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현 뉴타운으로 대표되는 마포구 일대는 서울 강북권의 대표적인 재개발 사업 구역 중 하나다. 흔히 어떤 지역이 재개발 사업에 들어간다고 하면 주민들이 보상이나 분양권 등으로 혜택을 받아 이익을 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꼭 그렇지가 않다. 서울 마포구 염리2구역에서 벌어지는 재개발은 문제가 많았다. 추가 부담금 수 억 원이 늘어나는 등 재개발을 그대로 진행할 경우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었기 때문이다.
☞ 아이튠스에서 <이털남> 듣기☞ 오마이TV에서 <이털남> 듣기오마이뉴스 팟캐스트 방송 <이슈 털어주는 남자>(이털남)는 7일 염리동에서 벌어지는 재개발 사업 추진 현황에 대해 여성학자이자 마포 염리2구역 조합원인 오숙희 조합원과 인터뷰를 했다. 오 조합원은 이대로 재개발 사업을 진행한다면 용산 참사를 다룬 <두개의 문>과 같은 일이 또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며 재개발 구역 주민으로서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염리2구역의 다가구 주택들은 대부분 작은 규모에 방이 여러 개 나있어 많은 사람이 붙어사는 전형적인 '달동네'를 구성하고 있다고 한다. 오 조합원만 해도 반지하에 실 평수 12평, 거기다가 방 3개인 다가구 주택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이를 허물고 새로 지으면서 원주민들에게 분양하는 조건이 황당하다.
오 조합원은 "똑같은 규모의 집이 3억 2천만 원에 팔렸는데 재개발에서 재산 평가가 1억 4천만 원이 나왔다"며 "1대1 규모로 보상해주는 것이 아니고 똑같은 평수의 집으로 갈 경우 저는 2억 5천만 원을 더 주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재산 평가가 애초에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당장 큰 돈이 없는 주민의 경우 유일한 재산이 한 순간에 반 토막 난다는 것이다.
또 공사를 하다가 암반이 나오면 그 공사비까지도 조합원들이 부담해야 한다고 한다. 오 조합원은 "동네가 언덕 위에 있기 때문에 암반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며 "원래 기초공사는 건설사에서 다 부담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애초에 가계약을 할 때는 이런 조항이 없었는데 슬그머니 바뀌었다고 오 조합원은 주장했다. 이렇게 되면 추가 공사비가 계속 나오게 되고 그 부분은 분양가 상승으로 연결되어 조합원의 부담이 높아지게 된다.
오 조합원은 "심지어 미분양 분에 대해서도 조합원들이 책임져야 한다"며 "오히려 이득이 나면 GS(건설사)가 반을 가져간다"고 말했다. 멀쩡히 동네에 살고 있던 조합원 입장에서는 도저히 승낙할 수 없는 조건이라는 것.
오 조합원의 말에 따르면 한마디로 건설사와 주민 간의 일종의 불평등 계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조합원들은 어째서 이러한 계약을 체결하게 된 것일까.
오 조합원은 "이른바 '날치기 총회'를 통해서 진행되었다"고 주장했다. 조합원이 총회를 할 때에는 조합원의 10%가 참여해야 하고 40%가 서면 조사를 통해 응해서 50%의 정족수를 채워야한다. 이 과정에서 조합 임원들과 건설사가 10%의 조합원을 매수하고 또 사람을 고용하여 40%의 조합원들의 집에 가가호호 방문, 재개발과 관련해 귀에 단 소리를 해서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오 조합원은 "주민 대부분이 고연령층이고 비정규직 종사자가 많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현실을 파악하기 위해 사이버 공간을 이용하기도 어렵고, 깨알 같이 복잡한 설명서를 읽어내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이런 불평등한 계약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조합원들이 뭉쳐서 단체 행동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조합원들은 전체 조합원 명부를 제공받지 못했다고 한다. 개인정보 보호라는 구실 탓에 볼 수가 없었다는 것. 실제로 염리2구역 조합원의 인적 구성은 원주민 40%, 타지역에 거주하는 외지 소유자 60%이기 때문에 명부 없이는 단체행동이 불가능하다.
조합장과 건설사는 조합원들을 흐트러놓고 돈으로 총회를 열어서 용역을 고용, 총회에서 날치기를 진행하고 사라지는 식으로 일방독주를 해왔고, 조합원들은 이를 제어할 방법 없이 끌려왔다. 오 조합원은 "마포구청은 행정소송 등 자기들이 불이익당하면 책임질 거냐며 명부를 보여주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도정법상 민 대 민의 문제이기 때문에 구청장의 의지 없이는 개입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다행히 8월 2일 이후 조합원 명부를 보여줘야 한다는 법률이 개정되었다. 우편을 통해서 재개발 사업 현황을 조합원들에게 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오 조합원은 "이제 사람들이 이 말을 얼마나 신뢰해 줄지가 문제"라고 밝혔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럴 바에야 차라리 재개발 사업을 중지하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고 한다. 총회 할 때마다 공사비를 올려서 주민 부담이 애초보다 약 1.6배 올랐다고 한다. 이렇게 손해를 보면서 재개발을 하느니 그대로 살고 싶다는 것이다. 오 조합원의 말에 따르면 할아버지 한 분이 방 한 칸 쓰면서 나머지 작은방 월세 주는 것으로 노후를 보내고 계시는데 이렇게 아파트가 올라오면 돈 한 푼 못 번다며 생존의 어려움을 토로했다고 한다.
오 조합원은 서울시가 진행하는 '마을 만들기' 사업을 예로 들며 지리적 위치상 삼청동, 홍대 앞 같은 아날로그식 문화 마을 조성이 더 현실성 있는 복안이라고 밝혔다. 서강대, 이대 부근이며, 마포아트센터가 옆에 있고, 공덕역에 공항철도가 있어 중국인, 일본인 게스트하우스가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의 분위기 있는 동네를 조성하는 것이 더 사업성도 있고 현실적으로 '일석이조'라는 것이다.
다만 오 조합원은 "행정소송으로 역습을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서울시 공무원들이 너무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마포구청에서 주민에 대한 지원이 너무 부족해서 어려움이 있으니 일종의 주민 진정 제도의 차원에서 사회정의를 위해 서울시가 나서줘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오 조합원은 "어떤 주민은 이래죽으나 저래죽으나 내 집 지키다가 죽겠다고 한다"며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생존권 침해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