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전기가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라고 하더라도, 그래서 가급적 전기 사용을 줄여야 한다고 하더라도 전기가 전혀 없는 일상은 상상하기가 힘들다.
덥고 끈적끈적한 여름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전기가 끊겨서 지하철과 엘리베이터가 운행을 중단하고, 가정과 사무실의 에어컨과 선풍기가 동작을 멈춘 채로 24시간을 보내야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짜증을 낼 것이 분명하다.
그 이전에 전기는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것이기도 하다. 뇌에서 심장으로, 폐로 전달되는 자극 역시 전기다.
전기는 사람을 죽이고 재산을 파괴하기도 한다. 누전으로 화재가 발생하고 감전으로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다. 세상 모든 것들이 그렇듯이 전기도 잘쓰면 약이지만 못쓰면 독이 되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기, 전기제프리 디버의 2010년 작품 <버닝 와이어>는 '링컨 라임 시리즈'의 9번째 편이다. 시리즈의 첫 번째 편에서부터 호흡을 맞추었던 콤비 링컨 라임과 아멜리아 색스는 <버닝 와이어>에서도 함께 범인을 추적한다. 이번 편의 범인은 전기를 이용해서 사람을 죽인다는 차이점이 있다.
라임과 색스의 입장에서, 전기를 이용한 살인자는 처음으로 상대하는 것이다. 아니 역사상 이런 살인범이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첫 번째 살인은 버스정거장에서 일어났다. 범인은 한 변전소에 들어가서 건물 바깥으로 전선을 설치했다. 그런 다음 전력망을 통제하는 컴퓨터에 침입해서 변전소가 감당할 수 있는 이상의 전압이 그 전선을 통해서 흘러가도록 설정했다.
결과는 대폭발이었다. 섭씨 3000도에 가까운 불꽃이 정차 중이던 버스에 튀었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죽거나 부상을 당했다. 인근 지역 몇 블록의 전력망이 마비되었다. 이 정도면 전기의 힘을 제대로 보여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살인범은 전력회사에 정식으로 요구사항을 알려온다. 전기는 지구를 황폐화시키고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간다. 무분별한 전기의 생산으로 지구가 파괴되고 있으니, 실제로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만큼의 전기가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특정 시간대에 뉴욕 시 전체에 공급하는 전력의 양을 평소의 50퍼센트 수준으로 낮추라고 요구한다. 이 요구가 받아들여질 경우 뉴욕 시에는 엄청난 피해가 발생한다. 라임과 색스는 첫 번째 범죄현장인 버스정거장을 수색하면서 범인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전기가 일으키는 잔혹한 살인전기의 특징 중 하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람 사는 곳이라면 대부분 전기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전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전기는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캄캄한 방 안의 독사처럼.
이런 점이 라임과 색스의 수사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동안 라임과 색스는 수많은 연쇄살인범들을 추적해서 검거해왔다. 그 경험에서 쌓인 노하우 덕분에 일반적인 연쇄살인범들을 상대하는 방법과 절차는 비교적 잘 알고 있다.
반면에 상대가 전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전압과 전류, 전력 등 기본 개념을 이해하더라도 그 실체를 볼 수 없다면 점점 더 불안해지기 마련이다. 작품 속에서 색스는 자신의 주변에서 몇 볼트의 전압이 검출되는지, 자신의 몸이 외부와 절연상태인지 계속해서 확인한다.
전기의 또 다른 특징은 만들어서 쓰지 않으면 없어진다는 점이다. 작품 속의 한 기술자는 전기를 저장하는 새로운 방법을 발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전기가 지구를 파괴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전력생산을 위해 발전소를 건설하기보다 전기를 좀 더 효율적으로 이용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지구온난화 문제에도 도움이 될 테고, 전기로 사람을 죽이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살인도구도 다양해진다.
덧붙이는 글 | <버닝 와이어> 제프리 디버 씀, 유소영 옮김, 알에치코리아 펴냄, 2012년 6월, 552쪽, 1만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