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이 고백하는 사도신경이 있습니다. 개신교의 예배나 가톨릭의 미사 때 고백하는 일종의 기도문이라 할 수 있죠.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기도문이 아니라 '신조'입니다. 하지만 그 신조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담고 있기에 '경전'만큼이나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도신경을 주문 외우듯 하는 수준으로 그칠 일은 아닙니다. 본래 사도신경을 가리키는 라틴어 '심볼룸 아포스톨로움'(Symbolum Apostolorum)에서 '심볼룸'이 '반쪽'을 뜻합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짝맞춤'이라 할 수 있죠. 그걸 확대하면 이 세상과 초월적 세상의 '짝맞춤', 나와 공동체의 '짝맞춤', 교회와 세상의 '짝맞춤'으로 해석할 수 있겠죠. 그만큼 사도신경은 단순한 주문이 아닌 신앙의 지평을 넓혀가야 할 실재입니다.
"우리는 3차원 공간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차원에 계신 더 힘있고, 더 풍요로운 어떤 존재를 향해 우리 방식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3차원의 언어로 '나는 당신을 믿나이다.'하고 위로 '짝' 해 드리면, 구님은 그 초월적인 은총을, 당신의 임재를 '요거'하고 밑으로 짝을 딱 맞춰 주셔서 하나가 된다. 주님의 기운이, 천상의 가치가, 천국이, 사도신경 반쪽을 통해서 마주 내려오는 것이다."(21쪽)차동엽 신부의 새 책 <사도신경>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이미 <잊혀진 질문>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차동엽 신부는 이 책을 통해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이 진정한 '짝맞춤 신앙'을 회복토록 초청하고 있는 셈이죠. 하나님과 인간, 교회와 세상에 참된 소통과 통섭의 길을 열고자 하는 것 말입니다. 물론 라틴어 원전에 대한 해석을 가미하고 있으니 그 의미는 남다를 수밖에 없겠죠.
"Crdedo in Deum"(크레도 인 데움)이는 라틴어 원어로 된 사도신경의 첫머리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그 뜻은 '나는 믿는다, 하나님을'이고요. 이를 통해 깨닫도록 하는 바가 있겠죠. 궁극적인 믿음의 주체는 바로 '나'라는 사실이 그것입니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신 앞에 선 단독자'라는 의미가 그것이겠죠. 그 다음에 이어지는 '하나님'도 하늘과 땅의 창조주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하죠.
물론 이 같은 원문의 뜻에 대해 희랍적인 사고를 지닌 분들은 그런 문제를 제기할수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말이죠. 어떻게 하나님이 하늘과 땅의 창조주이냐는 질문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차동엽 신부는 성경에 기초한 사도신경의 고백이 본래 히브리적 사유에 기인한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를테면 고통이 어떻게 발생했느냐보다 왜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우주는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가보다 왜 존재하는가에 초점을 맞춘 것들 말이죠.
"우주의 기원이 하나님의 창조에 있다는 사실만 선언할 뿐 '어떻게 창조되었는가'라는 과학적 질문에는 관심이 없었다. 6일간의 창조에 대한 기록 역시 창조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고 보기보다는 창조의 '질서' 곧 왜 인간이 창조계의 절정에 놓여 있는가에 대한 설명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73쪽)"sanctam Ecclesiam catholicam"(상탐 에클레시암 카톨리캄)이는 사도신경 후반부에 있는 '거룩한 공교회(거룩하고 보편된 교회)'를 의미하는 라틴어 원문이다. 이를 두고 차동엽 신부는 교회는 개신교 가톨릭 정교회 할 것 없이 모두가 하나임을 밝히는 뜻으로 해석한다. 아울러 교회의 '거룩함', '보편성' 그리고 '사도성'에 대해서도 풀어나간다.
그런 흐름 속에서 천주교 신자와 개신교 신자의 논쟁거리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합니다. 이른바 '연옥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그것이라고 하죠. 그에 대해 차동엽 신부는 논란이 많긴 하지만 연옥은 천국과 지옥의 다음에 딸린 세 번째 방이 아니라 '곁방'으로 풀어냅니다. 그런 구조로 보면 천주교나 개신교나 모두가 '하나'라는 개념에 도달할 수 있다는 뜻이겠죠.
그리스도인들에게 세 가지 보물이 있다고 하는 차동엽 신부. 그 첫째를 '성경'으로, 둘째를 '주님의 기도'로, 마지막 셋째를 '사도신경'으로 그는 꼽습니다. 물론 그 순서에 맞춰 <맥으로 읽는 성경>과 <통하는 기도>로 이미 출간했다고 하니 그 또한 읽어볼 일이겠죠. 다만 하나님과 인간의 짝맞춤으로 사도신경을 풀어가고 있는 이 책을 통해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이 더 깊은 신앙의 젖줄을 퍼올렸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