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이라는 말에 당신이 처음 떠올리는 것은 무엇인가.
'적게 벌면서도 부족함 없이 살아가는 기적'을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더 빨리,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요즘 시대에 더더욱 흔치 않은 '기적'이다. 전남 고흥에서 반농반어로 살아가는 '글 쓰는 농부' 송성영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의 이야기다.
23일 오후 7시30분, <오마이뉴스> 서교동 마당집에서 송성영 기자의 신간 <모두가 기적 같은 일>(오마이북 펴냄) 출간 기념 저자와의 만남 행사가 열렸다. 미리 참가 신청을 한 30명 안팎의 독자들이 참석했다.
긴장하고 쑥스러워하는 저자, 진지하게 경청하는 독자
이날 전남 고흥에서 8시간의 여정 끝에 서울에 도착한 송 기자는 행사 시작 전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긴장이 되어가지고… 사람들이 다들 뭔가 기대하는 표정이잖아요."
쑥스러워하던 송 기자도 막상 말문이 트이자, 이내 술술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풀었다. 송 기자는 결혼 후 충남 공주의 "다 쓰러져가는 빈집"으로 귀농하여 아내와 두 아들, 그리고 개 '곰순이'와 함께 가난하지만 평화롭게 살았다. 2002년부터는 <오마이뉴스>에 기사 연재를 시작했다. 그 후 꾸준히 쓴 글을 모아 <거봐 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라는 두 권의 책을 내기도 했다.
"그 전에 아파트에도 잠깐 살았지만, 공주 시절이 더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네 가족이 한 달 사는 데 60만 원밖에 안 들어갔어요. 그 대신 즐기면서 살았습니다. 풍족하게. 다 노니까 시간이 많이 남아 기름값만 있으면 애들이랑 여행도 많이 갔습니다. 물론 돈벌이를 안 하는 만큼 산과 밭에서 최소한의 먹거리를 구했지요. 집사람은 도시 생활이 익숙했는데, (저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어요."10여 년간의 공주 생활은 집 뒤에 호남고속철도가 들어서며 끝이 났다. 송 기자 가족은 5000만 원의 돈을 들고 이사할 곳을 찾기 시작했다. 3년 동안 전국을 헤맨 끝에 전남 고흥에 새 터를 잡았다. 우여곡절 끝에 멋진 목조 주택도 지었다. 이렇다 할 돈벌이 없이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그의 삶은 아름다운 자연과 넉넉한 인심이 살아있는 고흥에서 이어진다.
자리에 모인 독자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송 기자의 나지막한 목소리를 경청했다. 더러는 열심히 메모를 하기도 했고, 송 기자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작은 미생물부터 독자들까지... 일상 속 '기적'의 비결은 '인연'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하며 송 기자는 '보이지 않는 인연'과 '기적'을 자주 언급했다. 적은 돈으로 새 보금자리를 짓고, 매일 의식주를 부족함 없이 해결하는 일상이 모두 기적 같다는 것이다.
"처음엔 책 제목에 '기적'이라 하면 무슨 신앙 고백 같아서 좀 '거시기' 한 거 아닌가 했는데(웃음). 사실 기적이라는 게 아주 사소한 것들입니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 이미 늘 일어나고 있겠죠. 우리가 모를 뿐이죠."그에게 '기적'을 가져다주는 것은 밭에 사는 작은 미생물부터 <오마이뉴스> 독자들까지 이르는 수없이 많은 '보이지 않는 인연'들이다.
"약을 안 치고 화학비료를 안 넣고 밭을 일구다 보면, 거기에 자기들끼리의 생태가 조성되겠죠. 그 인연들이 나에게 먹거리를 주는 것처럼, 사람들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나한테 좋은 인연이 생기면, 돈을 조금 못 벌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구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새 터를 잡고 집을 지었을 때도 '이 집은 내가 지은 게 아니다'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를 살게끔 해준 주변 사람들, 도움을 줬던 사람들… <오마이뉴스>에 글을 꾸준히 써 온 것도 한 몫을 했습니다.""사회와, 가족들과, 그리고 자신의 내면에서 갈등은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잠깐 잠깐씩, 보이지 않는 인연 속에서 기적을 발견합니다. 장작이 떨어지면 집 앞에 베어진 나무가 생기고, 찬거리가 떨어지면 돌미역이 천지인 곳을 발견하게 되더라구요."이렇게 송 기자는 좋은 인연에서 피어나는 생활 속의 기적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어찌 보면 좋은 인연을 만나는 것 자체가 기적 같은 일일지도 모른다. 독자들이 질의응답 시간에 던진 질문 속에도 "싫은 인연은 어떻게 대처하는가"가 있었다. 이에 송 기자는 "스스로 추스르는 편이다"라고 답했다.
"안 그래도 지금 앞집이랑 시비가 붙었는데…(웃음) 그게 무지하게 힘든데. 목소리 높일 당시에는 시원한 것 같은데, 집에 오면 그 스트레스가 어디 안 가고 주변에게 갑니다. 그래서 마음을 추스르려고 노력합니다."송 기자는 이날의 자리 역시 새로운 인연의 시작으로 보았다.
"결국 여기 모인 분들 누구나 다 같은 마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뭔가 알고 있어서 말하러 온 것이 아니라, 다만 서로의 같은 마음을 확인하는 자리입니다. 그 마음을 확인하면서 또 새로운 인연이 맺어지지 않는가 합니다."마지막 순서인 사인회에서도 그는 책마다 "좋은 인연 감사합니다"라고 적었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저자와 독자의 만남에서 시작된 인연은 각자의 삶에서 어떤 '사소한 기적'으로 돌아오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