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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자서전
▲ 책표지 영혼의 자서전
ⓒ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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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통해 먼저 만났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다 읽고 난 뒤에 느꼈던 벅찬 감동, 꽤 오랫동안 마음에 여울을 만들었는데, <영혼의 자서전>을 덮고 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동일하게 내 마음과 정신과 영혼을 지금도 여전히 각성시킨다.
책 한 권의 힘이란 바로 이런 것인가 보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오래오래 마음에 여울을 만들고 깊고 넓게 파문을 일으키는 것, 그리고 그때 받은 감동과 자극과 각성이 긴 시간 지난 뒤에도 그 책을 손으로 쓰다듬어보기만 해도, 책장을 넘겨만 보아도, 내가 그었던 밑줄을 발견하고 그때 받은 감동이 새롭게 떠올라 감동의 잔물결을 일으키는 것. 그것이 바로 책의 힘이다.

<타오르는 책>(남진우)이란 시(詩)에서 "그 옛날에는 읽은 책 모두 '불'이었고 '타오르는 책'을 읽었는데 요즘은 타오르는 책은 어디에도 없고 단단한 표정의 책들이 반질반질한 표지를 자랑하며 차가운 말만 건넨다"고, "아무리 눈에 불을 켜고 책을 읽어도 타오르지 않는 책만 차곡차곡 쌓여간다"고 탄식했다.

식어버린 죽은 말들로 가득 찬 감옥에 갇혀, 내 잃어버린 불을 꿈꾼다고. 하루에도 수없이 많이 쏟아져 나오는 책의 홍수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지만, 영혼과 마음과 삶에 '불'처럼 다가오고 '불'을 타오르게 하는 책, 불의 책을 만나기란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시인이 말한 불의 책, 그 책들 가운데 나에겐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와 <영혼의 자서전> 역시 그 불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책을 읽으면서, 읽고 나서도 마음속에 지속적인 불씨를 남기고 있어 이따금 상기하면 다시 불꽃이 이는 책. 읽고 나서,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읽어도 마음과 영혼에 파문을 일으키며 마음을 고무시키고 일깨우기에.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누구?

그는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20세기 문학의 구도자로 불리는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1885년 2월 18일, 크레타에서 태어났다. 터키의 지배 하에서 기독교인 박해 사건과 독립전쟁을 겪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이런 경험으로 인해 평생 자유를 찾으려는 갈망과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투쟁적 인간상'을 부르짖게 된다. 니체의 영향을 많이 받은 그는 <최후의 유혹>이란 책에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인간으로 묘사하면서 그의 고뇌와 행적을 묘사하기도 했지만, 영혼의 자유를 노래하며 구도자처럼 살았던 그의 생애는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존 스타인 백은 20세기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하나로 카잔차키스를 꼽았고 1957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카뮈는 카잔차키스야말로 자신보다 백 번은 노벨문학상을 더 받아야 했다고 말했으며, 슈바이처는 자신에게 깊은 감동을 준 사람은 카잔차키스밖에 없었다고 했다. 콜린 윌슨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그리스인이라는 것은 비극이라며, 러시아어로 작품을 썼다면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영혼의 자서전>에서 보듯이 그는 <오름>의 꿈과 투쟁을 추구하며 평생 방랑했다. 그는 파리에서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에게 공부했으며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문학과 미술을 공부, 예술에 탐닉하며 보냈다. 카잔차키스는 스페인, 영국, 러시아, 이집트, 이스라엘, 중국, 일본 등지를 두루 여행했으며 이때 쓴 글을 신문과 잡지에 연재했다가 후에 여행기로 출간하기도 했다. 두 차례 노벨 문학상 후보로 지명되기도 하였다.

<영혼의 자서전> 피와 땀과 눈물로 얼룩진 한 영혼의 궤적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은 피와 땀과 눈물로 얼룩진 한 영혼의 궤적의 기록이다. 그는 '불멸한 인간의 투쟁과 위대성을 주제로 삼고 있다. 옮긴 이의 말대로, '크레타에서 태어나 그리스 조상들의 찬란한 문화적 배경을 섭렵해 자기 나름대로 정신적인 영토를 이루어나가는 작가가 이제 죽음을 맞으려는 준비를 해가며 써놓은 글'이며 <신>과의 투쟁으로 점철된 인생을 쏟아 놓고 있다. 작가의 말에서 '그대는 이 지면에서 내 핏방울들이 남긴 붉은 자취를, 인간의 정열과 사상을 찾아다닌 내 여로의 자취를 찾게 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그가 살아온 생애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시각, 후각, 촉각, 미각, 청각, 지성 - 나는 내 연장들을 거둔다. 밤이 되었고, 하루의 일은 끝났다. 나는 두더지처럼 내 집으로, 땅으로 돌아간다. 지쳤거나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은 아니다. 나는 피곤하지 않다. 하지만 날이 저물었다. 해는 졌고 언덕들은 희미하다. 내 마음의 산맥에는 아직 산꼭대기에 빛이 조금 남았지만 성스러운 밤이 감돌고 있으니, 밤은 대지로부터 솟아 나오고, 하늘로부터 내려온다. 빛은 항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구원이 없음을 안다. 빛은 항복하지 않겠지만, 숨을 거두어야 하리라."

