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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12일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이 폭로해 이슈가 된 기무사 사찰 논란과 관련해 17일 오후 여의도 국회 민주노동당 당대표실에서 열린 '국군기무사령관 민간인 불법 사찰 관련 피해자 증언 및 2차 동영상 공개 기자회견'에서 민주노동당 엄윤섭(오른쪽)씨가 자신의 모습이 촬영된 동영상을 보이며 기무사로부터 불법 사찰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2009년 8월 12일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이 폭로해 이슈가 된 기무사 사찰 논란과 관련해 17일 오후 여의도 국회 민주노동당 당대표실에서 열린 '국군기무사령관 민간인 불법 사찰 관련 피해자 증언 및 2차 동영상 공개 기자회견'에서 민주노동당 엄윤섭(오른쪽)씨가 자신의 모습이 촬영된 동영상을 보이며 기무사로부터 불법 사찰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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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12일 이정희 당시 국회의원은 국회 정론관에서 기무사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을 폭로했다. 8월 5일 국군기무사의 신○섭 대위(현재 소령으로 진급)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정리해고 반대 투쟁을 지지하는 평택역 집회를 캠코더로 촬영하다 시위 군중에게 적발되서 빼앗긴 캠코더의 6밀리 테이프와 사찰기록을 적은 수첩, 메모리칩에는 당시 민주노동당 당원과 부인, 노동조합 활동가들의 활동내용이 고스란히 나와 있었다.

당시 서울 관악구에 살던 민주노동당 당원 엄윤섭씨는 자신의 공방에서 일하다가 골목에 나와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이 촬영되었다. 그는 자신은 물론 아내 안아무개씨가  일하는 약국과 아내가 출근하는 모습과 약국에서 일하는 모습까지 사찰된 모습을 보고 공포에 떨었다.

다음은 2009년 당시 <오마이뉴스>가 엄윤섭씨와 나눈 일문 일답 내용이다.

- 사찰 동영상 보고 어떤 느낌이 들었나.
"작업실을 찍은 동영상을 보고 소름끼치고 경악스럽고 공포스러웠다. 아무런 상관도 없는 집사람은 그것 때문에 잠을 못 잔다. 이명박 정권은 가정파괴범 아닌가?"

- 기무사에서 뭔가 근거를 가지고 사찰을 했을 텐데 실마리가 될 만한 것은 없나.
"지난 총선(2008년) 때 민주노동당 후보로 나선 적이 있다. 이후 당 활동을 접었다. 생활도 어렵고 논문도 써야 해서…. 동영상에 촬영된 곳은 집 같은데, 사실 작업실이다. 내가 물건을 만들어 파는…."

- 대학원에서 무슨 공부를 하고 있나.
"신재생에너지 중에서 연료전지에 관한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다른 사람 피해볼까... 죽음으로 속죄한다"

보라매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엄윤섭님 영정
▲ 엄윤섭 영정 보라매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엄윤섭님 영정
ⓒ 최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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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2일. 기무사 민간인 불법사찰이 폭로된 지 만 3년을 넘기지 못하고 지난 7일 엄윤섭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엄윤섭씨는 1986년 서울대 김세진·이재호 열사의 사망을 목격한 뒤로 우울증을 앓아왔고, 기무사의 민간인 불법사찰과 그 이후로 이어진 소송 과정에서 우울증이 더 심해졌다고 한다.

8일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장례식장을 찾았다. 고인이 생을 달리한 지 이틀째날, 장례식장에는 생전에 동네에서 함께 만나던 친구들과 가족들이 슬픔에 잠겨있었다. 엄윤섭씨와 한 동네에 살던 김영석씨를 만났다.

"윤섭이는 자신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피해보는 것을 늘 걱정했다. 사찰 동영상에 나오는 그곳은 공방인데, 마을 사랑방 같은 곳이었다. 기무사 사찰이 폭로되자 사람들을 그곳에 오지 못하게 했다.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걱정하며 가슴 아파했다. 그런 친구가 가족에게 글을 남겼는데… 죽음으로 속죄 한다고…. 결국 기무사가 사람을 죽였다."

