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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종달리와 서귀포시 시흥이 잇대어 있는 바다로 올레 1코스에 속한다.
▲ 종달리바다 제주시 종달리와 서귀포시 시흥이 잇대어 있는 바다로 올레 1코스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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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길 살인사건으로 올레 1코스가 잠정적으로 폐쇄조치되고,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은 올레꾼들의 안전을 위해 관계기관과 논의하여 CCTV를 설치하는 방안에 대해 검토해 보겠다고 했다.

현대인들은 감시의 스트레스 속에 살아가고 있다. 곳곳에 설치된 CCTV가 우리의 삶을 일일이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범죄예방 혹은 치안의 차원에서 불가피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현대인들의 생활권 곳곳에 설치된 CCTV는 사생활을 침해하고 있다. 고정 설치된 CCTV 외에도 스마트폰과 각종 동영상 촬영 기기들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활 수 없었던 일들을 기록하게 했다.

그 덕분에 미궁에 빠질 뻔한 사건들이 해결되기도 했지만, 포털에서 종종 회자하는 '**녀'처럼 마녀사냥식 재판을 하는 것들이 일상화되기도 하는 문제도 있다. 이제 개인은 숨을 곳이 없다. 무슨 범죄행위를 하려고 숨는 것이 아니라도 곳곳에 설치된 CCTV를 분석하면 한 개인의 하루를 추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현대인들은 자기의사와 관계없이 곳곳에서 감시당하고 있는 셈이다.

올레길까지 CCTV를 설치하는 것은 반대한다

옹눈이오름에서 바라보면 전망되는 올레1코스
▲ 성산일출봉 옹눈이오름에서 바라보면 전망되는 올레1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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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은 명상과 묵상의 길이요, 휴식의 길이다. 그 영역까지 CCTV가 감시한다면, 한 개인의 명상과 묵상과 휴식까지도 고스란히 기록이 된다면 과연 그 길이 명상과 묵상과 휴식의 길이 될 수 있을까?

올레꾼의 안전이 보장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안전보장은 CCTV가 아니라, 올레 매뉴얼을 통해서 이뤄져야 하며, 올레길을 낀 마을과 연계해서 해결하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제주 올레측에서는 CCTV뿐 아니라, 경찰을 동원하여 올레길을 감시하는 방안까지도 검토하고 있다고 했는데, 그것도 명상과 묵상의 길과 어우러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오름을 걷는 사람들, 이런 곳에까지 CCTV가 설치된다면 별로 걷고 싶을 것 같지 않다.
▲ 용눈이오름 오름을 걷는 사람들, 이런 곳에까지 CCTV가 설치된다면 별로 걷고 싶을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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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생활하다 서울로 올라온 직후부터 올레길이 생겼기 때문에 내가 걸은 올레길은 두어 군데밖에는 없다. 그러나 그 길은 '올레길'이라는 이름이 붙기 전부터 내가 걸었던 길들이었으며, 이번에 사고가 난 올레 1코스는 내가 살던 종달리와 접해있는 곳이기에 나 홀로 많이 걸었던 길이기도 했다.

나는 제주도의 야생화를 담고 풍광을 카메라에 담으며 걸었기에 단순히 길을 따라서만 걷지는 않았다. 작은 야생화들을 담으려면 때론 땅에 엎드리기도 해야 하고, 다른 사람이 사진 찍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진득하게 몰입할 수 없어서 주로 혼자 다녔다. 길이 아닌 숲을 헤치고 다닐 때도 잦았다. 만일 그런 모습이 CCTV에 담긴다면, 그것을 분석한다면 아무 일이 없을 때에는 별문제가 없겠지만, 이번처럼 사건이 생기면 상당한 오해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범인이 잡힌 후 아내가 이렇게 말했다.

"당신, 지금도 거기 살았었으면 혹시라도 경찰에서 잡아갔을지도 모르겠다."

말인즉슨, 하필이면 그 즈음에 그곳에서 야생화 사진을 담거나 사진을 찍으며 들락날락했으면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지 않았겠느냐는 뜻이다.

제주도 올레길에 CCTV가 설치된다면, 나는 그 길을 걷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그곳만 아름다운 것이 아닌데 감시를 당해가며 그 길을 걸을 이유가 없다. 여행을 하거나 묵상이나 명상과 휴식의 시간만큼은 감시당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가 있고, 사람이 있는 올레길이 되어야 한다

오름에서 바라본 제주의 밭들
▲ 제주의 밭 오름에서 바라본 제주의 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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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이 만들어지던 초창기에 개인적으로 <제주 올레길에는 사람과 역사가 빠져 있다>라는 비판적인 글을 쓴 적이 있다(2011년 7월 5일). 물론 그 당시에는 강정마을과 관련된 글이긴 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올레길에는 제주인과 제주의 역사가 없다. 외지인만 넘치고, 수박 겉핥기식의 제주풍광만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그러나 올레길은 신선했다. 관광지라면 길을 넓히고 시멘트 포장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사고방식을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므로. 제주 올레길 이후, 곳곳에 올레길을 본딴 둘레길도 생기도 천천히 걷는 문화도 생겼으니 좋은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 길에 역사와 사람이 더해져야 하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그런 아쉬움을 채워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참에 엽기적인 살인사건이 발생했으니 다소 난감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CCTV가 정답은 아니라는 점이다.

어느 해 겨울, 흰눈이 쌓인 용눈이오름.
▲ 용눈이오름 어느 해 겨울, 흰눈이 쌓인 용눈이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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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올레길, #CC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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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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