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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에 있는 노수신 유배지

노수신 적소
 노수신 적소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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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션과 민박집 그리고 식당으로 이루어진 산막이 마을을 지나면 강쪽으로 한옥이 보인다. 기와집으로 멀리서 보아도 품위가 있다. 이 집이 바로 조선 중기 정치가이자 문인인 노수신이 2년간 유배생활을 했던 곳이다. 한자로는 노수신 적소(謫所)라고 말하는데, 적소는 귀양지, 유배지의 다른 표현이다.

노수신(盧守愼 : 1515-1590)은 1515년 광주노씨인 아버지 노홍(盧鴻)과 성산이씨의 맏아들로 한양 낙선방에서 태어났다. 중종 때인 1543년 대과에 장원급제해 성균관 전적으로 벼슬길에 오른다. 그러나 1545년 을사사화 때 파직되었고, 1547년 순천으로 유배된다. 그해 양재역 벽서사건 때문에 진도로 이배되었고, 그 후 19년간 유배생활을 했다. 그는 그동안 독서와 저술에 몰두한다.

수월정 중건기
 수월정 중건기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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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5년 12월에 괴산 연하동(煙霞洞)으로 이배되었으며, 유배생활이 끝난 것은 선조가 즉위한 1567년 10월이었다. 그는 회재 이언적, 퇴계 이황 등과 교류하면서 학문을 논했고, 선조 즉위 후에는 정치적으로도 승승장구하여 영의정에 이르렀다. 그는 1590년 4월 7일 세상을 떠났으며, 7월 상주목 화령현 원천리(현재: 화서면 금산리)에 묻혔다. 그리고 충주의 팔봉서원과 상주의 도남서원 등에 모셔졌으니 그렇게 불행하게 산 것도 아니다.

노수신 유배지 입구에는 1994년에 세운 문간공 소재 노수신 유적비가 있다.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곳은 연하구곡(煙霞九曲)으로 알려진 경치 좋은 곳이다. 강의 한 가운데 섬이 있고, 그곳에 초옥(草屋)이 하나 있었다. 초옥의 이름은 수월정(水月亭)이며, 괴산댐 건설로 수몰되어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노수신 선생의 애환이 깃든 이 수월정은 후손들이 어렵게 보존하였다. 다행히 1987년 충북 기념물 제74호가 되어 문화재로 보호받고 있다.

노수신 적소 수월정
 노수신 적소 수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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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 노수신은 학자, 정치가, 사상가로 이름을 날렸으며 문집인 『소재집(蘇齋集)』을 남겼다. 1602년 천안군수로 있던 양자 노대하가 목판으로 문집을 발간했다. 그리고 1665년 증손인 노경명이 원집 10권, 내집 2권, 도합 8책의 증보판을 냈다. 이 중 1권에서 6권까지는 시가, 7권에는 잡저가, 8권에는 소차가, 9,10권에는 행장과 묘비명이 들어 있다.

수월당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계단을 올라 바깥문을 들어가야 한다. 문간에 서니 안채인 수월정이 보인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나는 가운데 마루에 올라 수월정 중건기를 살펴본다. 1987년(정묘) 가을, 후학인 광주이씨 이복(李馥)이 지었다.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괴산 동쪽 20리에 천장봉이 있고, 그 아래 연하동이 있었다. 이곳은 광주노씨의 땅으로 소재 선생이 유배 왔던 곳이다. 1957년 칠성댐이 생기면서 위로 옮겨 세웠다. 그 후 비가 새고 썩고 했으나 1987년 문화재로 지정받아 중건할 수 있었다. 우리 후손들은 산고수장한 이곳에서 수시로 강독하여 선생의 사상을 이어받고, 물과 달과 더불어 시문을 지었으면 좋겠다. 

산막이 선착장 풍경

산막이 선착장
 산막이 선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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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수신 유배지를 나오면 길은 강변을 따라 자연스럽게 선착장으로 이어진다. 강에는 두 개의 섬이 조성되고 있다. 그 중 하나의 섬에는 연하담이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섬 위의 소나무가 자리를 잡으면 훨씬 멋있을 것 같다. 그리고 물 건너편 산 위에는 2층 누각으로 새롭게 조성된 환벽정이 있다. 등잔봉과 천장봉 사이 전망대에서 보면, 환벽정이 있는 땅의 모양새가 한반도를 닮았다고 한다.

나는 유람선 선착장으로 간다. 이곳의 공식 이름은 산막이 선착장이다. 이곳에서는 상류인 갈론 선착장과 하류인 차돌바위 선착장까지 갈 수 있다. 그리고 건너편 환벽정 선착장으로도 갈 수 있다. 승선 요금은 산막이에서 차돌바위까지가 5,000원이고, 차돌바위에서 출발 호수 전체 12㎞을 운항하는 요금은 10,000원이다. 저녁이 되어서인지 선착장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산막이길 개념도
 산막이길 개념도
ⓒ 괴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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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배를 타지 않고 3.1㎞ 산막이길을 걸어갈 것이다. 선착장 옆의 소나무숲을 지나면 망초대가 무성한 산딸기길로 들어선다. 길이 끝나는 지점에 물레방아가 만들어져 있다. 물레방아는 천장봉 쪽에서 내려오는 물을 이용 돌아가게 만들었다. 이 계곡에 놓인 다리를 건너면 본격적으로 산막이 옛길이 시작된다.  