과거 엄윤섭씨와 함께 민주노동당 관악구위원회에서 함께 활동했던 서주호씨는 평소에 그를 챙기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 한다.

"윤섭이 형은 전화 받는 것도 부담스러워 했어요. 몇 번 전화를 하면, 저희 집 앞에 와서 제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어요. 그러면 새벽까지 동네에서 이야기하다 헤어지곤 했는데… 활동한다고 형을 더 찾아 보지 못해서 너무 미안해요."

지난 4월 총선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은 민간인 불법사찰 당시 김종태 기무사령관을 경북 상주시 국회의원 후보로 공천했다. 당시 김종태 후보는 TV 토론회에서 "기무사는 민간인을 사찰한 적도 없고 이유도 없다"고 했으며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는 "만약 불법사찰 했다는 증거가 한 건이라도 나온다면 내 생명이라도 내놓겠다"고 말했다.

기무사 민간인 불법사찰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국군기무사령부는 1, 2심 재판 내내 민주노동당 관련자들에 대한 사건은 아직도 수사가 진행 중이어서 증거를 제출할 수 없고, 민간인 사찰에 대해서는 경찰과의 공조 수사로 합법적인 절차에 따른 수사 과정에서 확보한 자료라고 주장했다.

민간인 불법사찰이 폭로된 지 만 3년이 지나고 있는 이때까지 이렇다 할 수사 결과를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계속 수사 중'이라는 이들의 표현은 고인이 된 엄윤섭씨에게는 공포로 다가왔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공포'에 세상을 떠난 고인의 서러운 죽음

2012년 5월 3일 서울고등법원 판결문
▲ 판결문 2012년 5월 3일 서울고등법원 판결문
ⓒ 최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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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5월 3일 고등법원 민사합의 21부(황적화, 이근영, 주진암 판사)에서 기무사 민간인 사찰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의 2심 판결이 선고되었다. 당시 판결은 사찰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었으며, 기무사가 경찰청과 합법적인 공조 수사를 한 것에 대해서도 불법이라고 판시했다. 법원 피해자 15명에게 모두 1억2000여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기무사령부는 (중략) 민간인에 대한 첩보의 수집이나 수사를 할 수 없으므로, 일반 사법경찰과 공조수사를 하는 경우에도 정보의 교류나 공유 등 정보 및 보안업무의 통합기능 수행을  위한 필요한 범위를 넘어서 국군 기무사령부 소속 수사관이 직접 민간인에 대한 첩보의 수집이나 수사를 할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게 보지 않을 경우 공조수사라는 명목 아래 민간인 사찰이 행하여질 위험도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고등법원 판결에 불복해서 현재 기무사 민간인 사찰은 대법원으로 송치된 상황이다. 국가 기관이 민간인 불법사찰을 인정하지 않고, 아직도 수사 중인 사건이라 내용을 밝힐 수 없다며 사찰 피해자들에게 2차 피해를 줌으로써 순박한 시민이 결국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국가도 국회도 정치지도자들도 20년 전으로 돌려진 인권 현실에 대해 이렇다 할 해법을 제시하지 못해 결국 엄윤섭씨는 생을 달리했다. 누가 2012년 대한민국에서 엄윤섭을 죽인 것인가? 독재의 악령적 피해는 과연 과거로 묻으면 되는 것인가? 언제까지 살인범죄가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은폐될 것인가? 무수한 공포가 담긴 질문을 해결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고인의 서럽고 외로운 죽음에 대해 우리는 무엇으로 답할까?

정말 슬픈 날이지만 우선 고인의 명복을 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기무사민간인불법사찰피해자대책위 대표입니다



태그:#엄윤섭, #민간인불법사찰, #기무사민간인불법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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