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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계급사다리는 안전합니까?> 겉 표지
<당신의 계급사다리는 안전합니까?> 겉 표지 ⓒ 사계절
<뉴욕타임스>는 어디까지 말할 수 있는 걸까.
<당신의 계급사다리는 안전합니까?>(아래 <계급사다리>)는 근래에 보기 드문 르포르타주이며 <뉴욕타임스>가 '저널리즘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최고의 기자들에게 가장 어려운 주제를 맡긴 가장 높은 수준의 야심적인 저널리즘 실험'이라고 자평할 정도로 훌륭한 작품이다.

하지만 사회 현실을 그려내기에는 언론이 가지고 있는 현실적 한계를 봐야 한다. 언론은 아무리 빼어나게 기록해도 현실의 모자이크밖에 보여줄 수 없기 때문이다. 모자이크를 현실로 받아들이는 순간, 현실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다. 그래서 '<뉴욕타임스>는 어디까지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책에 접근하기를 권한다. 미국 독립만화의 전설인 세스 토보크먼과 뉴욕타임스 사이에서 있었던 연재 중단 사건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잘 설명해 준다. 토보크먼은 자본이 공동체를 파괴하는 모습을 소신 있게 그렸는데, <뉴욕타임스>는 그의 만화를 더 이상 싣지 못헀다.

"세스 토보크먼의 작품을 <뉴욕타임스>에 더 많이 실으려 했지만, 그의 작품은 너무 급진적이었다. 그는 자본과 시대의 흐름에 자신의 원칙을 굽히지 않았다."(제렐 크라우스·<뉴욕타임스> 전 아트 디렉터)

언론의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는 '체제 유지'다. 만약 언론이 체제 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기업은 광고를 줄 이유가 없고, 권력은 안전을 보장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예컨대 <계급사다리>에서 '<뉴욕타임스>가 계급 문제를 꼬집은 것을 대단한 일인양 요란을 떠는 이유가 뭘까?'라든가 '초 부유층(hyper rich) 문제를 건드리는 것 같더니 싱겁게 빠져나온 이유는 뭘까?' 같은 질문을 던져 보면 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미국 사회가 이 지경으로 됐다면, 일을 벌인 '주어'가 있을 텐데 <계급 사다리>는 주어 부분이 빠지고 술어 부분만 표현되고 있다. '숨은 주어 찾기'도 이 책을 읽는 재미다.

세상이 나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것

다행히 페이스북 친구들이 책의 빈틈을 많이 메워 주었다. 구유리씨는 미국의 지성 노엄 촘스키의 책 <촘스키, 세상의 권력을 말하다>에 나온 구절을 인용했다.

"기업계와 정부 고위층은 계급을 인식하고 거론하지만, 그들을 제외한 모든 국민에게 계급의 차이 같은 것은 없다고 믿게 만들어야 한다"

이에 비해 <계급 사다리>는 미국인들 사이에서 '계급'이란 말이 금기시 되고 있는 모습을 그려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계급차를 느끼지 못하며, 느끼더라도 계급상승을 할 수 있다는 자신에 차 있다. 그 외에도 <계급사다리>는 평소에 알려진 사실과 다른 현실을 보여줬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교육'이다. 미국은 소수계 우대정책인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데, 이 전통이 현실에서 튕겨져나가는 모습을 <계급 사다리>는 잘 보여준다.

"2004년 미국 교육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4년제 대학에 입학한 저소득층 학생들의 5년 내 졸업률은 41퍼센트에 불과하지만 고소득층 학생들의 졸업률은 66퍼센트에 달했다. 둘 사이의 격차는 최근 몇 년간 더욱 커지고 있다."(본문 137쪽)

졸업이 문제가 되는 까닭은 학위가 연봉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계급사다리>에 따르면 미국에서 4년제 학위를 받지 못한 40대 초반 남성의 평균 연봉은 4만2천 달러인데 비해, 4년제 대학 졸업자는 평균 6만5천 달러를 벌고 있다(본문 139쪽 참고). '뒤늦게 계급의 한계를 깨닫고 다시 대학교 진학을 꿈꾸는 한 가정의 가장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은경씨는 "그나마 예전에는 '교육'이 계급상승 기회 중 하나였는데, 학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 대학중퇴하는 하층·중간계급이 늘어나면서 다시 추락해버리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휴학과 아르바이트를 반복하면서 끝내 졸업하지 못한 대학생의 사례가 사회 문제로 된지 오래됐다. 미국의 사례 중 다행스러운 것은 하버드 대학과 버지니아 커뮤니티 칼리지 등 몇몇 대학에서 졸업 지원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는 점이다. 나름대로의 문제파악을 하고 실천해 나가는 대학의 모습이 부러웠다.