산막이 옛길에서 신선이 되는 사람들

다리를 건넌 다음에는 진달래동산 오르막길이 있다. 고갯마루에 이르니 괴산과 산막이길을 노래한 시판이 이젤 위에 고정되어 있다. 괴산 출신 문인들의 합동시화전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게시된 시가 이삼십 편은 되어 보인다. 그 중 김수영, 백은숙, 윤응길 시인의 작품이 인상적이다. 강을 노래하고 길을 노래하고 신선을 노래했다.

윤응길의 '신선이 되는 길'
 윤응길의 '신선이 되는 길'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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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시인은 괴산군 불정면 삼방리 출신인가 보다. 굽이 굽이 돌고 돌아 흐르는 달래강을 노래했다 백은숙 시인은 길 위에서 바람 한 줄기 가슴으로 맞고 싶은 심정을 노래했다. 그리고 윤응길 시인은 '신선이 되는 길'에서 산막이 옛길에 들어서자 자신이 신선이 됨을 노래하고 있다.

산이 매우 아름다워
그 비경 버릴까 하여
화백도 차마 묵을 대지 못하고
거문고, 가야금 소리가 아무리 고와도
사시사철 쪼르륵, 쫄쫄, 쏴쏴거리며
흐르는 녹수 소리와 바꿀 수가 없다.
따라서 온갖 새들이 찌지, 째지구, 오옥거리니
명창도 끝내 입을 다물고 가는 곳
갈론, 산막이 옛길에...
어느새 해가 서산에 저문다.
신선이 따로 있나 하였더니
오늘 내가 바로 신선이었네.  

산막이길과 함께 새로운 길을 찾은 비학봉 마을

산막이옛길
 산막이옛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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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막이 옛길을 생태관광지로 만들어보자는 계획은 2009년 세워졌다. 칠성면 외사리 사오랑마을에서 사은리 산막이 마을까지 이어지던 산길을 자연친화적으로 개발해서 사람들이 찾을 수 있도록 만들자는 뜻에서다. 군에서 13억원을 지원하고 괴산댐 주변 4개 마을이 참여하여 사업이 진행되었다. 이때 강조된 개념이 자연친화적이면서도 스토리가 있는 명품길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명품길이 만들어지자, 사람들이 찾기 시작했고, 주민들도 지속가능한 마을 발전을 추구하게 되었다. 단순한 볼거리 외에 즐길 거리, 먹거리, 체험거리를 제공함으로써 수요자와 공급자 모두 만족하는 모델케이스를 만들어갔던 것이다. 산막이 옛길의 성공은 농촌마을 개발의 모범이 되었고, 마을의 소득증대에도 크게 기여했다. 관광자원 개발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 그것이 산막이길이 추구한 목표이자 결과다.

외사리 마을체험관
 외사리 마을체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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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막이옛길 개발과 운영에 참여에 참여하고 있는 마을은 사오랑리, 갈론리, 외사리, 학동리이다. 이들 4개 마을을 비학봉 마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숲이랑 사오랑 정보화마을은 산막이옛길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산자수려한 군자산과 천장봉 등이 있어 숲생태 체험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갈론리는 갈은 구곡의 입구에 있는 마을로 자연이 가장 잘 보존된 지역이다. 외사리에는 외사초교 자리에 만든 마을체험관이 있다. 학동리는 산막이옛길의 하류에 있다.

비학봉 마을은 지금도 성공적인 농촌마을을 만드는데 힘을 합치고 있다. 우리는 저녁을 사오랑 마을에서 먹었고, 잠은 외사리에서 잤다. 그들은 당장 돈이 되는 소득사업에 치중하기보다, 사계절 다시 찾고 싶은 마을을 만들어가고 있다. 더 나가 이곳에 와서 진짜 살아보고 싶은 마을로 만들자고 노력하고 있다. 그들은 자연과 문화 그리고 경제가 어우러진 살기 좋은 농촌마을을 꿈꾸고 있다.    

연하구곡과 연하구곡가

노수신의 후손인 노성도(盧性度: 1819-1893)가 칠성면 사은리에서 청천면 운교리에 이르는 달천의 아름다운 곳 9군데를 구곡으로 설정하고 시를 지은 데서 연유했다. 제1곡: 탑암(塔巖), 제2곡: 뇌정암(雷霆巖), 제3곡: 형제암(兄弟巖), 제4곡: 전탄(箭灘), 제5곡: 사기암(詞起巖), 제6곡: 무담(武潭), 제7곡: 구암(龜巖), 제8곡: 사담(紗潭), 제9곡: 병암(屛巖). 이들 중 탑암, 구암, 병암은 현재도 확인이 된다. 노성도가 지은 연하구곡가 중 서시는 다음과 같다.

연하구곡의 제1곡 탑암
 연하구곡의 제1곡 탑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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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하동 안에는 선계의 영령들이 살고 있어       煙霞洞裏有仙靈
                        수풀 아래 흐르는 시내 굽이굽이 맑구나.         林下川流曲曲淸
                        고요하고 한가한 절경을 찾아가고자 하니        欲向靜中閒絶處
                        노랫소리 노젓는 소리 꾀꼬리 소리 들리누나.   淸歌欸乃又鸝聲

덧붙이는 글 | 산막이옛길의 누리집은 http://sanmaki.goesan.go.kr/이다.



태그:#산막이옛길, #노수신 유배지, #수월정, #연하구곡, #비학봉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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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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