은 낡은 에어컨을 고친다고 벌써 일주일째 수리공을 기다리고 있었다. 적어도 9월까지는 계속될 사막의 열기에 냉방기 수리공들만 대목이다. 나는 올여름이 유난히 더운 데에다 라마단마저도 한여름에 있어 지레 지칠 아이들을 위하여 선풍기 한 대를 더 구입했다.

어쩌면 집집마다 문 앞에 달아두는 전통등 '화누스'를 사두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올해 라마단은 좀 더 뜻깊게 보낼 계획이니까 말이다. 라마단은 이슬람력으로 날짜 계산을 하며 1년에 11일씩 앞당겨진다. 내년은 더 뜨거운 라마단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의 <마담 아미라의 이집트여행> 카페에도 동시에 실립니다.



태그:#라마단, #라마단음식, #아랍의식탁예절, #이집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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