독자들 반응 한마디로 "답답하다"

페이스북 친구들은 <계급사다리>에 감정이입을 심하게 한 것 같다. 공정무역 회사에 입사한 27세 청년이라고 소개한 Eunji Park씨와 아르바이트, 학교실험실장 일을 하고 있다는 25살의 조병훈씨가 생각하는 '미래'는 무거운 근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은 '나의 위치와 앞으로 나아갈 길이 과연 평탄만 할 것인지'(Eunji Park) 의심을 하고 있었다. 안선희씨는 "계급화된, 그리고 고착화 가속은 더 심화된 우리 사회의 슬픈 초상을 맨 얼굴로 대면한 느낌"이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이런 현실에 대해서 변화시키기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쩌면 불가능할지 모르겠다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김성은씨는 "읽고 난 후 깊은 한숨이 나온다"고 밝혔다. 그는 <계급사다리>가 계급의 네 가지 카드로 제시한 '교육·소득·직업·부'를 자신의 처지에 맞게 '교육·결혼·소비'로 나눠서 답답한 상황을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신분상승은 정말 우담바라 피는 것보다 더 엄청난 확률"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책을 읽은 친구들이 자신의 현실을 돌아보며 답답해하고 감정이입을 심하게 한 까닭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이은경씨는 "리포트에 나온 미국현실의 여러 모습들이, 한국에서의 그것과 너무나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구유리씨는 아예 책의 사례와 비교되는 우리의 모습을 나열하기도 했다.

<계급사다리>에 그려진 모습

▲ 시골의 빈민층에 속해 살다가 부모의 문제로 위탁아 신세로 살던 여자 아이가 사촌들의 구원으로 인해 로스쿨에 진학하고, 그로 인해 신분상승을 하지만 자신의 과거로 인해 항상 위축돼 있는 심리상태를 보여주는 한 변호사의 이야기.
▲ 대학에 진학 했지만 돈 버는 것이 좋아서 자퇴를 하고 마트에서 열심히 일하다 뒤늦게 계급의 한계를 깨닫고 다시 대학교 진학을 꿈꾸는 한 가정의 가장 이야기.
▲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바다를 건너와 일자리를 찾기 위해 이곳 저곳 옮겨다니는, 이미 출세의 황금시기를 놓쳐버린 멕시칸들의 이야기.

우리의 모습

▲ 식당에서 서빙하시는 조선족 아주머니들 뿐아니라 우리의 어머니들.
▲ 추위와 더위 속에서 폐지를 줍는 노인분들.
▲ 길거리에서 나물 파시는 것만을 평생의 업으로 삼고 사시는 할머니들.
▲ 학자금의 부담과 현실의 높은 벽에 좌절하여 자살하는 미래의 꿈나무들.

마태호씨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고 이민을 갔던 것 처럼 한국에도 코리안드림을 꿈꾸고 오는 많은 사람들이 그 드림을 이뤄야 하는데, 한국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는 말로 한국과 미국의 유사점을 꼬집었다. 미국에서 학위를 받고 온 교수들이 대학을 지배하고 있다는 기사가 종종 나오듯 '우리 사회는 알게 모르게 미국을 닮아가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미FTA가 우리 일상으로 들어오면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될 지 모르겠다. 책을 함께 읽은 페이스북 친구들은 <계급사다리>의 문제를 우리 사회의 문제와 거의 동일하게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덧붙이는 글 | <당신의 계급 사다리는 안전합니까?> (뉴욕타임스 씀 | 김종목 외 옮김 | 사계절 | 2012.05 | 1만6000원)



당신의 계급 사다리는 안전합니까? - 불평등이 만들어낸 우리 시대의 초상

뉴욕 타임스 지음, 김종목.김재중.손제민 옮김, 사계절(2012)


#계급사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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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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