친구들과 해가지도록 신나게 친구들과 놀다가도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오라고 부르면 갖고 놀던 것들 모두 내려놓고 가야 하듯, 우리는 못다 한 일들이 많다고 하여도 부르면 누구나 돌아가야 한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살아온 생애를 더듬어 기록한 <영혼의 자서전>은 그의 어린 시절부터 죽음을 앞둔 시점 까지의 삶을 두루 꿰고 있다. 그는 "위대한 세이렌들과 그리스도와 붓다와 레닌처럼 죽은 다음에도 불멸한 자들만이 나를 매혹시켰다. 젊었을 적부터 나는 그들의 발치에 앉아 사랑이 넘치는 그들의 유혹적인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고 말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짧고 유한한 삶의 시간의 폭력 앞에서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열정적이고 집중하며 자기를 완전 연소하는 삶을 살아왔는지를 느끼며 내 마음 깊숙이 파문을 일으키는 것을 경험했다. 무엇보다도 나는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작가로서 살게 된 연유에 대해 그의 피가 '잉크'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에 대해 책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포착되었다. 그의 작가적 삶, 어휘를 만지며 살게 된 동기들이 길고 깊은 이랑을 만들고 있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의 피를 잉크로 만든 것은 그의 아버지 때문이라고 적고 있다.

"나는 아버지의 입김을 받으며 살아가기가 싫었다... (중략) 그렇게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나는 행동의 터전에서 위대한 투쟁자가 되는 대신, 하고 싶었던 모든 것을 글로 써놓을 도리밖에 없었다. 내 피를 잉크로 바꿔놓은 사람은 아버지였다."(본문 660쪽)

한편으로는 위대한 성인들의 삶을 흉내 낼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도 말했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작가는 '먹은 음식으로 뭘 하는가를 가르쳐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나는 말해 줄 수 있다'고 했다. 혹자는 먹은 음식으로 비계와 똥을 만들고, 혹자는 일과 좋은 유머에 쓰고, 또 혹자는 하느님께 돌린다'고. 그래서 인간에겐 세 가지 부류가 있다고. 조르바가 모든 사물을 처음 보듯 했고 기적처럼 감탄하며 온몸으로 충만한 삶을 살았다면,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리스인 조르바>나, <영혼의 자서전>이 고백에서도 알 수 잇듯이 '활자'를 다루는 삶을 살았다. 조르바의 삶은 아몬드나무에게 하나님에 대해 말해 달라고 했을 때 아몬드 꽃을 피워냈듯이, 온몸으로 불멸의 삶을 살듯 그렇게 자기연소의 삶을 살았고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의 유한한 삶 속에서 그가 먹은 음식과 그가 읽은 수많은 책들과 꿈꾸며 여행과 방랑 등으로 그가 경험한 모든 것으로 글의 꽃을 피웠다.

누에가 먹어치운 뽕잎을 비단실로 곱게 만들어내는 것처럼, 장미넝쿨이 장미꽃을 피우기 위해 겨우내 참을성 있게 믿고 기다리면서 장미꽃만 생각하면서 빗발이 후려치고 바람이 잎사귀를 벗겨도 장미꽃을 만들어내듯이, 돋보기로 태양광선을 한 곳에만 집중시키면 태양열이 분산되지 않고 그 지점에만 모여 불이 붙게 되듯이,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갱도 속에서 광맥을 찾듯이 글의 광맥을 찾고 다루며 작품을 만들었다. 자신이 먹은 음식 그의 전 인생에 얻은 경험들로 글의 광맥을 캤다. 어휘의 비단실을 뽑으며 창조의 삶을 살았던 작가의 삶에 나는 매료되었다. 

이열치열, 한여름 폭염 속에서 '불'을 만나 행복

<영혼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문득 사람은 '누구든지 무엇을 하든지 뭔가를 만들며 살아간다'는 것을 생각했고, '자신의 삶의 분명한 목적과 사명을 발견하고 찾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했고, '발견한 사명을 따라 완전 연소의 삶, 집중하고 몰입하여 제 삶을 완전 연소할 만큼 살아내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그리고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내가 먹은 음식으로 무엇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누에가 먹어댄 뽕나무 잎을 모두 비단실로 만들어 내듯, 적도 지역에 기생한다는 실처럼 생긴 벌레가 인간의 피부를 뚫고 들어가 살을 파먹을 때, 무당을 불러 마술피리를 불어 벌레는 홀려내어 밖으로 빠져 나오게 하듯이, 유충이 비밀스러운 과정, 그 인내와 기다림으로 나비가 되듯이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의 생애동안 먹은 음식과 책들과 여행과 꿈 방랑과 숱한 경험들을 펜을 들어 산고의 글을 써서 배설했다. 그는 어휘가 위대한 폭발적인 힘을 내포하는 견고한 껍질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먹은 음식으로 내가 살아낸 시간의 산고 끝에 무엇을 짰고 짜고 있는가. 사람들은 그가 먹은 음식으로 무엇인가를 만들며 소모하며 살아가는데... 나는 여전히 남들의 시간까지도 구걸하고 싶을 정도로 시간이 모자란다고 하면서, 뭔가를 만드는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여전히 쓸데없는 데 시간을 보내며 빈둥거린다. 그러나 이 한 가지로 위안 삼아보련다. '인간은 서두르지만, 신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나무처럼 나는 바람에 시달리고, 태양과 비를 마음 놓고 기다릴지니, 오랫동안 기다리던 꽃과 열매의 시간이 마침내 오리라"(본문 647쪽)는 것을 믿으며, 기다리며, 기대하며, 오늘도 한 걸음씩 내디뎌 본다.

'불'을 지피는 책, '타오르는 책'을 만나기 힘든 날들 속에 좋은 책, '불'의 책을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지. 이열치열. 한 여름 폭염 속에서 타오르는 책을 만나 행복했다.

덧붙이는 글 | <영혼의 자서전>상·하 (니코스 카잔차키스 씀 | 안정효 옮김 | 열린책들 | 2009.11 | 1만800원)



영혼의 자서전 -상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안정효 옮김, 열린책들(2009)


태그:#니코스카잔차키스, #영혼의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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