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가 지닌 프로페셔널리즘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무엇보다도 '현장주의'가 아닐까 싶습니다. 역사적인 현장 속에서 발생한 사건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것 말이죠. 그것은 세월이 흘러도 그 후손들로 하여금 역사적 상상력을 흔들어 깨우기에 충분하죠. 그것은 소설로 꾸미는 것보다, 동영상으로 감상하는 것보다, 더욱 큰 충격 속으로 끌어들이는 일일 것입니다.
2010년 온 세상에 널려 알려진 '딱총 사진'을 아실 것입니다. 태국의 반정부 시위자가 군인들을 향해서 딱총을 날리고 있는 사진이 그것이죠. 사진작가 '코렌틴 폴렌'이 찍은 것인데, 그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골리앗을 향한 다윗의 몸부림이 떠오릅니다. 물론 온갖 무력을 동원한 정부군의 눈에는 왠지 모를 씁쓸한 웃음이 밀려왔겠지만 말이죠.
그보다 세월을 한참이나 거슬러 올라간 사진도 있죠. 데이비드 호프먼이 찍은 '인두세 폭동과 그 진압 사건'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 사진은 1990년 3월 31일 영국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에서 벌어진 영국의 경찰병력과 수많은 군중들의 충돌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당시 인두세는 마거릿 대처 정부가 도입한 것인데, 가난한 백성들은 대처를 히틀러에 비유하며 시위를 벌였답니다. 2012년 런던올림픽 사진과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겠죠?
또 있습니다.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간 1980년 5월의 대한민국 광주 학살 현장 사진이 그것입니다. 그 당시 대학생들과 시위자들은 전두환 육군 중장이 선포한 계엄령에 대항해 몸을 던졌죠. 오로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일을 두고 '공산주의자들이 내려와서 저지른 만행'이라고 속이고 있는 사람들이 있도 있습니다.
존 심프슨(John Simpson)이 엮은 <프로테스트>는 '억압과 반항의 현대사 65년'을 들여다보게 하는 한 컷 한 컷의 사진과 해설이 담겨 있습니다. 그는 1966년부터 지금까지 언론인으로 살아오면서 세계 120개 이상의 나라에서 취재활동을 펼쳤고, 세계 30개 이상의 전쟁지역을 취재한 저널리스트이기도 하죠. 특히 1991년 걸프전쟁 초기에는 이라크의 바그다드에 있다가 이라크 정부에 의해 추방당하기도 했고,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에는 쿠르드 인 거주 지역에 있다가 미군 전투기의 포격 때문에 한쪽 귀의 청력마저 잃었다고 합니다. 그 역시 철저한 현장주의 사진기자라 할 수 있겠죠.
책 한 권에 담겨 있는 민중의 저항사"이 책은 우리가 걸어온 그 긴 여정을 다시 걷게 해준다. 그 여정은 때로는 위험했고, 종종 비극적이었으며, 아주 가끔은 영광스러웠다. 역사적인 현장 속에서 중요한 순간을 찍는 사진들은 전설적인 남녀 인간 집단들이 발휘한 용기와 능력을 증언하는 기념비다. 사진기자라는 직업은 가장 위대하고 유명한 사진기자에서부터 평범하기 짝이 없는 사진기자에 이르기까지 결코 안전하거나 쉬운 일이었던 적이 없다. 사진기자는 표적이 되기 쉽기 때문에 먼저 경찰이 휘두르는 곤방을 맞기도 하고, 시위자가 던지는 돌멩이를 가장 먼저 맞기도 한다."(머리글 중)당연한 일입니다. 역사적인 사건의 순간을 카메라에 담고자 하는 사진기자들은 자기 목숨도 내놓을 준비를 해야 하는 법이겠죠. 지금에서야 취재기자에 대한 보호 환경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그 옛날에는 정말로 위험했을 것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진기자는 이 세상 어디에도 동료가 없고, 오로지 혼자 다니는 존재로 스스로 담대한 용기와 타고난 눈치로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책에 실린 200여 컷의 역사적인 사진들은 우리나라 광주민주화항쟁을 비롯해,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반 세계 곳곳에서 펼쳐진 역사 속으로 독자를 초대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5년 10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5월 광장에서 벌어진 후안 페론의 지지 시위에서부터 2010~2011년의 튀니지·알제리·이집트·이란·이라크 등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을 휩쓴 '아랍의 봄'에 이르는 현대사까지도 모두 망라하고 있죠.
특별히 1956년에 일어난 헝가리 혁명이라든지, 1968년의 미국의 시민권 운동, 1980년의 폴란드 자유노조 운동, 1984년의 영국 광부노조의 파업, 1989년의 중국 톈안먼 광장의 민주화 요구 시위, 1990년의 아랍인들이 벌인 반 이스라엘 인티파타 운동, 1999년의 미국 시애틀에서 벌어진 반세계화 시위, 그리고 2008년에 일어난 중국의 압제에 대한 티베트인들의 항의 시위 등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생생한 현장들도 담겨 있습니다.
다큐멘터리보다 더한 감동
위는 '크리스 혼드로스'가 찍은 사진입니다. 2011년 2월 11일, 이집트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서 찍은 사진이라고 하죠. 무바라크 퇴진을 위한 시위가 시작된 지 18일 만에 무바라크 대통령이 사임했다는 발표가 나오자 한 여성이 감격의 눈물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책을 엮은 심프슨은 이 사진을 두고 "이집트 사회에서 전례 없는 새로운 현상"이라고 평가합니다.
이 사진은 '소니 툼벨라카'가 찍은 것입니다. 2007년 12월 6일, 인도네시아 발리의 누사두아에서 찍은 사진인데, UN 기후변화회의 회의장 밖에서 현지 환경운동가들이 벌인 시위 현장이라고 하죠. 세계전쟁과 세계은행 등 전 세계화의 공포를 추방하자는 단단한 결의를 보여준 사진이었다고 평가됩니다. 물론 신세계 정부를 세우고자 하는 세계화 세력들은 그들의 알몸 시위를 비웃고 말겠지만 말이죠.
가끔씩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매체 동영상으로 다큐멘터리 역사를 접하게 됩니다. 그때도 감동이 묻어나지만, 이 책 속에 담긴 사진들과는 비교가 되지 못할 듯합니다. 책 속에 담긴 사진들은 대부분 거대한 권력에 맞서 투쟁하다가 쓰러져 간 용기 있는 사람들의 이유 있는 저항과 투지를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죠. 그들에게 어찌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있겠으며, 그들의 모습을 담기 위해 자기 목숨을 내 놓고 있는 사진기자들에게 어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