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외부 전문위원 4명이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의 연임에 반대하며 동반 사퇴했다.
인권위 정보인권 특별전문위원인 남희섭 변리사, 류재정 변호사,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이종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4명은 24일 "정보인권 특별전문위원회(정보인권 특별전문위)가 이름뿐인 허울로 남는 것을 지켜보며 더는 현 위원장 체제의 인권위에서는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는 '입장문'을 통해 사퇴 의사를 밝혔다.
정보인권 특별전문위는 인권위에 정보인권 관련 내용을 자문하기 위해 2009년 10월 설립됐으며, 총 16명의 외부 전문가들로 꾸려졌다. 주로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나 정보사생활권 보호 문제 등을 다뤄왔다.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 담은 정보인권특별보고서, 2년 넘게 발간 안돼"이번에 사퇴한 전문위원들은 '정보인권 특별전문위의 식물화'를 사퇴 이유로 꼽았다. 이들은 "현 위원장 취임 이후 인권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비난이 있었지만, 국내의 정보인권 증진을 위한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기대감 때문에 위원직을 맡았다"며 "그러나 전문위가 식물화되는 것을 보면서 더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그동안 인권위에서 제대로 자문 역할을 할 기회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인터넷 표현의 자유·CCTV 문제 등을 담은 정보인권특별보고서 발간을 추진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2011년 5월 회의를 연 후 1년이 넘도록 한 번도 모인 적이 없고 최근 정보인권에 대한 현안이 많은데도 아무런 자문 역할도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보인권특별보고서가 2010년 4월 완성됐지만 인권위 전원위원회에서 두 차례 수정을 요구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해 2년 넘게 발간되지 않았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정보인권을 자신의 업적으로 삼으려 하는 현 위원장을 보며 참담한 마음이 들 뿐"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6월 21일에는 장주연 인권위 비상임위원이 현 위원장 연임에 반대하며 사퇴했다. 2010년 11월에도 같은 이유로 인권위 전문위원 61여 명이 동반사퇴 하는 파행을 겪은 바 있다.
박경신 교수는 25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인권위가 특별전문위원인 내게 일거리를 제대로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현 위원장이 정보인권 분야를 자신의 치적으로 생각하는데, 치적이라 보기에는 미진한 부분이 많다"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표현의 자유 확대를 위해 노력해왔다. 지난 5월 7일에는 표현의 자유를 주제로 집필한 <진실 유포죄>를 발간했다. 다음은 박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나름 전문위원인데... 정보인권 관련 외부 행사 두고 논의도 안 해"
- 언제부터 인권위 정보인권 특별전문위원직을 맡았나."2009년 10월 정보인권 특별전문위원회가 구성될 때 전문위원직 제의가 들어왔다. 안경환 전 위원장 시절에도 외부 전문위원직을 맡은 적이 있다."
- 인권 경력 전무 등의 이유로 '현병철 인권위'는 시작부터 논란이 많았다. 그런데도 전문위원직을 맡은 이유는."위원장에게 꼭 인권 관련 경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모르면 아는 사람에게 물어봐가면서 하면 된다. 그래서 정보인권 특별전문위원직을 받아들였다."
- 그런데 왜 갑자기 사퇴한 건가."일을 안 줬다. 정보인권 특별전문위는 처음에 7명으로 구성됐다. 그러나 정보인권특별보고서를 추진한 것 외에 한 일이 별로 없다. 2010년 11월 인권위원 집단사퇴 문제가 불거진 이후로는 더욱 심했다. 2011년 5월 인권위가 정보인권 특별전문위를 다시 구성하면서 전문위원을 더 뽑아 16명이 됐다. 그런데 이후에도 '보고서 작업을 다시 하자'는 이야기 외에는 진행되는 게 아무것도 없다.
또한, 인권위는 정보인권 관련 외부 행사를 두고 나와 논의하지도 않았다. 나름 전문위원인데. 그런 행사가 있다면 전문위원과 상의해서 준비해야 하지 않나. 다른 위원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외부 행사와 관련해 사전 연락을 받은 바 없다."
- 현 위원장 체제에서 정보인권이 향상됐다고 보는가."그런 것 같지는 않다. 현 위원장은 정보인권 관련된 인권위 업무를 자신의 치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 정보인권 분야에서는 큰 활약을 하지 못했다. 치적이라 보기에는 미진한 부분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